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과 동경을 자아내는 말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티벳을 여행하고 있거나 아니면 여행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저는 티벳에 가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이 가장 파랗고 아름다운지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조국의 가을 하늘은 단지 형상적인 아름다움 이상으로 제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티벳은 우리의 가을하늘보다 더 파란 하늘, 눈부시게 하얀 설산과 푸른 고원의 초원이라는 자연뿐만 아니라, 라마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티벳의 하늘만큼이나 맑은 사람들이 가장 자연과 가까운 삶의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현재까지는 티벳의 고도만큼이나, 그 고도로 인한 산소부족과 교통의 불편으로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티벳 여행을 3차례나 했었고 올해의 여행도 티벳(현재 중국의 행정구역으로는 서장만이 티벳이지만 고대에는 현재 중국의 행정구역 중 서장과 청해성의 전부와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의 일부가 티벳이었음)은 아니지만, 더욱 티벳적인 것이 많이 남아있는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의 일부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행 중에 저는 항상 책을 읽기에 이번 여행(06년 2차 여행)에서도 한권의 티벳의 가장 서쪽에 사는 "히말라야의 최후의 산촌민"이라는 간단한 답사 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여러가지 티벳의 최후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 일처다부제와 제가출가"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티벳에는 고대로부터 형제가 여럿이라도 단 한명의 부인을 공유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특히 농사를 위주로 하는 장족(티벳민족)이 거주하는 곳에는 이러한 일처다부제가 현재에도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결혼의 행위는 고대에는 티벳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인류에 있었습니다. 일처다부제는 모계사회의 일부분의 유산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류학의 견해입니다. 이러한 모계사회의 흔적은 아직도 중국의 오지에는 그 잔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운남의 모수족의 경우는 아직도 아버지는 없고 단지 외삼춘과 어머니만이 존재하는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티벳의 일처다부제는 이전의 모계사회의 유산인 부계가 확정적이지 않고 모계만이 확실한 불확정 부계의 일처다부제가 아니라 부계가 확실한 모계와 부계가 모두 확실한 것이 일처다부제이기에 일반적인 모계사회의 유산으로 보기에는 설명에 모자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는 티벳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일처다부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제가 여럿이라도 큰 형가 결혼 배우자 결정되면 그 배우자가 다른 형제의 형수이자 결혼 상대자이기도 한 것이 티벳의 일처다부제입니다. 물론 큰 형이 결혼하자마자 다른 형제들도 모두 형수가 자신의 성적 배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나이들이 들어 가서 일정한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형제들이 성적으로도 완전한 결혼을 큰형의 배우자(형수!)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경후 아이들의 부친을 일부는 확정할 수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 태어나는 아이의 경우는 큰형의 후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결혼 기간이 길어지고 모든 형제들의 형수이자 부인인 한명의 배우자와 성적인 생활이 유지되어가는 기간에는 아이들의 부계가 약간은 모호에 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부계가 확정적이든 아니든 모든 아이들은 한 형제와 그 형제의 유일한 배우자의 후손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큰 형만을 자신의 아버지로 부르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삼춘이라는 칭호로 부릅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생각으로는 약간은 이상한 결혼제도가 아직도 티벳의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유지되고 있는 이유 무엇일까요..
이는 티벳의 사회적, 자연적 조건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티벳은 사회적으로 아주 최근까지 봉건농노제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토지는 상징적으로 국가, 사원, 지방 귀족의 소유였고, 그 토지를 농민들이 분양받아 경작하고 수확물을 세금으로 국가, 사원, 지방 귀족들에게 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조건과 더불어 티벳은 평균 해발이 3,000미터가 넘는 고원이고 평균 강수량이 500 mm가 넘지 않는 자연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농사를 짓기에도 농지를 개간하기에도 인간으로서는 버겨운 자연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조건은 형제들이 제각각 결혼하여 분가할때마다 토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어렵게 하였고(토지를 개간하기에도 어려웠고, 토지가 나누어짐으로 집안의 소유지가 축소되는 것은 자연환경이 열악한 티벳에서 살아가기에 아주 위험한 일이었음), 이러한 조건은 자연적으로 일처다부제를 장시간 유지하면 형제가 한 부인을 공유하는 독특한 일처다부제로 발전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티벳의 일처다부제는 고원이라는 자연적 조건이 그 곳에 사는 인간의 수를 제한하는 것 이상으로 급격한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한 여자가 가임가능한 기간과 임신 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여러 형제들이 각각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보다 한 부인을 공유하는 것이 인구의 증가 억제 측면에서는 아주 강력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것은 자연적, 생리적, 정신적 요구와 조건의 총제입니다. 단지 자연적 사회적인 조건이 티벳의 농촌지역에 일처다부제를 강제하였지만, 아무리 형제라도 한 부인을 공유한다는 것은 많은 갈등의 소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적이나 문화적으로 일처다부제가 주류인 결혼제도이지만, 일처다부제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제들 중에 한명의 부인과 감정이 아주 좋은 형제가 있는 반면에 별로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아주 심할 경우에는 그렇게 낙오되는 형제는 혼자서 집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티벳적인 일처다부제 이외 티벳의 일부 농촌 지역에는 在家出家라는 특수한 출가의 형태가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형제나 자매 중에 일부가 어려서(10대에)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재가출가의 경우는 출가하여 평생을 혼자 사는 것은 불교의 일반적인 출가와 같지만, 다른 것이 출가는 하지만 절이나 사원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원래의 집에서 생활을 하며 집안의 노동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단지 출가시에 상징적으로 근처의 라마 사원에 가서 의식을 거행할 뿐입니다. 이러한 특이한 출가 제도가 티벳의 농촌지역에 존재하는 것은 위의 일처다부제의 경우와 유사한 이유에서 입니다. 형제나 자매 중 출가라는 형식을 통해서 결혼을 제한하는 것으로 집안의 토지가 작게 나누어지는 위험을 방지하고 또한 재가출가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여전히 출가한 사람의 노동력이 집안에 속해지도록 조치하는 것입니다. 재가출가의 경우는 아주 최근까지도 광범위하게 티벳의 농촌지역에 존재하였고 이는 티벳의 신실한 신앙심과 결합하여 일처다부제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인구증가의 억제와 집안재산의 나누어짐을 방지하는 기제가 되었습니다.
한 사회의 결혼제도와 종교제도의 일부를 위에서처럼 단지 하나의 척도로 분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하지만 티벳의 일처다부제와 재가출가라는 독특한 현상의 이면의 아주 일부분은 위에서 분석한 한집안의 생산력, 재산의 완정한 유지와 효과적인 인구억제 기제라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좀더 종합적인 분석과 연구는 연구자들의 손에 맡기고 저는 이 정도의 분석으로 티벳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