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한국 현대 미술을 이야기 할 때, 우선 제기되는 문제는 그 현대 미술의 태동 내지는 형성의 시대적 배경이다. 그리고 그 시대적 배경을 우리는 다기 두가지 범주 즉 한편으로는 엄격한 의미의 미술사적 배경과 또 한편으로는 보다 넓은 의미의 역사적 배경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경우, 다시 말해서 한국 현대 미술의 미술사적 배경을 두고 볼 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나라의 이른바 근대미술과 관련지어진다. 그러나 사실인즉 바로 그 한국 근대미술의 전통없이 또는 그 정립 없이 현대미술에로의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청과 대결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미술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유럽 근대미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는 미술이다. 그리고 그 유럽 근대미술은 20세기의 근원적으로 혁명적인 미술을 거쳐 현대미술에서의 전환을 이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은 필연적인 것이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근대미술은 일본화된 서구풍의 근대미술을 그나마도 단편적으로 그리고 절충적으로 이식해 온 것에 불과했다. 거기에는 계승과 혁신이라는 미술사적 연계성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 어떤 유파도 형성하지 못했다. 그와같은 상황은 8·15 해방후에도 지속되며, 오히려 이념적 혼란만이 가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역사적 배경으로의(단순히 미술사적인 차원을 넘어선 배경으로서의) 6·25전쟁이며, 8·15해방이 아닌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근대미술에 대한 어설프고도 때늦은 미련을 청산하게 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에 있어서 현대미술에서의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태어난 것이 통칭 앵포르멜운동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집단적인 표현주의적 추상미술 운동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의 앵포르멜운동의 주역들은 거의가 이십대의 젊은 작가들이었다. 이 세대가 6·25전쟁을 젊은 나이로 가장 절실하게 체험하고 몸소 산 세대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6·25가 젊음을 할퀴고 간 그 상처는 나에게는 기묘하게도 약 십오 년에서 십팔년이 시차를 두고 제이차대전 직후의 유럽의 정신적 풍토, 이른바 아프레 게르라 불려지던 젊은 세대 사이에 팽배했던 정신적 허무감 또는 방황과 상통하는 바가 적지않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피난 수도(부산)에서 실존주의가 젊은 세대에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예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며, 실상 우리는 우리늬 그 쓰라린 현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기를 강요 당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는 안이한 과거의 유산을 버리고 세계의 흐름 속에 과감히 뛰어들어 스스로 연소하기를 원했으며, 그 세대적 공감대에서 앵포르멜미술이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적 현대미술운동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특히 추상미술을 거론할 때, 이 글의 허두에서 지적한바 그 발상의 배경이 유럽, 나아가서는 미국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50년대초(어쩌면 그 이전에) 파리와 뉴욕에서 거의 동시에 태어난 전후 최초의 집단적 추상미술운동, 즉 파리의 앵포르멜과 뉴욕의 액션 페인팅도 다같이 표현주의적인 추상이면서도 그 발상의 배경은 각기 다른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경우, 우리에게는 물려받을 전통도 없을 뿐더러, 거부해야 할 유산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현대미술과 그 전시대의 미술과의 사이에 만일 그 어떤 것이 있다며, 그것은 오직 극심한 단절현상뿐이다. 그리고 역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되 우리의 현대미술은 바로 그 단절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를 보장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거기에는 그 어떠한 미술사적인 당위성도 없는 것이다. 실상 우리에게는 이를 테면 마르쉘 뒤샹 유의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체험도 없으며 칸딘스키의 '내적 필연'의 예술, 몬드리안의 '절대적 관계' 내지는 순수조형의 예술, 말레비치의 순수한 감성의 절대적 우위의 예술, 하다못해 마티스의 표현성과 조형성이 통합된 예술, 요컨대 현대 미술의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예술적 체험을 일찌기 지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현대 미술의 전개과정을 다음의 네 시기 내지는 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시기 구분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시각에 의한 것이며, 각 시기의 연대 설정 또한 다분히 편의상의 것임을 밝혀 두었다.
1)앵포르멜 또는 표현주의적 추상시기
:1950년대말- 1965년경
2)'환원'과 '확산'의 시기
:1960년대말 - 1975년경.
3)제3기 추상, 탈 미니멀 추상 시기
:1970년대 중반기 - 현재
4)신 이미니즘시기
:1970년대말 - 현재.
