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마약중독,중독,그리고 진실게임 <줄기세포 배달사고>

박현주 |2006.04.09 00:11
조회 182 |추천 0

마약중독,중독,그리고 진실게임 <줄기세포 배달사고>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대런 아러노프스키 (Darren Aronofsky)의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 2000) 이다. 386세대의 첫사랑(?) '제니퍼 코넬리'와 '자렛 레토'를 주인공으로 여기에 연기파 배우 '앨런 버스틴'이 열연한 영화이다.

 

 레퀴엠은 비주얼 측면이 탁월한 영화이기에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어렵게 다가 오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데 실패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본 작품은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imdb.com) 에서 평점 8.5점을 받은 수작이며, IMDB 전체순위에서 당당히 50위권에 올라와 있다더라.

[레퀴엠]은 얼핏 보면 '마약중독'을 다룬 영화처럼 보인다. 마약을 소재로 다루면서 마약중독의 위험성과 그것이 초래하는 극단적인 결과를 보여 줌으로서 사람들을 공포속으로 몰아 넣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마약에 절어 지내던 주인공 해리(자렛 레토)는 결국 자신의 한쪽 팔을 절단하게 된다.

 

생명을 얻는 대신 마약주사로 엉망이 된 팔 한쪽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레퀴엠]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 작품은 마약(중독)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트래픽'과는 다른 영화다.

 레퀴엠은 '중독'에 관한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이자 우울한 보고서이다. 대런 아러노프스키는 현대사회를 '중독'의 관점에서 들여다 본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중독'을 파헤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마약'은 '약물'과 등가관계에 있고, '약물'은 '텔레비젼'이란 바보상자와 역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즉 '중독'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마약 = 약물 = 텔레비젼] 이란 등식이 성립하고,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현대인의 삶에서 이들이 지니는 의미와 속성은 같다. 위와 같은 공식을 이끌어 내는 능력이 바로 대런 아러노프스키와 다른 평범한 감독들 사이에 구분선을 그어주는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물론 영화 속에서 더 많은 부분들을 볼 수도 있다. 위에선 그냥 대표적인 것 3개만 예를 들었다. 나머지는 직접 보고 느껴 보시라. 참고로 해리의 어머니 '사라'는 다이어트를 위해 약물을 복용한다. 살을 빼려는 직접적 이유는 그녀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이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출연하려면 살을 빼야한다더라. 즉 다이어트(약물복용)를 하게 만드는 주범(?)은 텔레비젼이다. 해리는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어머니의 그 소중한 텔레비젼을 처분해 버린다. 이와 같이 영화 속에서 마약, 약물, 텔레비젼, 이 세개의 소재들은, 그다지 관련이 없는 듯 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감독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이들을 통해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마약'에 대해서만 얘기를 한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충격스럽게 다가와서 그런지 그들은 [중독]이 아닌 [마약중독]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해석하고 평가를 내린다. 약물, 다이어트, 텔레비젼이란 소재는 결국 '마약중독'이란 대주제를 건드리기 위한 부수적인 것들로 간과해 버리고 이들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애써 거리를 두고 모른척 하는 지도 몰라. 마약문제가 너무나 크게 와닿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한발짝 떨어져서 들여다 보면 결국 이들 개개의 요소들은 서로 연결고리를 통해 관련을 맺은 채 하나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더란다.

 

최고 과학자의 데이터 부풀리기, 논문조작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일까.. 그들은 '논문조작'에서 한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나보다. 황박사가 시인한 논문조작 이외의 다른 사실과 상황에 대해선 애써 무관심하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기에.. 하긴 왜 안그렇겠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학자로서, 소장 과학도로서 묵묵히 자신들의 삶에 충실해 왔는데 그런 그들에게 이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 현실일까. 대한민국 과학계의 국치일이라고 단언하기 한점 부족함 없으리라.

 

 '중독'얘기가 나왔으니 몇마디만 더하자. 지난 몇달 동안 하나의 중독으로부터 자연스러워졌고 다른 하나에 중독되어 버렸다. ㅜㅜ 나 역시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사람이기에 '중독'으로부터 자연스러울 수는 없을 터. 마약이나 약물까진 아니더라도 '텔레비젼'이 던지는 그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긴 차마 어렵더라.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바보상자 없이 하루일과를 마감하기엔 뭔가 허전하지 않은가.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채널 한개를 지워 버렸다. 그 소중한 채널을. 기계안에서 지운 것은 물론이요, 내 가슴 속에서도 끌어내 버렸단다. 간간히 즐겨봤었던 프로그램들이 눈에 아른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망할 놈의 그 방송구독을 끊은지 석달이 다 되어가는구나. 그놈 없으면 못살것만 같더니만 그래도 일단 지워버리고 나니 그다지 미련도 없더라네.

