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듣는게 아니라
귀를 통해 전달된 소리, 그 소리로 인한 뇌의 울림을 느끼는 것..]
1994 . 어느날 배철수
아마도 내 인생의 첫번째 음악은 아버지가 태교 음악으로
들려주신 manhattans의 "Kiss And Say Good Bye" 가 아닌가
싶다. 왜 남들처럼 Bach나 Mozart 따위의 음악이 태교 음악이
아니었는가에 대한 물음은 아버지의 음악 성향에 대한 물음이므로
할 필요가 없는 듯 하다..
어릴적 부터 참 음악은 많이 들었다. 내 기억으로는 꽤많은
LP들이 집에 있었는데 그 중에 내가 들어본 것은 Carpenters의
앨범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가끔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진짜 관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듣던것이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이다. 워낙 전 세계 밀리언 스매쉬 앨범이기에 아마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Beat It 이나 Billy Jean은
알리라.. 하지만 그 앨범에서 내가 즐겨 듣던 것은 Human Nature나
맥카트니경과 함꼐 부른 The Girl Is Mine 이었다
뭔 메세지인지 뭔 소리인지 몰랐고 그냥 발음 나는대로 휴민네처
휴민네처 이따위로 따라 불렀던것 같다.
지금도 세간의 비난과 동정을 받고 있는 마이클이지만 마이클이
그 당시 수많은 소년 소녀에게 뮤지션의 꿈을 심어준 장본인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내 돈 주고 음반을 사본적도 없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국민학교 6학년 시절, 그 시절에 열병처럼 번지던
음악 아이콘이 있었으니 New Kids On The Block이다..
힙합, 알엔비, 소울, 팝등이 전체적으로 섞인 월드 클래스 공식
1호 보이밴드. 이 5명의 백인 소년들은 전세계를 장악했고 나역시
그들의 영향력은 벗어날 수 없었다. 뜻모르는 영어 가사를
흥얼 거리고 그들의 음악과 춤과 행동에 열광했다.
지금도 가끔 들어보는데 여전히 묘한 끌림과 그 당시를 회상 시키는
묘한 매력은 있다.
그렇게 뉴 키즈는 나의 모든 문화 소비와 문화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 팝음악에 열광하던 어느 날 Mc Hammer라는 가수를
알게되었다. 쏟아 붓는 랩과 현란한 춤, 화려한 무대 매너는
뉴 키즈와는 다른 무언가 강력한 임팩트가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힙합에 빠지기 시작한 시기인것 같다. (물론
뉴키즈를 좋아하던 시절에도 중간중간 랩을 하던 도니를 제일
좋아했으니 처음부터 랩이라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기는 했나보다)
랩은 참 멋졌다.. 무언가 어깨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그 Groove한
느낌은 참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다.
열심히 MC 해머를 들었다. 테잎을 사다 이리저리 더빙(그 당시는 테잎시대기 때문에 더블 데크와 워크맨의 시기이기도 하다)도 해보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짓이지만 그때는 꽤 심오하고 즐거운
취미 생활이었다...
아무튼 내게 힙합이란 MC해머가 전부였다.
열악한 라이센스 환경 덕분에 좀처럼 국내 비 인기 종목인
힙합음악은 국내에서는 라이센스 앨범으로 절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협소한 환경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배철수의 음악켐프였다. 토요일 저녁 우연히 독서실에서 들은
빌보드 싱글차트 20 코너에서 정말 듣도 보도 못한 힙합들이
대거 순위권에 포진해있었고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Snoop Dogg과 Dr.Dre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되고 그 궁금증과
그들의 앨범의 국내 발매 여부에 정말 목숨을 걸었다.
정말 온 동네 레코드 샾을 다 뒤졌다.
여기서 Episode 하나.
