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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왜 피는가

최정훈 |2006.04.17 20:14
조회 131 |추천 1

끝까지 안읽어보는 친구들은 앞으로 여기 올 필요가 없다.

 

문득 벗꽃(벚꽃이 표준어라지만 난 벗꽃이 더 좋다)을 보다가

 

봄에 피는 꽃들은 왜 피어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리의 친구 네이버에게..

 

"꽃은 왜 피는가"라고 물어보니 과학적인 답변은 없었고

 

좋은글이 있어 소개한다.

 

저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을거란 생각을 하지만 교회 다니는건

 

별로인 내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고 친구도 끄덕일

 

필요는 없다. 이글에도 허점은 많다.

 

 

서 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없다고 하면서, 그리고 세상은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100년 이상 공격하고 있는 진화론의 뒤에는 사단의 견고한 진이 바로 그 공격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1.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가 비과학적인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고등학교 생물 교과서의 '생명의 기원' 서론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중세까지는 생명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설과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창조론이 신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부터는 과학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생명은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학설이 대두되었고, 1859년에는 다윈에 의해 종의 기원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생물의 진화설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글을 보면 비과학적인 '생명자연 발생설'과 '창조론'을 함께 비과학적인 이론으로 동일시하고, 과학적인 '생명 속생설'과 '진화론'을 함께 묶어 과학적인 이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명 속생설을 주장한 파스퇴르는 당대의 창조론자였는데 아이러니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이론에 여기저기 이론을 갖다 붙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화론은 비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증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진화론은 마치 '진화법칙'인 양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하나님의 창조를 비과학적인 것으로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2. 그런 면에 반하여 창조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초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교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즉 성경의 말씀이 과학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화론의 영향으로 자신조차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십자가의 구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믿음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에 대한 설교가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것도 바로 본질의 문제이라 생각된다. 즉 창조 인간의 타락 구원 최후의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첫 시작은 바로 창조입니다. 창조를 믿지 않고서 어떻게 구원과 최후심판,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창조 신앙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본론

 

 

 

1.진화론의 대두와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1) 계몽주의의 영향이 있습니다.

 

유럽문명은 세계문명의 중심적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유럽은 예수의 복음이 로마를 통해 퍼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화 된 후 기독교는 정치지도자의 권력과 합쳐져 중세의 암흑시대를 낳게 되었고 16세기에 시작된 계몽주의는 기독교의 권위로부터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된 이성중심의 철학과 과학주의를 낳았으며 마침내는 우주와 인류기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2) 다윈의 진화론 발표와 확대를 들 수 있습니다.

 

1859년 다윈은 '종의 기원' 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소개하였습니다. 자연선택과 돌연변이라는 이론을 도입하여 진화를 설명한 진화론은 DNA라는 유전물질에 의해 동, 식물의 다양성이 발현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배경을 본다면 창조론은 주로 정치적 세력인 케돌릭 쪽에서 주장하였기에 창조론 옹호론자들은 보수주의자로 취급되었고 진화론 옹호론자들은 개혁적 인사로 인정되었답니다.

 

또한 당시 제국주의에 의한 침략 전쟁은 진화론의 약육강식에 의한 자연 선택이론으로 합리화 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 동양인들을 인격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열등한 인종으로 몰아세우는 근거를 진화론에서 찾았습니다.

 

