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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와네트 다시알기

오윤경 |2006.05.25 23:00
조회 74 |추천 0


 

Marie-Antoinette 라는 이름을 첨으로 접한건 중학교 2학년 시절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 붐으로 번졌던, 실제 프랑스 역사에 오스카라는 남장 여귀족을 가상첨가하여 논픽션화 시킨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제목의 청소년 소설을 통해서였다.

역사수업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선생님과 교과서로 배우는 프랑스의 역사보다 3권으로 이뤄졌던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으로 느낀 이국이 내게 더 와 닿았던건 이야기를 통해 10대 소녀들만의 상상의 왕국에 내가 3인칭 관찰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프랑스는 낭만과 로맨스가 가득한 나라로 내 가슴에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학생신분으로나마 프랑스에 정착하여 9년째 이 나라의 풍습과 언어, 역사를 배우게 되면서 15년전 첨으로 접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지독히 허영과 사치가 심하고 국민들의 생계는 안중에도 없던 이기주의 국모에 대한 내 생각이 그녀의 일기와 전기를 통해 차츰 연민으로 바뀌고 있을때 1년동안 개봉만을 기다렸던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와네트를 관람하고 오게되었다.

 

영화계의 대부, 프란시스 포트 코폴라 감독의 외동딸임을 알기전에 소피아 코폴라는 이미 처녀의 자살이란 제목의 완성도 높은 처녀작으로 감독데뷰식을 치렀고 2004년 Lost in Translation으로 프랑스 칸을 한번더 환성지르게 하더니 까다롭기 그지없는 고급 일간지 Telerama의 찬사를 한몸에 받으며 칸 두번째 정식 출품작 Marie Antoinette으로 다시 한번 프랑스를 찾았다.

 

"수많은 역사와 고증들을 통해 역사속에 비친 마리의 일상이 어땠는지, 프랑스가 품고있는 마리의 비평과 국민들의 처참한 삶이 어땠는지는 내가 굳이 더 할필요없이 모두가 잘 알고있다. 나는 14세에 고국을 떠나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법도로 유명했던 베르사이유에 혼자 떠나오면서 가질수 밖에 없었던 외로움과 아무에게도 떨어놓을수 없었던 고독을 왕비로서가 아닌 성장기 한 소녀, 앙투와네트 본인의 관점으로 영화를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젊은 여류감독은 말한다.

 

수백명 프랑스 최고 부르쥬아들의 경계의 눈빛과 화려하기로 숨이막히는 거대한 궁전, 잘나지 못했다는 자아컴플렉스로 마리-앙투와네트의 모든 매력에도 불구하고 한 잠자리에서 6년동안 그녀를 돌 보듯한 루이 16세와의 관계, 늦어지는 출산등... 지금껏 역사의 비평을 통해서만 접한 허영의 왕비는 그렇게 아직 어린나이에 혼자만의 오랜 고독을 감내해야만 했다.

땀흘려 일하는것이 금지되었던(이해하기 어렵지만) 왕족과 귀족들의 생활을 이해한다면 귀한 드레스로 치장한 베르사이류의 일상은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감옥과 같은 곳, 그 속에서 무료함을 견뎌내기 위해 온통 파스텔계열로 수줍게 물든 Patisseries(최고급과자)와 케잌들로 매일밤 연회를 열고 우리내 20대들이 열망하는 쇼핑으로 연일을 보내는 18세 철없는 왕비는 어쩌면 누군가 그녀를 성숙으로 이끌어줄 어른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실상 한국역사에 비추어 보면(드라마와 소설 역사책들 등을 통해 알게되는) 마리는 허접한 왕비임에 틀림없다.

국모로서 국민들의 안락에 신경써야할 신분이 그저 사치하는일에만 몰두했다고 보면...

오스트리아의 사랑받는 공주에서  따뜻히 감싸줄 시부모도, 남편도 없이 홀연히 그 당시 유럽최강국의 왕비로 18세에 승격될때 그 누구도 국민들의 처참한 실상을 보고해주지 않았다고 보면 누가 그녀를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으로 몰수있을것인가?  한번도 바깥세상을 접하지 못한 궁전속에 갇힌 최고로 아름다운 장미, 너무나 겹겹히 쌓인 과잉보호속에서 그녀가 국민들의 증오를 이해하지 못하는건 당연하지 않았을까?

고증에서는 마리가 왕비로서 결코 똑똑하지는 않았다고 밝힌다.

국민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을만큼 생각과 자아가 자라지 못했다고...

"빵(바게트-국민들의 최소일상식)을 달라!"고 절규하던 시민들의 요구에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지"라고 그녀가 측근들에게 순진하고 철없이 내뱉은남긴 일화는 굶주리던 국민들을 비꼬와서가 아니라 최고의 경비안에 갇혀 살며 궁밖의 처절함을 전혀 알수없었던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다.

 

클레식, 바로크 스타일의 공유속에서 탄생한 최고의 호화로운 궁전과 18세기의 데코레이션, 수백가지의 드레스와 악세사리들이 그 당시를 또한 더없이 숨막히게 잘 표현한 이 영화는 거절하던 자국(自國), 오스트리아에로의 망명을 결국에는 떠나며 베르사이유(그녀의 청년기와 여자로서의 데뷰식을 치른)에 아듀를 청하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혁명이 시작된 4년뒤인 1793년, 혁명가들의 재판하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진정한 왕과 왕비의 모습이 홀연 보이는듯 하지만 너무 늦어버린...

 

영화를 관람하며 혹여라도 프랑스의 역사를 배우고자 한다면 그 목적은 끝까지 도달할 수가 없을것이다. 소피아가 언급했다시피 영화의 목적은 프랑스의 역사가 아니라 공주에서 왕비가 된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치중을 했으니까...

 

18세기 까다로운 법도의 궁전씬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록캔롤, 클랙식을 연상하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현대식 감각으로 환상적으로 소화해낸 소피아 코폴라는 여류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그녀 스스로 아직까지 탈출하지 못하는 느낌이라는 "소녀"의 관점으로 카메라를 움직여 영화의 오리지널리티에 매력을 더했다. 

세계 20대들의 우상인 Kristin Dunst와 Jason Schwartzman 두 중심 배우의 연기가 실제인물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잘 표현되었고 시대적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젊은조화를 이끌어낸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그늘에서 불안해하던 소피아를 그녀의 이름 하나로 거듭나게 한다.

 

프로페셔널의 합목, 내 올해 최고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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