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n Jhon Collier(British, 1850~1943)
Lilith(1887)
캔버스에 유채, 237x141cm
피에 굶주린 여인, 릴리트
사랑의 신이 인류의 두개골 위에 앉아 있다.
그 옥좌 위에서 그토록 불결한 너, 건방지게 웃어대며
'인류 최초의 여자'라면 누구나 성서에 나오는 이브를 떠올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브는 여자의 원조가 아니다.
이브 이전에 릴리트라는 여자가 있었다.
아담의 조강지처도 이브가 아닌 릴리트라는 얘기다.
유대 신화를 보면 인류의 첫 번째 여자인 릴리트가 등장한다.
릴리트는 아담의 첫 번째 아내이며
남편의 갈비뼈에서 태어난 종속물이 아니라
아담처럼 흙으로 빚어졌다.
아름다운 릴리트는 현모양처 유형의 정숙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악영향을 끼친 음탕하고 사악한 아내였다.
순진한 아담이 릴리트의 유혹에 넘어가 악에 빠질 위험이 높아지자
신은 서둘러 릴리트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녀는 아담에게 순종하지 않은 죄로 신의 벌을 받아
악마로 변한 뒤 낙원에서 추방당했다.
릴리트란 이름 자체도 불순한 의미를 지녔는데,
스티븐 랭던은 '릴리트'가 아름답고 섹시한 용모로
남자를 유혹하는 음란한 여자를 가리키는
히브리계 이름이라고 밝혔다.
인류 최초의 여자인 릴리트가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감 때문이다.
남성 예술가들 역시 릴리트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육욕의 화신이요, 사탄의 사주를 받은 저주받은 요부로 묘사했다.
영국의 화가 존 콜리어의 그림을 보면 릴리트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발가벗은 릴리트가 커다란 구렁이를 몸에 칭칭 감은 채
황홀경에 빠져 있다. 릴리트는 마치 연인을 애무하듯
징그러운 뱀과 성애를 즐긴다. 이처럼 매혹적인 누드와
사탄의 상징인 뱀을 한 쌍으로 묶은 것은
여성에 대한 갈망과 거부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서다.
흉측한 뱀과 쾌락을 즐기는 음탕한 릴리트의 모습에서
여성은 악마의 동료로 사탄과 몸을 섞는
불길한 존재임을 실감할 수 있다.
존 콜리어는 낭만주의 시인 키츠에게 영감을 받아
이 매혹적인 그림을 그렸다. 키츠는 그의 시 [라미아]에서
릴리트를 황금빛과 초록색, 청색의 무늬가 박힌 현란한 뱀에
비유했다. 악마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키츠의 시는 상징주의와
팜므 파탈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시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잔인하고
사악하며 남성을 무자비하게 파멸시키는 냉혹한 존재로 그렸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이중성, 모순된 남성의 심리가
여성에게 반영되어 아름답고 사악한
팜므 파탈의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 [팜므 파탈] 치명적인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 : 이명옥 : 2003 : 다빈치 - 이상 발췌.
성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이사야 34:14)
여기서 올빼미로 번역된 원 히브리어는 릴리트(lilith)로써
밤에 활동하는 괴물에 이름을 뜻했다.
원래 이 말은 바빌론 신화에서 나오는 liltu에서 유래하며
liltu에 말 뜻은 셈어로 '밤'을 뜻하는 말이었다.
훗날 랍비들은 릴리트를 '아름다운 여인'으로 인격화해
이브가 창조되기 전인 아담에 아내로 설정했다.
랍비들에 설정에 따르면 릴리트는 아담에 첫 번째 아내로
아담과에 불화로 추방당하여 '밤에 악마'가 되어
뱀과 작당해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