청교도국가인 미국은 1925년 인간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다며 진화론을 가르친 고교 생물교사 존 스콥스가 재판에 회부되어 100달러의 벌금을 내라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진화론자들의 거센 도전이 시작되었고 그후 1967년 케네디 대통령시절 진화론은 '반진화론법은 연방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림으로 진화론이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50개주 모두 진화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유일한 과학적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생물학뿐만 아니라 학문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차, 2차 세계대전도 이러한 진화론에 근거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진화론에 심취한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유전질환자와 신체 부자유자를 단종법의 이름으로 200만명이나 죽였고 유태인 6oo만명을 아우슈비츠에서 독까스로 학살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범죄사실이 진화론에 근거하였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뿐만 아니라 몇몇 나라는 진화론의 이론으로 약육강식이 자연선택의 원리라며 제국주의자들끼리 동맹을 맺어 국력이 약한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일을 당연시하였습니다. 독일, 일본, 이태리가 그러한 국가였습니다. 이 침략의사를 결정하기 까지는 진화론의 적자생존사상이 침략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입니다. 한 추측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를 가진 이야기이며 역사속에 나타났던 엄연한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의 교육기관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원숭이의 자손이라 가르치면서 인간존엄성과 그에 기초한 윤리관과 가치관을 뿌리 채 흔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소수 엘리트집단에 의한 단일정부를 세워 세계를 지배할 계획을 꿈꾸며 공공연히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인 죤 듀이와 쥴리언 헉슬리가 각각 주도한 인본주의선언(1933, 1973)과 유네스코헌장(1946)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진화론이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추리에 근거한, 무신론적이면서 유물론적인 신념이요 신앙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많은 진화론적 주장이 추리와 조작, 그리고 심한 경우 사기극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허구와 잘못이 들어날 때마다 진솔한 사과나 반성이 없이 학문의 추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해프닝이라며 도도한 자세를 견지하여 오고 있습니다. 일단 주장해 놓고 아니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우리에게 닥아 올 불길한 미래를 예감케 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적들을 돌이켜 보면 이러한 염려는 기우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2. 신학의 변화 -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영향

 

1) 진화론의 거짓 증거들 과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

 

학문의 여왕이라는 신학도 진화론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성경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는 거짓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가설에 불과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진화의 증거라고 여겨진 여러 가지 발견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자바인, 필트타운인 등은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었고 지금도 아직도 사실인양 교과서에서는 단골 메뉴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깝고 울분이 터지는 일입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된 증거들이 어떤 주장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교과서에서 자주 나오는 자바인은 원숭이의 두개골 일부와 사람의 다리뼈 일부를 가지고 주장한 것인데 15m 떨어져 있는 두 뼈가 한 개체라는 주장 자체가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것을 발견한 듀보아는 같은 지층에 있던 사람의 머리뼈는 감추고 거짓말을 하여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단계인 원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진화론자들도 자바인을 인정하지 않고, 그 당시의 학자들도 많이 의심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결정적인 증거로 비춰졌답니다. 필트타운인에 대한 것은 더욱 심한 거짓 주장이었습니다. 과학적 사기로써 사람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뼈를 교묘하게 붙인 것이었습니다. 필트타운인에 대하여 수백 편의 박사논문이 나왔고,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되는 결정적 증거로 50년 동안 인정받았습니다. 후에 이 뼈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조사하다보니 불과 몇 십 년밖에 안된 뼈라는 것이 드러났고 더 자세히 조사하면서 사람의 머리뼈와 원숭이 턱뼈를 붙인 것으로 밝혀졌답니다.

 

지금은 진화론이 주장하는 이러한 증거들이 단지 가설에 불과하며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자바인이나 필트타운인과 같은 가짜 증거로 진화론이 과학적 진실로 인정받아 왔었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신학자들은 과학적 사실로 비춰진 진화론과 성경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 이성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게 되자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대 자료로 보는 문서 비평적인 학문이 발전되었고,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는 하나의 자료로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후 성경이 증거 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들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라는 과학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기 어렵고, 신학교에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을 배운 목사님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할 뿐 아니라, 기적도 부인합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도 갈대밭을 그냥 걸어간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물론 갈대밭에 왜 이집트 군사들이 빠져 죽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말이죠. 이러한 배경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 것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이란 진화를 사실로 인정한 채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물질주의적 사상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붙인 것은 진화론자들도 비웃을 일이고 성경말씀과도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신론적 진화론은 거짓된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약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과 진화론 그리고 창조과학자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창조론에 관하여는 다음주부터 창세기 1장을 나누면서 풀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 이성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게 되자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성경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입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대 자료로 보는 문서 비평적인 학문이 발전되었고,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는 하나의 자료로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성경을 그대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는 목회자가 50%도 안된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하나님보다 인간 지식이, 즉 과학이 더 우월한 것이라고 믿은 결과이며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진화론의 영향이 많습니다.