 

 그리고 서프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줄기세포 특집]에 중독되어 버렸다. 나를 중독의 위험에 빠뜨린 것은 황박의 멋진 강의도 아니고 줄기세포의 존재유무도 아니다. 나도 몰라. 어쩌면 그 중독의 원인을 찾느라 오늘도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그런데 이건 중독이 주는 즐거움도 없단다. 매일 이런저런 자료를 뒤지다 보면 그냥 씁쓸한 기분만 들고, 이 죽일 놈의 세상..하면서 한번씩 속으로 외치기도 하고..

 

이건 말이야. 마약이 주는 그런 쾌락, 환희의 순간도 없고, 텔레비젼이 던져 주는 그런 즐거움도 없어. 무슨 놈의 이런 중독이 다 있을까. 이 죽일 놈의 중독 말이야. 그래도 좋아. 나는 좀더 많은 부분을 보고 느끼고 싶단다.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성과 감정의 상호작용 스펙트럼의 폭을 최대로 늘리고 싶더란다. 난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많아. 마약, 약물, 살빼기, 그리고 텔레비젼에 머무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어. 자본에 중독되어 있는지, 일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은지, 인터넷 중독은 아닌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그러한 '중독'이 나와 가족에게 또는 지인들과의 관계형성에 있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난 좀더 생각해봐야 겠어. 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더라. '줄기세포 상영관'도 마찬가지야. 아직 문닫지 않았단다. 누군가 그랬다며.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그래 맞아. 이제 부터 시작이야. [The Show Must Go On] 이란다.

 

뱀발 하나)

 

 참고로 '레퀴엠'은 허버트 셀뷔 주니어 ( Hebert Selby Jr.)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있다. 그는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레퀴엠 DVD 를 보면 여배우 '엘런 버스틴'이 '허버트 쉘비 주니어'를 인터뷰한 클립이 들어있다. 한번 꼭 보시라~

 

 뱀발 둘)

 

 아래 감상평에 대해 토를 달고픈 마음은 없다. 그냥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1) 마약은 정말 하면 안된다는 결론도 내어주는....

2) 보고나면 정말 찝찝하지만 마약의 진실을 보여주는 사회고발 다...

 

파란색 부분은 [레퀴엠]을 보고난 네티즌 두사람의 평이다. [너이봐]에서 퍼왔다. 그래 맞다. 그냥 편히들 생각하시라. [레퀴엠]은 마약중독에 관한 영화라고 결론내고 그냥 편하게들 살아가시라.

 

마약중독에 대해서만 실컷 고민하고 얘기들 하시라. 물론 주된 소재로 마약을 다루고 있고 마약중독에 관한 영화 맞다. 그래 맞다. '논문조작'이 본질이다. 데이터 부풀리기 앞에서 다른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단다. 그냥 그렇게들 살아가시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줄기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떠할까.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올 것이요, 황박 없어도 수십개의 채널에서는 오늘도 짝짓기, 농담 따먹기 프로그램이 늘려 있는데, 그것들 보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굳이 다리 아프게 광화문에 나가서 외쳐대면 무엇하리. 그놈의 줄기세포 없으면 어떠할까, 어느 놈이 바뀌치기 했으면 어떻고, 새튼이 가져 갔으면 또 어떠리. 진급도 하고 자식 새끼도 키우면서 적당히 즐기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면 되는 것을.

 

그래도 이기 아인데... 하시는 분들, '논문조작' 넘어 또 다른 현상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서프 드나들며 열심히 이글저글 읽어들 보시라. 과갤이나 브릭도 방문해서 소장 과학도들의 견해도 청취해 보시고... 거기다 찌라시 기자나부랭이들이 써대는 신문기사들도 보며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무' 또는 '유'에서 다른 '유'를 창조하는 소설가적 자질도 마음껏 감탄해 보시라. 가끔씩 그들은 '유'에서 '무'를 만들어 내는 능력도 보여준단다.