닥터 드레의 앨범을 찾아 찾아.. 동네 레코드 샾을 다 뒤지던 중
한 샾 주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 그 가수.. 있었는데 우리 가게에는 안 들여놨어.. 인기가 없을것
같았거든..근데 학생이 찾네? 내가 공급사에 전화해서 하나 부탁해 놓을께.. 내일 모레쯤 와봐..."
내일 모레..
"아줌마 닥터 드레 주세요..."
"아.. 왔구나 학생.. 이거 참 어렵게 구했어.. 근데 왜 이런걸 들어?"
하며 내미신 테잎은 다름아닌..
닥터 레게 -_- (Bobby Kim의 데뷔 그룹)
..........
아무튼 각설하고
그 당시 매주 토요일은 힙합을 듣는 날이엇다
7시부터 8시까지 빌보드 순위권을 장악한 힙합을 듣고 나면
아 이게 내 음악이구나 싶었고 그에 비례해서 그들의 앨범 구매에
대한 갈망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미국에 있는 이모에게 부탁해 처음 손에 쥔 그 앨범이
Warren G의 Regulate G Funk Era 이 앨범이다.
솔직히.. 울었다. 정말 눈물이 났다. 유치하지만 너무 좋았다
정말 밤을 새워 듣고 듣고 또 듣고, 씨디가 달을까봐 테잎에
더빙해서 테잎이 늘어질때까지 듣고 또 듣고..
G Funk는 나의 전부였다..
그리고 점점 더 해지는 힙합, 특히 G Funk에 대한 갈망은
억누를 수 없었다 GMV (Global Music Video라는 음악 잡지) Q&A코너에 매달 질문 엽서를 통해 질문을 했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었기에 정보 습득의 유일한 매체였다) 가사 내용 때문에 심의를 통과 할 수 없어서 국내 라이센스 전망은 전혀 없었기에 심의
위원회를 저주했다...
그러다 한 친구를 통해 압구정 어디께의 S레코드에선
수입 CD를 판다더라.. 하는 정보를 입수하였고 오아시스를
만난듯 정말 한풀이라도 하듯이 미친듯이 CD를 사 모았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때까지 무려 800여장의 CD를 사 모았다..
(한장당 15천원이었으니 지금 계산해보니 12백만원이다 -_-)
그때는 힙합이 애인이었고 S 레코드 샾이 데이트 장소였으며
힙합 음악만 들어도 배가 부른 시절이었다.
군 입대 할때 가장 슬픈것이 힙합을 2년동안 마음껏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입대 전날 혼자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새벽 6시까지 음악 듣고 택시타고 논산으로 입대했다 젠장-_-)
그렇게 2년여의 공백이 지나고 나서는 상황이 많이 변했더라..
음악을 다운 받고 동네 레코드 샾은 하나둘씩 문을 닫더라..
그렇게 2년여의 공백이 지나고 나서는 나의 열정도 많이 식었겠지..
CD를 사러 가는 일이 귀찮게 여겨졌고 CDP는 크게만 느껴지고
작고 아담한 mp3p에 관심이 가고..
힙합도 많이 변했더라.. G Funk는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Dirty South와 Bling Bling 사운드가 주류를 이루더라
너나 할껏 없이 클럽에서 J Kwon을 Tipsy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고 50cent의 Disco Inferno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되더라..
남들이 좋아하니까.. 나는 관심이 덜해졌다..
열정이 없으면 향유할 수 없는 그런 문화였는데
이제는 너무 대중화 되었고..
그쪽네들 사정이야 나도 잘 모르겠지만 뮤지션으로서의
자부심 보다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힙합을 택한 느낌이었다.
나의 사그라진 열정과 너무나도 대중화 된 힙합 앞에서
결국 나는 easy Listner가 되었고 이제는 별로 장르는 가리지
않고 듣는다..
하지만 지금도 그 때의 앨범을 꺼내어 듣다 보면
울컥하는 그 무언가는 아직도 존재하는 듯 해서 다행이다..
Baby Have You Ever Heard About Nigga Called Warren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