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형과 연락한지가 꽤 오랜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그간 우리가 연락을 취하지 못한 기간이 벌써 근 7개월째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형과 내가 만난 것이 1988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이형은 거래처에서 생산과 영업담당을 도맡아 하여 일약 만능사원으로 통했습니다. 아무리 적은 공장일지라도 혼자서 10여명의 주부사원들과 그 몇 배의 외주의 주부사원들을 상대하고 또한 원청업체에 들러서는 나이어린 외주관리 담당사원들과 부닥치면서도 꿋꿋하게 잘 견디어낸 이형이었습니다. 그런 이형에게 어려움이 닥쳤던 때가 아마 1997년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해는 대한민국이 경천동지할 정도로 뒤집어지는 이른바 I.M.F 구조 금융시대에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그해 이형이 거래하던 원청업체인 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의 삭풍이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사장이 새로운 부사장을 영입하고 또 부사장이 자신이 입맛에 맞는 공장장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일종의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판갈이를 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착착 진행하여 모든 관리직 사원들은 원치않는 사표를 일거에 공장장에게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씩 공장장과 남느냐 떠나느냐를 가늠하는 담판을 짓는 중대한 기로를 모두들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새롭게 낙하산으로 떨어진 공장장은 당시 부도가난 한라그룹의 기술부장으로 있던 사람이었지만 능력은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특정대학(서울대)을 나온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른바 학벌우월주의에 매몰되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으로 당시 지방의 무명대학이나 경인지방 변두리의 전문대를 나온 특정인과는 시시때때로 업무추진방식에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당시 관리직사원들은 월급이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밀리는 상황으로 생활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공장을 멈출수 없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생산직사원들은 월급도 밀리지 않고 구조조정도 하지 않아 그야말로 존귀한 층이었습니다. 사장은 4개월에서 6개월까지 관리직 급여를 밀리면서 하는 말이 급여와 퇴직금을 함께 받고 싶으면 명예퇴직서를 작성하라고 강권을 하던 그때였습니다. 살기위하여 출근하느냐 출근하기 위하여 사느냐를 놓고서 모두가 망설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이형도 알다시피 1차적으로는 구조조정을 하여 회사를 떠난 관리직 사원들이 일부 있기도 하여 남아있는 관리사원들은 현장으로 땜질과 같은 돌려막기 식으로 사장과 부사장 그리고 공장장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던 시절이었습니다.
특정인은 회사 내에서 바른말 잘하고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소문이 나있었고. 또한 이전에는 노동조합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 신망을 받던 특정인은 사사건건 회의시간에는 공장장과 의견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그 의견 충돌이란 공장장의 불필요한 업무간섭과 업무추진에 있어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생기는 작은 충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장과 부사장 그리고 공장장은 회사운영이 어렵다고 하여 외주에 나가는 물량들을 반출감소 및 반출금지를 내렸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엄혹한 상황을 이형이 근무하는 공장도 비켜가질 못하고 이른바 된 통으로 맞았습니다. 당시 이형의 사장은 우리 회사의 해외영업담당 부장의 형이었지만 그도 어찌할수 없어 그냥 멀뚱하게 쳐다보기만 하였습니다.
당시 이형이 몸담고 있는 공장의 사장과 사장의 아버지는 우리회사가 이만큼 클수 있게 만든 이른바 창업공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칼날을 가지고 부사장과 공장장에 낙화산으로 임명된 그들의 마구잡이 칼날에 어쩔수 없이 당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차츰 외부에 출하되는 물량들이 대폭 감소되면서 이형의 공장도 구조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의 주부인력을 반으로 줄이고 외부로 출하하던 물량을 전면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으로 자구책을 강구하였습니다. 구조조정의 한파로 인해 외부 협력업체들은 하나둘씩 차츰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1998년도 아마 이맘때의 계절로 기억합니다. 당시 사장과 부사장의 총애와 함께 능력있는 관리사원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를 싫어하는 공장장과의 사사건건 잦은 충돌은 결국은 대판 싸움으로 마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먼저 오랜기간 동안 정들었던 회사를 떠난 특정인과 특정인이 떠난 것을 안 사장의 진노에 의해 공장장도 1달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던 내막을 아마 이형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후일 이형의 공장도 경영난으로 인해 결국은 문을 닫게 되면서 이형도 타 공장으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옮긴 곳이 거래하던 회사에서 기술사원으로 근무하였던 이들이 명퇴를 하며 차린 소규모 창업공장에 책임자로 스카웃(?)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전전하던 이형은 그러면서도 특정인과의 연락을 끊지 않고 하루가 멀다하고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안부를 수시로 주고받던 특정인과 이형의 연락이 뜸해진 것이 근 3년여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당시 이형은 잦은 근무공장의 이직으로 인해 심적으로 많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때에도 특정인과의 통화에서 그런 모습들이 비추어졌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이형이 관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특정인에게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해 어느날 이형의 연락이 뜸하면서 특정인이 먼적 연락을 취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이형이 먼저 연락을 취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그러던 상황이 반전이 되어 특정인이 연락을 취하는 상황에서 특정인이 이형에게 어느땐가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형 왜 요즘 연락이 뜸하십니까? 그러자 이형은 이전에는 전혀 하지 않던 말을 하더군요. 괜히 일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형이나 그런 말을 생소하게 들었던 특정인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의 정겨운 연락은 이후부터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고 이후에는 더더욱 늘어나 근 1년여 중에서 추석과 같은 명절에나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형과 특정인은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인이 먼저 연락을 취하고는 싶지만 왠지 서먹서먹한 기색이 감지되기에 그렇치도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형과 특정인 사이에 끼어들어 우정에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