 

 

 

 

 

 

2.빛을 만드신 하나님

 

 

창세기에 관하여는 여러분께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아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잘 알아서인지 깊이 있게 알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창세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창조에 대한 내용으로 1장부터 11장 까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창세기 1장을 함께 집중적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 1장을 과학이라는 도구로 풀어보는 관점으로 보일 수도 있고 성경을 믿는 믿음의 전제하에 나누는 느낌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하든 간에 제가 여기서 나누고자 하는 것은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을 완벽히 증거 하는 것이고 우리의 신앙의 가장 기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가장 과학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창세기를 살펴보며 얼마나 창세기가 과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쓰여져 있는지를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n The Beginning(태초에)-bereshith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Bereshith Barah Elohim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맨 첫 문장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시간과 하늘과 땅을 창조하심을 의미합니다. 창조란 말은 히브리어 동사 '바라'를 번역한 것으로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은 '엘로힘'인데 이것은 강하다, 전능하다의 뜻이며 히브리인들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창조된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천지의 천(天)은 히브리 원어로는 복수로 하늘들로 표현되는데 이는 3중천을 나타낸다. 즉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대기권인 하늘, 두 번째로는 별들이 있는 하늘,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을 함께 의미합니다.(사 13:10,렘 4:25, 히 9:24)

 

한편 하늘과 땅 즉 '천지'라는 표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 이라는 관용어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1절 말씀은 우주의 세 가지 요소인 시간(태초)과 공간(천) 그리고 물질에너지가 우주와는 별도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스티븐 호킹 이란 과학자는 '우주는 창조되었을 리도 없고 파괴될 리도 없으며 다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빅뱅설이나 그 외의 어떠한 이론도 시작에 대하여 명쾌히 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우리의 과학이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에 속한 기적입니다.

 

또한 성경은 창조이전의 사실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하시듯이 그것은 창세 이전에 그리스도가 계셨고,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셨으며(요17:24),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엡1:4), 세상이 있기 전에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딛1:2)

 

이러한 유일하시고 처음과 나중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H. 모리스의 표현대로 모든 원인의 참된 원인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3)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이자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후에 나오는 어떠한 성경의 초자연적 사실도 이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의 기초를 이 말씀위에 확고히 놓아야 할 것입니다.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창세기 1장 2절 말씀은 그 해석에 있어 참으로 많은 혼돈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접근을 잘못 시도한 것도 있고 진화론의 사상에 너무 의식한 나머지 간격설과 재 창조설등의 여러 유신론적 진화론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땅이 혼돈하며 공허하다'라는 표현은 1절 말씀의 재료만 있는 상태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 사이의 긴 시간이 있어서 이 기간에 동물들과 유인원이 살다가 죽어서 화석이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간격설(Gap Theory)은 복음의 근본인 구원과 죽음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이 인간의 창조 이전에 있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오고 그리고 다음으로 구원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납니다.

 

또한 죠지펨버(1876)와 스코필드(1917)에 의하여 처음 주장된 재 창조설은 처음 창조된 땅이 천사들의 타락으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어디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적 과학을 하는 바는 태양계가 기체와 먼지의 거대한 구름에서 생겨났다고 하는 것인데, 기체와 먼지로 된 큰 소용돌이가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였다고 보고 그 구름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면서 서로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뭉쳐져 밀도가 증가하게 되고 점점 소용돌이치는 속도가 빨라지며 이런 과정을 통해 물질이 모여들어 우연히 태양도 되고 지구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열역학 제 1법칙(에너지 보존법칙)과 제 2법칙(무질서 증가의 법칙)에 어긋난 과정입니다.

 

성경말씀처럼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아래에서 모든 것이 질서가 있었으며 다만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조형되지 않았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법칙을 뛰어넘는 존재, 즉 창조주가 없이는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빛은 넷째 날의 광명체의 빛 이전의 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은 우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의 형태입니다.

 

전자파인 이 빛은 감마선~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라디오파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되어있는데 이 전자파 에너지는 저 멀리 떨어진 물체와 행성등의 물질의 비밀을 알게 해주는 신호입니다.

