잠에서 깰까 두려운 날들이 지나갔다.
하루, 이틀, 삼일...
시간이 지날수록 꿈속에서 조차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져 간다. 일어나면 꿈 속의 그녀의 모습마저 지워질까 두려웠다. 일어나면, 깨고 나면 잊혀 질 그녀의 체온에 울었다.
“그만 그만... 그만...”
성현은 축 처진 고개를 흔들며 뇌까렸다. 이제는 깨어나야 하는 데 꿈의 잔재가 너무 크다. 두 눈가로 흐르는 눈물이 너무 짙다.
“일어났어?”
상념에 찬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성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떠난 후,
예기치 않은 룸메이트가 된 그 윤권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 아니 그 이상의 사람일지도 모르는 그의 미소에 따라 웃었다.
“이제 좀 돌아가라.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더는 너 같은 남자와 온종일 붙어 있고 싶지는 않아 이제.”
“응? 아아- 뭐 나도 그래. 나도 너와 더는 같이 있고 싶지 않은 데 말이야. 어쩔 수가 없네. 잠에서 깨어나 질질 짜고 있는 꼬맹이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돌봐 줄 수밖에 없잖아.”
“질질 짜고 있는 꼬맹이라...”
어깨를 으쓱 거리며 말하는 윤권의 말을 되뇌며 성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뻑뻑하게, 아니 퉁퉁 부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 눈꺼풀을 힘주어 비벼 떴다.
“너는 보모가 아니야.”
툭,
힘을 빼고 주먹을 쥐어 윤권의 머리를 때렸다. 평소 같았으면 빽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화를 냈을 그였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평소와 같지 않다. 모든 것이 축 처져 버렸다. 비에 젖은 것 마냥 성태의 눈물에 젖어 처져 버렸다.
“너 말이야. 오늘이 며칠인지는 알고 있냐?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오늘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
“아니 몰라. 그래서 이제 좀 알아 가려고 시계를 보고 달력을 볼 생각이야.”
“호오- 굉장한 걸. 그래, 세상에 시간이 있고 시계가 있고 달력과 날짜가 있다는 것은 이제 좀 깨달은 모양이네.”
“물론, 그 이상의 것도 깨달았어. 나는 백수가 아니고, 냅다 때린 휴가는 오늘부로 끝, 내일 부터는 일에 찌들어 살아야 한다는 거지.”
“ok! 바로 맞췄어.”
짝하고 박수를 치며 반기는 윤권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렇게나 오버하는 모습이라니 어지간히도 걱정을 끼쳤던 모양이다.
“자, 그럼 이만 내 집에서 나가주겠어. 나도 알아. 내가 이러고 있어봐야 그녀가 돌아 올 수 없다는 거. 울면서 일어나는 건 오늘이 마지막. 그러니 믿고 돌아가 줘. 마지막은... 나 혼자 정리 하고 싶어.”
“.......”
윤권은 힘없이 웃으며 말하는 성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며칠간 떠나지도 못하고 옆에 붙어 있었다. 그녀를 자기 자신처럼 여긴 그다.
그래서 일까?
그녀를 잃은 그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비익조처럼 훌쩍 세상을 떠나 버릴 것 같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 그 이기적인 말은 하지 않을 게. 네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지금 얼마큼이나 슬픈지 나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억지로 살라고, 억지로 그녀를 정리하고 잊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게. 다만 친구로 써 하나만 부탁하자."
"뭘?"
"별거 아니야. 널 잃지 않겠다고, 너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라. 그녀에 이름에 대고 약속해주라. 그럼 감시 그만하고 돌아가 줄게.”
“...그럼 폼 그만 잡고 가라. 약속 할게. 나 안 죽어. 나 안 죽을 테니까. 그녀 이름에 걸고 맹세해. 걱정 말고 가라.”
“장난 아니야. 너 약속한 거다. 너... 내일부터 너 잊지 말고 너 잃지 말고 사는 거다. 그녀의 이름에 걸고 약속했어.”
“그래 그래 했다. 했어. 그러니 이제 좀 가!”
다시금 말을 되묻는 윤권의 모습에 성현이 소리쳐 말했다. 그의 말이, 그의 눈빛이, 그의 부탁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녀의 이름을 건 약속,
이렇게까지 이해하고 있던 것일까?
절대로 어길 수 없는 약속을 해버린 성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를 잃지 말라고? 나를 잊지 말라고?’
뚜벅 뚜벅 뒤돌아 집을 나서는 윤권을 쳐다보며 성현은 다시금 침대위로 몸을 내 던졌다.
아프다.
가슴이 저리다 못해 찢어질 듯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