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작가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탔고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미 우리말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헤세는 지금까지 작가로만 알려져 화가로서의 헤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헤세는 40이 되던 해부터 "갑자기"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였고 말년에 이르기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헤세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미술에 소질이 있었으나 13세 때 "작가가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오직 작가가 되는 데만 몰두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동기는 제 1차 세계 대전 후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시기에 삶을 감당하기 위한 타개책"으로써의 선택이었다. 그는 1920년의 한 편지에서 "그림 그리는 일은 나의 마술도구이며 파우스트 외투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태우고 공중을 날 때의 마술 외투를 말함) 그 도움으로 나는 벌써 수천 번이나 마술을 부렸고 어처구니없는 현실과의 싸움을 이길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가 주로 그린 것은 그가 후일 이주한,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또 후일 헤세 자신이 "포도 넝굴과 밤나무 숲으로 우거진 잠자는 듯한 작은 마을"이라고 말한) 몬타뇰라 근교의 자연 풍경(산, 호수, 구름, 집, 정원, 나무 등)이었으며, 회전계단, 해바라기, 의자, 토끼집 같은 것도 즐겨 그렸다. 화가 친구인 쿠노 아미엣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숲과 포도나무와 마을들을 너무 사랑하여서 늘 자꾸 그것들을 그려야 할 지경이네. 그리고 조금은 진전이 있다네, 그리고 지금은 아주 단순한 모티브에 머물러 있는데, 그 이상 더 앞으로 나갈 것 같지는 않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나 물체 같은 다른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인데, 나는 사람을 그릴 수 없다네."
헤세의 그림에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은 없다. 그가 이런 대상을 그릴 줄 모른다기보다는, 인간에 지치고 인간세계에 염증을 느낀 그가 다시 인간을 그의 캠퍼스 위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변함없이, 묵묵히 다정히 서 있는 나무며, 떠가는 구름이며, 파랗게 빛나는 호수를 그렸을 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일종의 명상행위를 하였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일체의 것을 잊고 대상과 일체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병에 걸린 아내, 막내아들의 중병, 부친의 사망, 결혼생활의 위기, 전쟁 중에 겪었던 조국 독일과의 마찰 (독일의 많은 신문, 잡지에서 그를 "조국의 배반자", "징집기피자"로 매도했다.) 등과 같은 위기와 고뇌가 그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이런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였는데, 그 하나는 프로이트의 제자 랑 박사로부터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1927년의 한 편지에 헤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화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현상세계에 푹 빠져서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은 한 귀중한 체험입니다. 내가 여러 날 동안 나 자신과 세계와 전쟁과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 버린 것은 1924년 이래로 처음입니다."
헤세가 그림을 그렸던 또 다른 이유를 굳이 찾아보자면 독일로부터 배척받고 독자를 잃게된 헤세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실제로 1921년에는 그가 그린 그림과 함께 곁들여서 펴낸 것은 어는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헤세의 화풍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헤세 자신은 그저 간단히 그의 화풍이 "약간의 표현주의적" 경향을 띤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헤세의 그림을 표현주의의 틀에 맞춰 이해하는 데는 그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의 문학 세계와 그 시대의 회화의 흐름과 그 밖의 다른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표현주의 작가들은 예술을 개인과 사회적 요구의 표출도구로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표현주의 화가로 알고 있는 에른스트 루드비히, 에밀 놀데, 오스카 코코슈카나 에 드바르크 뭉크 같은 사람들이 이런 경향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들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시대의 위기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아름다움보다는 시대의 불안과 고뇌를 피를 토해내듯 강력하게 내뱉았다.
헤세의 표현주의적 그림이 정통 표현주의 작가 및 그들의 그림과 비교 해 볼 때, 키르히너의 나 뭉크의 , 놀데의 이나 코코슈 카의 같은 색감과 구성을 갖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헤세는 '헤세 식' 표현주의 성격을 가진 그림을 그렸다.
헤세의 수채화가 비교적 완곡한 표현주의적 색채를 띠는 것은, 프란츠 바우머가 지적한 것과 같이 그의 수채화가 아우구스트 막케와 "청기사"그룹(1912년 5월 뮌헨에서 출간된 표현주의 화가들의 연감이름인데, 이 그룹은 위에 열거한 표현주의화가 들과는 조금 달리, 개인적인 메시지를 덜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출하였음) 그리고 "다리파"화가들의 화풍과 닮았다. 실제로 헤세의 작품을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때, 한눈에 드러나는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막케의 이나 등을 보면 약간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헤세는 개인적으로 막케의 그림 세계를 잘 알고 있었 고, 화가 친구 루이스 모이레트를 통해 에른스트 모르겐탈러나 파울 클레 등을 알게 되었으며 그들로부터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프릿츠 뵈트거는 에 실린 라는 수채화가 곁들인 시를 해석하면서 그가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림 속에 잘 표현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모든 추한 것의 상징이며 고향"인 녹색 계곡 속에 세워진 공장을 보고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헤세의 시와 그림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비애와 처절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뵈트거는 "이 공장은 형식적, 미적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추한 것의 상징이며 자본주의적 예속과 인간 멸시, 부르조아적 수탈과 이윤추구의 표상"이라고 보았으며 헤세가 추한 것과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하여 이 세계의 참모습을 보여 주려했다고 보고 있다. 소위 이런 식이 헤세적인 표현주의 기법인 것이다.
헤세의 수채화에는 그러나 원초적인 순수함과 내면성이 깃들어 있다. 쥬르캄프 출판사의 편집장인 폴커 미헬스는 헤세의 작업 시작과정과 작품에서의 채색작업을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하고 있다. 우리가 헤세의 수채화를 논함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헤세의 수채화는 답답한 현실을 넘어서서 어떤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문학에서의 주된 낭만적 사조가 표현주의적 시대 상황 속에서도 동화나 유토피아적인 꿈과 환상의 세계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군터 쿠너르트나 일본의 헤세 학자 다카하시 겐지도 이런 견해에 동조한다.
헤세는 그림을 통하여 "저주받은 의지의 세계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는 그림을 통해서 현실을 잊었으며, 현실을 극복했으며, 현실 뒤의 이상세계를 추구했다.
헤세는 그 자신을 화가로 생각한 적은 없으며 예술가적인 명예욕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기쁨을 위해"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 자신만의 기쁨과 행복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종의 즐거운 유희로써 그린 그의 그림이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본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헤세는 생전에 약 3,000여 점의 미술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었고 현재 1,00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독일 미술계를 풍미할 무렵 그는 당시의 시대상황과는 달리 동화나 유토피아적 꿈과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다. 헤세는 그림을 통해 현실을 잊었으며, 현실을 극복하였던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 약간의 표현주의적 경향을 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20세기 초 독일사회세계의 참담한 현실과 인간의 폭력을 표현한 표현주의와는 다르다.
그의 그림은 "분노와 광기"로 대변되는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라기보다는 "헤세식(式) 표현주의"이다.
"사랑은 미움보다 크고, 이해는 노염보다 높으며, 평화는 전쟁보다 고귀하다." - 헤세
참조 : 감성공간 http://blog.naver.com/romance76.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