 

첫날의 작품인 이 빛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인 피조 세계를 인간이 알 수 있게 하는 지식의 습득과 전달의 매체입니다. 또한 지구상에 생명을 유지시키는 에너지원(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빛이라고 소개한 것도 그 분을 통해 세상을 알게 하는 참 진리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즉 예수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보아야 온전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1:4~5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he called 'night.'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first day.

 

창조사역에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낮과 밤을 주관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째 날의 창조물인 태양이 없이 하루가 있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낮이란 것은 태양이 뜬 상태이고 밤이란 것은 태양이 가려진 상태 즉, 지구의 자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생각해 볼 것은 태양에 대하여 갖고 있는 선입견에서 나왔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태양에 절대적으로 시간을 맞추고 낮과 밤을 정하기전에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라는 차원을 먼저 만드셨기에 태양을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았을까? 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라는 것은 빛의 일정한 성질, 즉 속도가 1초당 약 30만km를 이동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얻은 부산물이기에 우리가 시간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시간의 기준으로 사용하셨기에 하루가 약 24시간이 되었을 것이고 지구의 자전을 또한 약 24시간으로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날'을 뜻하는 히브리어'욤(yom)'은 하루를 분명히 뜻합니다. 욤을 복수형인 야미로 쓰였다고 생각하여 시대로 해석하는 날 시대 또는 날 연대이론(day-age 이론)의 신학자들도 있는데 이것은 이후에 예수님의 6일 창조와 안식일에 관한 인용 어구를 보면 확실히 하루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 4:3~4)

 

 

 

 

 

 

3. 궁창을 만드신 하나님

 

 

1: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between the waters to separate water from water.'

So God made the expanse and separated the water under the expanse from the water above it. And it was so.

God called the expanse 'sky.'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second day.

 

하나님께서는 둘째 날 사역으로 땅의 표면을 덮고 있던 물 층의 중간에 궁창을 만드심으로 하늘에 있는 물과 땅위에 있는 물로 나누셨습니다. 궁창을 밀어 올려서 궁창 밑 즉 땅의 표면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 사이에 간격을 만드시고 궁창을 하늘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즉 물 층을 땅의 표면에 그대로 남아 있는 물과 하늘(궁창)위로 밀려 올라간 물로 분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궁창'의 정확한 위치와 모양, 재료는 알 수는 없지만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파란색을 띠고, 둥근 지붕(dome)처럼 보이는 부분을 하늘이라고 생각합니다. 궁창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로 '라키아'는 '확장된 것' 혹은 '넓게 펼쳐진 것(expanse)'을 뜻합니다. 궁창아래의 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으로 바닷물 강물 지하수 등 지표면의 물입니다.

 

그렇다면 궁창위의 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궁창위의 물을 단순히 구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것을 영적인 물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여러 창조과학자들은 성경말씀처럼 궁창위의 물 층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로 노아의 홍수 때 언급된 하늘의 문이 열리고 궁창위의 물이 쏟아 졌다는 말씀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궁창위의 물 층의 두께를 약 10m 정도로 보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궁창위의 물 층은 노아의 홍수 때 쏟아져 내려서 현재 구름으로만 존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창 아래의 물 층은 현재의 바닷물, 지하수, 강등의 여러 가지 장소와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하수의 많은 부분들이 노아의 홍수 때 깊음의 샘이 터질 때 아마도 함께 터졌으리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궁창위의 물 층은 어떠한 역할을 하였을까요?

 

이 궁창은 굉장한 역할을 했다고 창조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첫째로 물 층이 지구로 오는 태양의 열을 골고루 퍼지게 하는 온난효과를 주어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동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고 합니다.

 