위에서 밝혔듯이 각 시기의 미술경향과 관련된 설정은 편의상의 것이기도 하려니와, 각 시기의 미술운동이 연대적으로 흔히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와같은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경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세계의 현대미술 전반에 걸쳐 노출되고 있는 현상이며, 바로 그것이 또한 현대미술의 특징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다. 또 여기에 다시 덧붙여야 할 것은 이와같은 유의 시기별 미술운동의 개관에 있어 문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술경향은 그 각 시기의 주도적 경향이라는 사실이며, 그것이 그 외의 미술경향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전혀 무의미하다거나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는 사실이다.
제1기의 앵포르멜미술에 대해서는 이미 선언에서 그 발생적 계기와 배경,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언급한 바 있거니와,그 시대적 상황이 프랑스의 전후세대의 그것과 상통하는 바가 많았음을 또한 지적했다.그러한 의미에서도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최초의 물결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앵포르멜이라는 이름으로 부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해 주고 있듯이 한국의 최초의 추상미술이 미국의 추상미술에서 보다는 오히려 프랑스의 표현주의적인 풍토에 접근해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만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혼돈 속에서의 생에의 의욕,생에 대한 일종의 실존적 확인에 대한 열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포화상태에 이르며 그리하여 1960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표현주의적 추상은 그 본래의 생명력을 잃은 채 공허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곧 한 시기의 종말을 고하는 징후이기도 한 것이다. 
그 뒤를 이은 '환원'과'확산'의 시기는 바로 한국 현대미술 전개에 있어서의 제2단계이며,이 단계에 있어 우리의 현대미술은 미술이념의 커다란 방향 전환과 아울러 미술 전개의 양상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미술이념적 차원에 있어서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미술 전개의 새로운 양상, 즉 같은 시기에 서로 대립되는 듯이 보이는 두 경향의 미술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현상은 적어도 그것이 집단적인 성격의 미술 움직임이라 했을 때 근대미술 이후의 우리나라 현대미술도 대립의 공존 내지는 동시진행이라는 현대미술 특유의 국면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환원'과 '확산'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때, 이 두개념은 반드시 어느 특정 시기의 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상반되는 두 경향은 이미 현대미술 그 자체 속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연대적으로 전후해서, 또 때로는 한 시기에 있어서의 동시적 공존은 우리 현대 미술에 있어 예외적이자 초유의 현상이라 생각되며, 그것이 다같이 제1기의 표현주의적 추상미술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타났다는 데에 또한 미술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표현주의적 추상미술이 쇠진해지면서 타성화되어 우리나라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주도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확산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예술개념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표현형태로 나타난 것이 이른바 오브제 미술이다. 이 오브제 미술은 사물(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마르쉘 뒤샹)를 제시해 줌과 함께, 미술을 우리의 일상 생활의 차원으로 확산시켰으며, 특히 조각의 경우 종래의 완결된 조각에서 미완의 상태로 그대로 제시되는 미술영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 오브제 미술은 그 오브제 관에 있어 구미의 것과는 그 발상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오브제는 가공된 것이거나. 기타의 인위적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그러한 오브제, 다시 말해서 가장 자연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는 오브제이다. 그리고 간혹 거기에다 문명적인 요소가 침입하여 하나의 상황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 그와같은 확산의 새로운 움직임이 구체적인 형테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를 눈 앞에 둔 1967 - 1968년경이다. 그리고 1968년 일군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꾸민 「한국 청년작가연립전」이 실질적으로 그 도화선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연립전이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이라는 맥락에서의 시대 문제는 논외의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연립전에 참가한 패기있는 젊은 작가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과감한 도전(예술이념적 차원과 세대적 차원의 것을 포함한)은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새로운 시기를 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한국 청년작가연립전」에는 오브제 미술과는 전혀 상반되는 경향의 작가들이 한 그룹으로 참가했다. 오리진 그룹의 화가들이 그들이거니와, 그들이 주장하고 나온 새로운 경향의 추상회화와 관련해거 나는 환원이라는 개념을 나름대로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전후 제2세대(물론 6·25전쟁 이후라는 뜻이다) 또는 '4·19세대'라고도 불려질 수 있는 이들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른바 기하학적 추상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현대미술은 프랑스와는 달리 일찌기 그 기하학적 추상의 유산을 물려받은 일이 없으며 오리진 그룹의 출현과 함께 우리는 최초의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이와같은 사실은 기묘하게도 미국의 현대미술의 경우와 비슷하다)
환원이라는 개념은 어제오늘에 등장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 용어는 역시 미국에서 액션 페인팅 또는 추상표현주의 물결에 대해,미국의 두번째의 추상회화물결이랄 수 있는 후기 회화적 추상의 기본적인 개념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회화적이라는 말은 곧 표현주의적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추상회화를 제창한 사람은 주지하다시피 클레멘트 그린버그이다. 그린버그는 그의 평문 「근대주의 회화」에서 그 근대주의 회화의 기본 성격을 회화의 철저한 이차원적 평면성과 함께 자기환원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추상회화에 있어서의 단순명쾌한 원색의 색면과 디자인의 물질적 개방성과 선적 평등성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추상미술의 제2의 물결인 기하학적 추상이 앵포르멜의 표현주의적, 더 나아가 타성화된 표현주의적 추상에 대한 반기임은 분명하며, 추상회화를 보다 명쾌하고 질서정연한 조형의 세계로 환원시키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전후 제2세대의 추상은 회화의 평면성과 함께 조형언어를 가장 기본적 어휘로 환원시키기를 시도했고 그럼으로써 앵포르멜과 함께 잃었던 그리고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일찌기 찾아볼 수 없었던 명석한 조형의식의 회복을 꾀한 것이다. 