 

 뱀발 셋)

 

 황빠들, 눈물 흘리지 마라. 작은 골목 귀퉁이 꿈을 잊었다고... 바람 없으면 어떠하리 우리가 바람되어 가면 되는 것을...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원망치 마라... 흘러내리는 그 눈물 술잔에 담아, 잔 기울이며 노래 부를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래도 눈물이 난다네.. 눈물 너머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푸르기만 한데.. 그 눈물 닦는 순간 모든 것이 어둠이 되어 버리네...

 ⓒ 로츠님글 펌 

 

 

         

 

 

 

 

 

 

 

 

 

 

 

 

 

 

 

 

 

 

 

   

해는 꺾이고 촛불들만이

 자신의 몸을 태우며 눈물을 흘리는구나

촛불들만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라

그 촛불을 움켜쥐고 있는 그들도 눈물을 흘리는 구나

누가 이들에게 촛불을 들라고 했을까!

수천개의 촛불은 거센 바람에

이내 출렁이다 꺼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 없이 다시 촛불을 밝힌다

- 이노님 글중

 

 

 

 

 

 

    

 

 

 

0311검찰청집회 참석기 

모처럼 시간이 되어 참석했습니다. 교대역에서 서프앙들은 두줄로 서서 검찰청 문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연배가 좀 되신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어떤 분이 촛불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더니 굵은 초와 종이컵을 자기 가방에서 꺼네어 주면서 이걸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본인의 돈으로 몇 개씩을 사 가지고 오신것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저도 여분을 사가지고 가서 나누어줘야겠습니다. 옆에는 부부가 나오셨는데 KBS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 부인이 부끄러웠는지 뒤에서 남편을 쿡쿡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께서는 소신껏 명확하게 답변을 잘 하시더군요.

 

“서울대의 발표를 거짓으로 하고, 일방적으로 기회조차 주지않고 죽이려하고 있으며, 특허권은 지켜야 한다..등등요. 더욱 잘하신것은 뭔가를 묻자 그건 모르겠다고 자신있게 대답하는거였습니다. 제가 부인보면서 말했습니다. 인터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짜 인터뷰이지요. 말 뻔지름하게 다 짜놓고 하는게 인터뷰인가요? 참 잘하셨습니다.

 

 다소 지적인 모습을 한 다른 한 남자분은 혼자 오셨는데 무덤덤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다 가시더군요. 마치 자신의 일을 하러 온 것처럼 주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촛불들고 자리를 지키다 가셨습니다.

 

딸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는 춥다고 하는 아이를 수시로 매만저주면서 역시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다 갔습니다. 엄마는 딸 아이에게 뭔가를 체험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금 늦게 옆에 온 한 아저씨는 젊은이들이 얼마 안보인다며 못마땅해 하시길래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기성세대가 뭐 잘한게 있어야지요. 기득권의 횡포가 서민을 유린하고, 도덕적 퇴폐는 난잡하기만하고, 취업난으로 젊은이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데, 어떻게 어른으로서 대접을 받겠습니까? 난 젊은이들보면 미안해서 얼굴을 못들겠어요. 이거 다 우리가 잘못한거 아닙니까?”

 

 그러자 그분도 얼굴을 떨구며 끄덕이시더군요. 어느덧 황박사님이 일찍 나오셔서 추운데 다들 덜 고생했습니다. 지방에서 차와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오신 분들이 꽤 되었습니다. 낡은 셋방이라도 빌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밤 되십시오.   

                                                           ⓒ세상뚜껑- 펌

 

눈물 흘리지마 작은 골목 귀퉁이 꿈을 잊었다고

눈물 흘리지마 구름처럼 스쳐간 허무한 것을

뭐라 말하지마 그 눈빛이 꺼질듯 내게 속삭이네

뭐라 말하지마 하늘 저편 노을이 걸릴때까지

슬퍼도 울지 못하는 민들레 꽃위에 햇살 가득한데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네 어디있니 누나야

젖은 노래처럼 너의 작은 가슴에 비가 내린다고

언젠가 말했지 하염없이 걷고만 싶어진다고

나를 부르지마 돌아서는 모습엔 슬픔뿐인것을

나를 부르지마 스쳐가는 바람이 내 모습인걸

하늘가 저편 맴도는 새들의 날개짓만 공허한데

들어도 들리지않고 찾아도 찾을수없네 어디있니 누나야

 

<EMBED style="FILTER: alpha(opacity=50 Style=3 FinishOpacity=8)gray()" src=http://www1.seoprise.com/board/upload/gamu/20060223133259_1433.wma width=80 height=25 type=application/x-mplayer2 loop="4" autostart="true" showaudiocontrols="false" showpositioncontrols="false" showtracker="false">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