극지방이나 적도지방의 온도가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여러 아열대 식물들이 자랐다고 합니다. 화석을 보면 고사리류가 수 미터가 되는 것이 나오기도 하고 잠자리의 화석이 90cm 가 넘는 것이 나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자꾸 발견되고 있는 공룡화석은 과거 의 지구의 환경이 지금과는 다른 동물들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수십 미터 씩 되는 거대한 공룡들이 살기위해서는 그 만큼의 식물과 환경이어야 되기 때문에 이러한 궁창위의 물 층이 아열대의 기후를 조성하였다라는 것은 성경을 더욱 과학적이고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둘째로 대기압이 2기압정도의 상태로 세포가 활동하는데 가장적합한 상태일 것으로 창조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미국에서도 dome형의 유리구 안에서 살아가는 실험 중에 있고 한국창조과학회 에서도 기압과 관련하여 세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에 대한 실험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10m 정도의 물 층이 대기권에 있을 때 대기압이 약 2기압정도가 된다는 것을 착안한 실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헬륨 등의 원소의 농도가 또한 높아질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의 모습이 타원형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거를 뒷받침해주는 화석이 고대 인디언 벽화에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설명한 그림 같기도 한 이 벽화에는 인디언들이 태양에 절하고 제사하는 모습의 첫 장면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온 태양의 모습이 원형이 아닌 타원형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외의 벽화들에서도 태양을 타원형으로 묘사하는 벽화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아 궁창위에 있는 물 층으로 인하여 태양이 타원형으로 보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유해전자파와 자외선들을 차단하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이 궁창 위의 물 층은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방사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따뜻한 열선을 받아들인 후 외계로 방사되는 것을 막아 온실효과를 가져와 지구 전역에 걸쳐 아열대 기후를 이루게 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물 층은 현재의 지구의 대기권에 있는 공기 즉, 오존층이나 여러 가지 공기층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물 층은 공기오염으로 인하여 오존층이 파괴될 염려도 없을 것이고 태양 빛에서 나오는 유해파인 감마선, X선, 자외선 등을 완벽히(현재보다) 차단하였을 것이라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아담이나 므두셀라, 노아등의 나이가 900세를 훨씬 넘긴 것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궁창위의 물 층이 홍수이전의 지구의 환경에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물은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물질입니다. 바다나 호수의 물이 태양열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공중에서 찬 기운을 만나 응축되어 구름이 되고, 마침내 눈에 보이는 물줄기인 비가 되어 다시금 지상으로 내려오는 물의 순환이야 말로 지구상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섭리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늘이 파랗고 바닷물이 파란 이유는 각각 지구 대기층과 바닷물에 태양빛이 산란 또는 굴절할 때 파장이 짧은 파란색이 돋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우리 인간을 위해 그들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미리 조성하셨던 것 입니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돌보심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인간의 타락으로 궁창위의 물들이 홍수 심판 때 다 쏟아져 파괴 되었지만 다시금 회복시키실 그 때를 기대해 봅니다.

 

 

 

 

 

4. 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세기 1장 9절~1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said, 'Let the water under the sky be gathered to one place, and let dry ground appear.' And it was so.

 

God called the dry ground 'land,' and the gathered waters he called 'sea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하나님께서 궁창을 통해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궁창위의 물에 대하여는 지난 시간에 온실효과, 대기압 상승효과, 유해파 차단 효과등의 역할을 하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셋째날 사역으로 먼저 땅위의 물들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육지가 드러나게 하시는 장면을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지구가 물에서부터 육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말입니다. 장엄한 물의 이동과 육지의 드러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육지 밖의 바닷물로 물이 흘러갔지만 나머지 물들은 육지위의 물로 준비해 두셨습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물질입니다. 생명수라고도 하는 이유는 바로 물의 이러한 특징 때문일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1절~1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Then God said, 'Let the land produce vegetation: seed-bearing plants and trees on the land that bear fruit with seed in it, according to their various kinds.' And it was so.

 

The land produced vegetation: plants bearing seed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trees bearing fruit with seed in it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third day.

 

자 하나님께서는 식물을 땅에 만드셨습니다. 그것도 각기 종류대로 말입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들은 모두 다른 색깔과 향기, 독특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조화와 균형, 질사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식물의 외관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존재합니다. 그 꽃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꽃은 그럼 왜 피는가? 라고 질문을 해 봅시다. 진화론적으로는 꽃은 종족번식을 하기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고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세대를 이어나갑니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줄 벌과 나비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 각기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과 형태, 그리고 향기에 있어 그러한 다양함이 필요할까요? 진화론자들은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함께 상호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의 색깔과 형태의 다양함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면 왜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식물은 일년생이고 어떤 식물은 다년생이 되는 걸까요? 또한 곤충 등을 이용하지 않은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단지 바람에 의해 전파, 번식되는 그러한 식물들은 왜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요?

