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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속에 여전히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서광훈 |2006.04.30 12:45
조회 235 |추천 8
...한국이 버린 유도 천재

성명: 추성훈 [아키야마 요시히로]
출생: 1975년 7월 29일
키: 177cm
몸무계: 84kg

재일동포 선수로 74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한국 대표상비군까지
선발됐지만 부상으로 태극마크의 꿈을 접었던 아버지(추계이)의 권유로 3살때 유도복을 입은 그는 96년 일본 긴키대 시절 전국대회와 지역대회를 휩쓸자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대표선수로 선발하겠다'는 유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꿈을 위해 한국에 왓었다.

유도를 시작할때부터 그의 꿈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세계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수많은 일본유도팀의 스카웃에서 아랑곳하지않고 감히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한국에 와서 태극마크를 단 뒤
한국마사회배 2000코리아오픈유도대회 남자 81㎏급에 출전했다.
준결승에서는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조인철을 주특기인 허벅다리후리기 한판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중국의 다이를 경기시작 14초만에 모두걸기공격으로 판을 따내어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후 한국에서의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그는 심판의 석연치않은판정으로 조인철(용인대)에게 매번 지고 말았다. 그 시절은 용인대가 아니면 국가대표가 안된다는 시절이었다. 국 A급 심판 10명을 선출하면 10명 모두 용인대출신이었던것이다. 일동포라서 차별받았고, 한국 유도계를 꽉 잡고 있는 용인대 출신이 아니라서 또 차별받았다. 세간에는 그의 경기를 보고 ‘승부는 이기고 판정에서 졌다’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서 더이상 선수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2001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그는 당시 “나보다 약한 선수가 우승하는 일이 계속 되다 보니 한국에서는 운동하기 싫다”는 말을 남겼다. 일부에서는 그가 조국을 저버렸다고 비난했지만, 그 반대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보다 더 어렵다는 일본의 국가대표가 되어 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찾았다. 가슴에 일장기를 단 그는 결승에서 한국의 안동진과 겨루게 되었다.당시 경기장에 있던 수많은 한국관람객들은 아키야마(추성훈)라는 선수에게 많은 비난을 보냈다. 결승에서 추성훈은 안동진을 꺽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당시 한 스포츠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추성훈이 조국을 메쳤다’고 했다. 하지만 추성훈은 “나는 영원한 한국 사람”이라고 우승 소감에서 밝혔다

추성훈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종합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그리고 지난 5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케이원(K-1) ‘히어로스’ 대회에 참가했다. 격투기 선수로서는 한국 무대 데뷔전이었다. 주관사의 쇼 비즈니스적 감각에 따라 한국 쪽 주장으로 출전한 추성훈은 1라운드 중반 오쿠다 마사카쓰(일본)에게 잇단 펀치세례를 퍼부은 끝에 TKO승을 거뒀다.

경기 뒤 마이크를 잡은 그는

"한국에 와서 경기해 너무 기쁩니다.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일본사람으로 바겼습니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항상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양쪽 팔에 붙이고 나온 태극기와 일장기를 번갈아가면서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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