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총새
이철원 / 소설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총새에 대해 떠올린 것은 오선배로부터 그의 딸이 시집을 간다는 청첩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오선배를 처음 만난 곳은 내 첫 직장이 된, 어떤 여성지의 입사 시험장에서였다. 그때 나는 입사 지망생이었고 오선배는 시험 감독관이었다. 나는 시험지를 나누어 주는 오선배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오선배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그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던 어느 날 나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도서관에서 시집 한 권을 뽑아 읽다가 다음 강의 시간을 놓칠 정도로 빠져들고 말았다. 마지막 시를 읽고 나서도 나는 쉽게 시집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시 한편 한편이 내게 준 문학적 충격은 대단했다. 나는 시집에 인쇄된 작가의 사진과 연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문학에 뜻이 있던 나로서도 처음 접하는 무명 시인이었다.
그날 나는 강의에 들어가지 않고 내내 도서관에서 그 무명 시인의 다른 시집들을 찾아 읽고 또 읽었다. 그날 이후 그 무명 시인은 나의 오래된 친구가 되었으며, 술에 취하면 연인이 되기도 했으며, 원고지 앞에 앉으면 스승이기도 했다. 그 무명 시인이 바로 오선배였다.
시험장에서 오선배를 알아본 순간 나는 약간 실망이 되었다. 내 기억 속의 오선배는, 시집에서 보았던 오선배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세상을 꿰뚫어 볼 듯한 형형한 눈빛과 까칠한 턱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시험장 안의 오선배는, 시집 밖의 오선배는 단정한 머리카락, 적당히 졸라맨 넥타이, 말끔한 면도자국이 세상과 잘 타협할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과 다른 오선배의 그런 외모조차 오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못했다. 오선배에 대한 문학적 경외심이 그만큼 뿌리가 깊었기 때문이었다.
입사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도 오선배였다. 오선배와 같은 공간을 쓰고 함께 술도 마시고 문학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고 행복했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나는 오선배가 팀장으로 있는 부서에 발령을 받았다. 그것은 내가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으므로 회사 다니는 것이 즐거울 정도였다.
오선배와 며칠을 지내면서 나는 그가 수첩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점심시간 이후나 퇴근 무렵에 무엇인가를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를 하곤 했다. 나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수첩에 쓰는 오선배를 지켜보며 그것이 문학적 영감을 옮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오선배의 그러한 치열한 문학적 태도가 그의 시의 뿌리가 되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오선배의 수첩을 훔쳐보고 싶었다. 그 수첩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친구와 아름다운 연인과 추상같은 스승을 만날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나는 오선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수첩을 기어이 열고 말았다. 수첩에 깨알같이 쓰인 글자를 보며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수첩에는 콩나물 50원, 두부 100원, 버스비 등이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수첩은 내가 상상했던 시작 노트가 아니라 가계부였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수첩을 닫았다. 공연히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상하게 오선배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비로소 내 눈에 시인 오선배가 아닌 생활인 오선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오선배의 진면모를 매우 객관적인 태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발견한 오선배의 두드러진 태도 중의 하나는 돈이 그의 가장 중요한 본질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내가 딱히 발견했다기보다는 직장 동료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것을 내가 남보다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었다.
오선배는 직장 동료 그 누구를 위해서도 자신의 지갑을 열지 않았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어도, 부서별 회식에서도, 심지어는 동료가 상을 당해도 부조금조차 내지 않았다. 동료들은 오선배가 지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지갑이 오선배를 소유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오선배도 그런 비난을 들었을 법도 했지만 나는 단 한번도 오선배가 지갑을 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취재가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와 보니 오선배가 사진기자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싸우는 이유가 기가 막혔다. 오선배와 취재를 나갔던 사진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받은 촌지를 부비로 쓰자는 것이었고 오선배는 촌지를 받은 일이 없다고 우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오선배에게 화가 났다. 사진기자가 옳은지 오선배가 옳은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늘 돈에 관한 한 불투명한 오선배의 평소 태도가 불러온 시비임에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오선배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조차 부끄럽기까지 했다.
퇴근 후, 평소에 자주 다니던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간 나는 구석에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오선배를 발견했다. 오선배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옆자리에 앉았다. 오선배는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오선배가 내게 술을 한잔 권하며 입을 열었다.
물총새에 대해 들어봤어? 물총새는 드넓은 바다를 날다 지치면 암놈이 수놈 밑으로 들어가지. 왠 줄 알아? 암놈이 수놈을 등에 업고 바다를 건너는 거야.
오선배는 그 말을 아주 느릿하게, 어찌 들으면 청승맞게 느껴질 정도로 비감한 어조로 털어놓았는데, 마치 그의 시를 읽었을 때처럼 마음이 매우 아팠다. 오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말없이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물론 그날 오선배가 마신 술값까지 내가 냈지만 오선배의 물총새는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 물총새에서 오선배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한 달쯤 후에 오선배의 아내가 죽었다는 부음을 들었다. 장례식에 도착했을 때 부쩍 수척해진 상복 차림의 오선배는 거의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얼굴로 멍하니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오선배의 모습에서 그의 상심의 정도를 느끼고 가슴이 매우 아팠다. 조문객이 모두 돌아가고 오선배와 단 둘이 남았을 때 그가 독백을 하듯 입을 열었다.
내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인 줄 아나? 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홀로 남을 당신이다. 그랬지. 아내는 늘 그랬어. 늘 자신보다 내가 먼저였지.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총새였어. 늘 나를 업고 이 험한 세상을 날아다녔어. 그것을 깨달은 것은 부끄럽게도 아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안 때였지. 나는 이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잘난 시를 쓴답시고 가정을 등한시했지. 먹고 사는 것은 전부 아내가 책임졌어. 나는 아내의 등에 업혀 산 셈이지.
아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지. 그건 아내를 살리는 일이었어. 이제는 내가 아내를 업고 바다를 나는 일이었어. 남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까지 나는 아내의 치료비를 모아야 했지. 사진기자와 싸우던 일 생각나나? 촌지, 받았지. 전혀 부끄럽지 않아. 만약 내세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단 한 사람, 내가 지금까지 함께 지낸 아내 이외에는 그 어떤 사람과도 만나고 싶지 않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아나? 아내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거야.
오선배는 아내를 보낸 후에 우편을 통해 사직서를 냈다. 아마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까닭이리라. 나는 오선배의 사물을 챙기며 그가 쓴 가계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때 비로소 오선배가 동료는 물론 자신을 위해서도 단 한 번도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선배의 가계부에는 늘 콩나물 50원, 두부 100원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절약한 돈으로 아내의 건강한 육체를 사고 싶었으리라. 오선배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총새였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번 결혼식에 오선배의 딸에게 물총새 한 쌍을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