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 개론(8)
"결혼시장서 여전히 통하는 게임의 규칙"
Olive thomas ... death by poisoning
키: 165 이상. 몸무게: 48kg. 용모단정한 여성. OO년 이후 출생. 나이제한, 키 제한, 몸무게 제한, 얼굴 제한, 학력 제한, 지역 제한, 성별 제한, 장애의 여부, 부모의 출신 지역, 보호자의 직업… 회사에서는 신입직원을 뽑을 때 여러 가지 제약들을 내심 두고서 사람을 뽑는다.
아니, 업무를 키로 하고 몸매로 하고 얼굴로 하고 출신 지역으로 하고 성별로 하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적성과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예전엔 위와 같은 요구사항을 취직할 때나 받았지만 이제는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 위해 무슨 결혼정보회사 같은데 등록을 하려 해도 저런 것들을 기재해야 한다.
기재사항에 따라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등급이 나뉜다. 얼굴, 몸무게, 연령, 학벌, 집안 재산 정도, 집안에 잘 나가는 친인척들의 숫자, 직장 연봉수준.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그런 규정을 두는 건 벌금형에라도 처해지는 ‘범죄행위’가 되었지만 연애시장과 결혼시장에서는 여전히 ‘통하는’게임의 규칙이다.
좀 안생기고 학벌도 그저 그렇고 집안도 평범한데 직장마저 불안정한 어떤 여자. 그 여자가 좀 생기고 좋은 학벌 간판 삼아 잘 나가는 직장마저 가진 남자와 불같은 연애에 빠졌다. “불가사의야...불가사의.” 안 생기고 빽 없는 여자는 안 생기고 조건이 바닥을 기는 남자와 사랑을 한다. “
쟤네는 진짜 사랑하나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십 몇 년 아래의 젊은 청년과 결혼을 발표했을 때 세간의 사람들은 그 남자가 젊음으로 엘리자베스의 돈을 얻었고,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돈으로 젊음을 샀다고 믿고 싶어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비슷한 조건에 있지 않은 사람들끼리 연애를, 결혼을 하면 꼭 무슨 거창하고도 비장한 결단이 뒤에 숨어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였나? 그 옛날 명문대 나온 장진구가 고등학교만 졸업한 여자랑 결혼할 때 이 ‘안 어울리는 결혼’을 친구들에게 이해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이 결혼을 통해 나는 계급간의 화합을 몸소 실천해 보이겠어!”라는 말로 한판 쇼를 벌였던 것은.
사랑을 하는데 주위의 허가를 받아야 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길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물고, 남 사랑하는 거 참견하느라 자기 사랑할 시간도 없이 바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 때문에 늘 사랑은 주위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데 웬 조건과 제약이 그렇게 많이 따라붙어 다니는가… 왜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와 연애를 하고, 이혼한 여자가 총각과 재혼을 하고,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여자가 여자와 연애를 하고, 안 생긴 여자가 생긴 남자와 연애를 하고 하는데, “쟤네 왜 저래?”“쟤네 진짜 사랑하는 거 맞아?” 라는 의혹에 가득 찬 눈길을 받아야 하는지… 신분과 계급에 따라 철저하게 ‘교제’의 대상이 제한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시절이 많이 변했고 공식적인 신분제가 사라졌고 자유연애는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은 더 많이 생겨나고, 그 신분들에 따라 더 많은 귀천이 갈라지고 있다.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 사랑을 한다고 해서 감옥에 잡아 가두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내는 부당한 눈초리와 비아냥거림을 등에 업고 오늘날의 연애와 결혼은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를 원활하게 유지시키는 미끄러운 윤활유가 되고 있다. 사랑하는데 마음만 진짜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 어렵나… “우리,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내가 너를 사랑하겠다는데 우리는 누구의 허락을 왜 받아야 하는가…
민가영/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 <여성신문> 6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