 

과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과실이 생존과 적응만을 위한 것이라면 각각의 독특함과 다양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까? 과실은 식물체가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운다음 또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잉여 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입니다.

 

식물은 크게 꽃, 열매, 잎, 즐기, 뿌리 등으로 나뉘며 수많은 식물들은 모두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의 다양함이 환경에 따른 적응과 변이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한 것이고, 감자는 줄기가 진화한 것이며, 완두는 잎이 진화하여 덩굴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왜 감자는 줄기가,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하여야 되는지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요?

 

바로 모든 다양성은 생명정보에 설계되었다라는 말로 귀결됩니다. 바로 필요에 의한 설계라는 것입니다.

 

가을의 단풍은 아름다운색의 조화로 우리에게 황홀감을 줍니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겨난 것일까요? 진화론자들은 나무가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과정의 결과로써 단풍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당이 잎속에 축적되어야하며, 카로틴과 크산토필 그리고 화청소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이 새로 합성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는 자기 보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나뭇잎의 떨어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토양의 비옥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떨어진 나뭇잎은 토양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물로 분해 되고 지력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모든 상호관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처음부터 설계된 대로 완벽한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1절에서 13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식물이 인간이나 동물의 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알의 종자가 죽어서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과 들에 핀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보노라면 하찮은 식물에게까지 미치는 그 분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계획과 사랑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 같은 조화와 균형과 질서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통합성과 합리성이 이 피조세계에 널리 펴져 있을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직접 말씀하시고 알려주셨던 주님의 창조의 사실만으로 우리는 이 피조세계에 나타난 특히 식물의 창조에 나타난 그분의 계획과 사랑을 알수가 있습니다. 결코 우연이나 종의 변화와 같은 진화가 아닌 설계된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는 로마서 1장 20절 말씀처럼 이 피조 셰계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추운겨울을 이겨내고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나무들과 꽃들 속에서 지금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그들을 통해 나타내시고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 질서들을 우리게 보이시고자 사역하시는 그 분의 따스함을 느끼게 됩니다. 만물을 붙드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하나님의 사랑을 높여드립니다.

 

 

 

 

 

 

5. 식물에 나타난 창조의 섭리

 

 

창세기 1장 11절~13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Then God said, 'Let the land produce vegetation: seed-bearing plants and trees on the land that bear fruit with seed in it, according to their various kinds.' And it was so.

 

The land produced vegetation: plants bearing seed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trees bearing fruit with seed in it

 

according to their kinds.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third day.

 

하나님께서 만드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과목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의 설계된 작품입니다. 즉 다시 말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세포내에 DNA라는 유전물질에 이러한 종류대로 모든 각 정보를 담아 두셨던 것입니다.

 

만약 식물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관찰되어 진다면 그것은 진화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라고 반문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생명체에 널리 적용되고 있는 진화라는 개념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한 유전적 정보가 나타나야 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아메바는 식물로 변하는데 요구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메바에서 식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훨씬 복잡한 유전정보가 첨가되어야 합니다.

 

사실 어떠한 집단일지라도 이미 내재된 변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새로운 적응으로 이끄는 자연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선택 그 자체는 본래 있는 유전자로부터 선택하는 것이지, 한 종에서 새로운 종으로 변형시키는 데 필요한 새로운 유전적 정보를 창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돌연변이가 어떤 생명체를 새로운 구조와 기능을 가진 또 다른 좀 더 복잡한 유기체로 진화해 나가도록 새로운 물질을 제공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믿음으로 생명체란 실제 짜여진 각본, 즉 DNA의 프로그램대로 형성되고 시기적절하게 발현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램 자체는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속합니다.

 

생명자체는 DNA를 복제할 때 이러한 임의적인 돌연변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에 걸친 놀랍고도 정교한 검색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돌연변이가 극히 드물게 일어나기도합니다. 그러나 돌연변이의 경우 99%가 식물체 자체에 해를 끼치게 되며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식물체의 형질을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예가 바로 돌연변이의 최초 제창자였던 드브리스의 달맞이 꽃 실험입니다.