확실히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있어 거의 자연발생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표현주의적 추상, 앵포르멜 이후, 더 나아가 우리의 근대미술 이후, 보다 분명한 조형의식의 회복이라는 것은 하나의 절실한 과제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조형의식이 셔구적인 맥락의 것이든 아니든간에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철저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분히 회의적인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반면에 그 조형의식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왜냐하면 한국 미술은 전통적으로 서구의 논리적 분석적 조형사고의 패턴을 일찌기 가져 분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기하학적 추상의 발상과 그 방법과 반드시 서구적인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우리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독특한 미술사적 여건과 또 이와 아울러 현대미술 접근에 있어서의 우리 나름의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사실로 해서 우리의 제3기 추상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미니멀리즘의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도 우리 자신이 독자적인 미니멀적 회화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환원적인 기하학 추상을 한국 현대 미술의 제2기 추상이라고 한다며, 제3 기 추상은 오늘날 일반화된 용어를 빌리건대 미니멀적인 성격이 강한 추상회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니멀적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그것은 보다 적절한 용어를 미처 찾지 못했기 때문일 뿐이며(추상미술이라는 용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앞서 지적했듯이 우리의 제3기 추상은 서구적인 의미에서의 미니멀리즘과는 그 본질을 달리하는 추상이다. 오히려 이시기에 우리나라 화단을 세계속의 한국 현대미술로 부각시킨 일련의 추상회화는 논리적 분석적 조형사고를 초월한 시점에서 그 어떤 독자적인 우리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회화세계를 그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이 시기의 추상을 '탈 미니멀적'이라 부르는 것이며, 그것은 곧 엄격주의적인 규격화된 미니멀리즘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에서 저자는 우리의 독자적인 자연관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으나. 그것은 넓게는 동양적 자연관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 깔려 있는 것, 그것은 자연을 인간이 정복하고 통제하고 또 소유하려는 객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불어 숨쉬는 원천적인 생성의 마당으로 인식한다는 사상이다. 또 그것은 자연을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스스로 생성케 한다는 관조의 세계이기도 하며, 또한 삼라만상을 그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보내고 또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자연관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탈미니멀 추상이 모노크롬의 단색회화로서 우리의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완성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모노크롬회화가 우리만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말레비치는 1910년대에 이라는 백색 모노크롬회화, 그리고 1960년대에 이브 클라인의 작품이 등장했고, 70년대에 있어서도 로버트 라이만, 그로브스너, 로버트 맨골드등의 모노크롬회화가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없지 않은 것이다. 어디선가 일본의 미술평론가 나까하라 유스께는 한국의 모노크로미즘(단색주의)에 대해 "색채에 대한 관심의 한 표명으로서의 반색채주의가 아니라, 한국 작가들이 회화에 대한 관심을 색채 이외의 것에 두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가 있다. 이 지적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 제기를 읽을 수가 있다. 하나는 반색채주의와 관련된 것이요, 그 또 하나는 색채이외의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색채의 문제가 앞서 이야기한 자연관과 관련된 것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편 나까하라가 말한바, 반색채주의라는 용어는 우리의 화가들에게는 합당치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모노크롬회화는 반색채주의가 아닐뿐더러, 더우기 단순한 색채에 대한 표명으로의 그것도 아니다. 