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톡'에까지 오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오늘의 톡' 제목을 보고.. 나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클릭했는데.. 제 글이었네요..^^
저 사실은.. 아빠와 어렸을 때부터 친한 편은 아니었어요..
저도 지금까지도 아빠 닮아서 무뚝뚝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늘 무섭고.. 늘 대하기 어려운.. 무뚝뚝한.. 그런 분이셨거든요..
근데.. 인생의 무게가 느껴질수록.. 의지할 아들 없이..
이젠 맏딸인 저에게.. 조금씩 마음 문을 여시는 것 같아여....
몰랐는데.. 언젠가 동생이 얘기해줬어요..
아빠가 언니를 더 많이... 신경쓰신다고..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살면서.. 이제까지 아빠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그리고 좀더 친근한..
그런 동생과 날 차별한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지금에야 와서.. 그 아빠가.... 우리 아빠가.. 나에게.... 조금씩 의지하려하시는 게.. 막 느껴지니까..
동생이 한 말을.. 알게되면서.. 그러면서 또.. 맘이 너무 아파여..
내가 왜그렇게.. 오해를 했을까..
지난 25년간.. 아빠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여..
아들도 없는데.. 맏딸로서.. 진작에.. 좀더 많이 의지가 되어드렸어야 하는건데.. 하면서여....
전 앞으로 평생.. '대리운전'이라는 글씨조차도 못쳐다볼 거 같아여..
우리 아빠한테 너무 미안해서여......
너무 죄송해서..여..........
마음이.. 너무 아파서여.............
이런 저와 우리 아빠.. 우리 가족에게.. 힘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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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밤에도.. 아빠는 일하러 가셨어요..
오늘은.. 회사를 마치고.. 닭고기를 사왔어요..
아빠 드시라고여..(물론 저도 배가 많이 고팠고;;)
아빠가 배부르다면서 잘 안드시려고 하셔서.. 겨우겨우 먹여드렸어요..
무뚝뚝한 저로서도.. 어떻게 그렇게 먹여드렸는지 모르겠네여..
아마.. 아빠한테 이렇게 살갑게 군 건 처음인 것 같네여.. 남자도 아니면서..;;
그리고.. 아빠가 며칠전에 밖에서 밤새고 들어오신 후로..
몸도 안좋으시고 밖에 비도 많이 오니.. 오늘만큼은 집에서 쉬시라고 했는데..
그런 거 따져가며 일을 안할 수는 없다며.. 극구 출근을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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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저희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아.. 그전에.. 제가 알고 있는 아빠의 이야기를 먼저 할게요.
아빠는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우리 엄마와 결혼을 하셨답니다..
그리고 상경을 하셔서 서울에서 저를 낳으시고 제가 5살이 될 무렵 안양으로 이사를 왔더랬습니다..
그 때 저희집.. 어린 저의 기억에도 잘 사는 편은 못되었습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자식에게 보태줄 돈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자취를 하며 힘들게 대학을 다닌 탓이었는지 위장병이 있습니다.
어릴적 제 기억에 아빠는 항상 병원과 약을 달고 사셨고, 언제나 비쩍 마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가 회사를 많이 옮겨다니셨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어릴적에 아빠가 잠깐 제약회사에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약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시자, 저는 아빠가 의사인 줄 알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아빠를 소개할 때에도 우리아빠는 의사라고 했습니다. 정말 그런 줄 알았으니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빠는 회사도 많이 옮겨 다니셨고
이곳 서울에 와서도 많은 모진 일들을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야바위꾼들에게 눈을 가리운 채로 전혀 모르는 곳으로 잡혀가서 돈을 다 빼앗긴 일도 있고..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목숨 빼앗기는 것도 다반사인데.. 비하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 때.. 우리 아빠.. 상처 많이 받으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사회에서 상처를 많이 받자, 아빠도 조금씩 순수했던 모습들을 잃어가시는 듯 했습니다..
사회를 알아가신 거죠.
작년까지 저희 아빠는 외국인 기업에 몸을 담고 계셨습니다.
약 10여년간 그곳에서 외국 사장들의 신임도 받고 계셨구요 사장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지사 사장이 다른 후보를 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물론 아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보가 당시 사장에게 아부를 많이 떨었나봅니다.
아빠보다도 어린 그 후보..
그가 사장이 되고 나자 한사람, 한사람을 쫓아내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우리 아빠였습니다.
바른 말만 하는 우리 아빠가 계속 걸렸겠지요.
아빠가 퇴사를 하시고, 다시 직장을 알아보려고 하셨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사업을 지금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치만 자금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아빠가 생각하신 것은 투잡이었습니다.
낮에는 사업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반대했습니다.
위험하고.. 안된다고..
엄마도, 나도 많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대리운전을 시작하셨고..
그 시작하시던 날.. 집에 일찍 와 계실 아빠가 계시지 않자.. 많이 울었습니다..
곧 퇴근해 오신 엄마도 속으로 많이 우셨을거에요..
그리고 이 얘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친척들에게도, 아빠 지인들에게도, 동생에게도..
그때부터 아빠는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아침에 주무시는 모습 보고..
저 퇴근해 오면 그때 대리운전 나가시는 모습.. 봅니다..
아.. 어제는.. 제가 출근할 때..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늦게 끝났는데.. 버스도 끊기고 해서.. 택시타고 오면.. 돈이 많이 든다고..
밖에서 몇시간을 보내다 아침에 들어오셨다네요..
언젠가 아빠가 저와 나란히 서 계셨는데. 왜그렇게 작아보이시던지.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정말. 부모가 자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찢어진다고들 하지만,
자녀가 부모의 그런 모습을 봐도 마음 아프긴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이런.. 힘든 시간을 견디고..
가족이 더욱 하나되고, 더욱 부요해질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아빠에게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