 

드브리스가 돌연변이를 연구하기 위하여 이용한 이 달맞이꽃은 그가 수없이 재배한 결과 돌연변이로 얻은 것은 역시 달맞이꽃의 종내 에서의 품종개량이었을 뿐 장미나 국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돌연변이에 관한 연구는 많은 발전을 이룩하여, X선이아 콜히친이라는 알카로이드계 물질을 사용하여 식물에 인위적인 돌연변이종을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돌연변이를 통하여 같은 종내의 다양화는 얻었을 지라도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형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한 식물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종이란 '같은 모양의 개체가 대를 통하여 연연히 영속하는 계열'이라고 하는데 즉 자신의 종을 지키려고 다른 종과의 수정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혹 인간의 지혜에 의해 인위적으로 종간의 잡종도 만들지만 모두 불임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단지 화석으로만 발견될 뿐 단 한번이라도 자연 상태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되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탄생이 아닌 발견 되었다는 소식은 가끔 들을 것입니다.

 

이렇듯 그러한 것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을 우리가 발견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룡들이 지구상을 배회하던 중생대에는 어떤 식물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분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식물들이 오늘날 주위에서 흔히 보는 식물들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적인 지질연대상으로 볼 때 최초의 육상식물인 이R나 양치류(고사리류)는 고생대에 출현하였으며, 중생대 초기에는 종자를 맺는 식물 중 겉씨식물, 말기인 백악기에는 속씨식물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진화에는 합리성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사리류들의 화석을 살펴보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종류가 고생대의 실루리아기와 데본기에 갑자기 출현했으며 또한 현존하는 고사리류는 화석상의 것과 정확히 동일합니다.

 

속씨식물은 겉씨식물로부터 아무런 구조적, 형태적 중간계도 없이 백악기층에서 갑자기 나타났으며, 그것도 엄청난 다양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어떤 다른 식물로부터 점진적인 출현이나 진화가 아닌 갑작스런 화석에의 출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윈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식물의 기원에 대하여 지긋지긋한 미궁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식물화석증거로 살펴볼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과거에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같거나 같은 종 내의 다른 품종들이 존재했으며, 둘째로는 많은 식물들이 멸종되어 현재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과거 식물의 구조적 형태적 그리고 생식적특징들이 오늘날과 틀리며 점진적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없다는 것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화론이 주장하는 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수가 감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진화론자인 캠브리지 대학 식물학과의 코너 교수는 편견을 갖지 않고 식물의 화석기록을 살펴보면 창조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그랜드 캐년에서 발견된 화석 꽃가루는 우리에게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선캄브리아기, 즉 다시 말해서 종자식물로 진화되기 이전의 시기로 분류된 암석, 즉 하카타이 혈암에서의 화석 꽃가루 발견인데 전 세계를 뒤흔드는 발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꽃가루는 종자식물에서만 볼 수 있으며, 진화론적으로 최초의 종자식물은 중생대 초기에 겉씨식물 형태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화석 꽃가루가 선캄브리아기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결론을 지지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제안된 지질층에 근본을 둔 진화론적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질층은 지구의 연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며 화석 증거 또한 진화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노아의 홍수 때 일어난 지층의 변화의 산물일 뿐입니다.

 

두 번째로 현대의 꽃과 꽃가루가 백악기의 화석 꽃과 꽃가루가 구조적으로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태고 화석의 꽃과 현대의 생화가 똑같다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기만 해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진화가 아닌 창조되어진 것이고 그리고 진화론자가 주장하는 지질연대도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식물 속에 나타난 치밀하시고 준비된 그분의 계획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겨울동안 추위를 이겨내고 이제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이러한 나무들과 꽃들과 풀들의 생명력 속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한 사랑을 그들을 통해 나타내시고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 열매, 소리, 공기, 기쁨들을 우리게 주시고자 일하시는 그 분의 따스함을 느끼게 됩니다. 만물을 붙드시고 운행하시는 창조주하나님의 사랑을 높여드립니다.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6. 천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장 14절~19절

 

'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1:14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s in the expanse of the sky to separate the day from the night,

 

and let them serve as signs to mark seasons and days and years,

 

1:15 and let them be lights in the expanse of the sky to give light on the earth.' And it was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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