우리의 모노크로미즘은 그 속성상,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반색채주의라기 보다는 오히려 탈색채주의라는 말이 합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물질적 감각적 색채의 차원을 넘어선 색채주의이며, 수묵화처럼 모든 색채의 잠재성을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모노크로미즘이요, 한마디로 정신성으로 물들여진 일종의 범색채적 세계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특유의 모노크롬회화가 앞에서 되풀이 이야기한 우리의 자연관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만일 자연을 '본연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규정지었을 때, 그것은 곧 가장 원천적인 것에서의 회귀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회귀는 급기야는 예술행위 그 자체와도 관련지어지며, 여기에서 또한 예술행위는 자연을 닮은 원천적인, 다시 말해서 자연무위의 행위로 회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색채를 포함한 모든 인위적 일루저니즘을 회화에서 배제함으로써 한국 고유의, 더 나아가 동양 고유의 탈미니멀 회화를 정립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흔히 한국 미술의 특성은 자연주의에 있다고 주장되고 있다.그러나 자연주의의 개념 설정 여하에 따라 한국 미술의 특성에 대한 해석은 엄청난 오류를 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자연주의라는 용어는, 그것을 서양 미술의 맥락에서 볼 때 흔히 사실주의의 동의어로 쓰이고 있을뿐더러,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자연주의는 최상급의 사실주의, 극대화된 사실주의 또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서구적인 개념으로 볼 때 한국 미술의 특성은 자연주의적인 것이기는 커녕, 그것과는 본직적으로 이질적인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전통적인 미술이 자연에의 귀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자연주의라기 보다는 차라리 '범자연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싶다. 왜냐하면 우리 미술속에 담겨진 자연은 어떤 객관적인 대상세계가 아니라, 자연편재라는 자연관이 뒷받침해 주고 있듯이 인간의 정신과 함께 생성하는 보다 원천적인 의미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탈미니멀적 추상세계가 바로 그와 같은 자연관과 상응하는 미술형태로 보이거니와,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을 두고 진정 한국적이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위태롭고도 놀라운 시대, 하나의 세계의 종말과 다른 세계의 탄생이 절망적으로 뒤얽히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반영하는 즉각적인 양상이 바로 혼란이다."
짦막한 이 인용문은 1947년, 페르낭 레제가 어느 전람회에 즈음하여 쓴 글의 한 귀절이다.
1947년이면 아직도 전쟁(제 2차대전)의 상처가 미처 가시지 않은 시기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레제의 이 글귀 속에서 대전후의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터이다. 그러나 시실은 그와 같은 상황이 반드시 전후의 상황으로만 그치는 것인가, 한세계또는 한 시대의 종말과 또다른 세계, 또 다른 시대의 탄생이 뒤얽히고 있는 상황은 오늘날의 미술에서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그 갈등이 한층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국제적 현대미술의 동향부터가
60년대 이후, 그 뒤얽힘은 한층 더 가속화되고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보아 온 터이다. 그리고 그와같은 와중에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간에 우리 미술도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히 하나의 드라마라 할 만한 것이며,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우리 자신의 현대미술이며, 그것은 한국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주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 주체성의 문제는 비단 미술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술적인 차원을 넘어선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이문제에 관해서는 별도의 독립된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이 곧 전통의 문제와도 관련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어떤 결론적인 주장일 수는 없겠으나, 벌써 옛날이 된 1980년, 일본 후꾸오까시 미술관 개관 일주년 기념 특별전으로서 꾸며진 「아시아 현대미술전」의 한국 섹션을 위한 저자의 서문 몇 귀절을 아래에 옮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의 문제가 매우 절실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말해야 할것이다. 충전한 의미에서의 근대미술의 전통을 정립하지 못한 채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이 그 조형사고, 표현방법등을 서구의 그것에 의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숙명적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은 애초부터 주체적 위기를 안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의 작가들에게 있어 그처럼 위기에 놓인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회화에 있어 단순히 과거의 회화적 어휘라든가 소재를 되살린다는 것은 논외의 이야기이다. 또한 어떤 전통적 특정 양식을 현대적으로 번안한다는 것도 거의 무의미하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양식을 창출해낸 보다 근원적인 원천을 찾아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작성자: 아트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