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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임명섭 |2006.05.30 21:25
조회 100 |추천 2


차범근

 

차범근에게 잔인한 반칙을 한 선수 겔스도프와 같은팀으로 이적되었을때 차범근은 웃으면 먼저 악수을 청했고 인터뷰에

"신앙으로 용서를....." 이런 내용으로 응했다고 하여 그 명성이 더 유명해졌죠.


지금은 용병최고 득점 기록은 무너지긴 했지만 98골(당시 신기록) 기록했고 정말 대단한건 스트라이커가 아닌 지금으로 말하면

윙포워드...그러니 스트라이커(타겟맨)쉐도우나 뒤를 받쳐주며 그마만큼의 활약을 펼친겁니다..

거기다가.. 슬럼프였던 상황에도.. 8골이상은 꼬박 넣어주었었죠 ..


당시 UEFA컵은 지금의 챔피언스보다 훨씬 더 유명했고 우승하기 어려웠던 대회였는데도 불구하고 차붐이 이적한 팀은 연달아 컵을 거머쥐게 됩니다...

정말 대단하죠... 3분의 기적을 일으켜 헤트트릭을 기록하는 경기도 유명하죠.. (인저리 타임 연속 3골...)


아직도 독일 특히 프랑크투르크와 레버쿠젠에선 차붐이 전설이 되어있죠..


당시 베켄바워가 차붐을 귀화시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한 재밌는것은 독일의 모 신문이 2001년 5월 22일자 지면을 통해

차범근의 생일이라는 기사를 냈는데..

"5월22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60년대 전성기를 이끌던

조지 베스트와 한국 차범근의 생일이다..." ㅋㅋ 재밌죠?


 

아래에는 축구스타들이 차붐에 대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오웬

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떄부터 차붐을 보고자라났다. 나도 그선수처럼돼고싶다.

 

 
발락
   
(한국에방문했을떄)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피구

 



 

차붐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큰 영웅이다


 


 


마테우스

난아직 어리다.. 그러나 차범근은 세계최고의 공격수인건 분명하다.

그리고 나의 자만을 깨우쳐 주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당시 마테우스는 독일의 신성으로

지금의 루니급보다 더 유명했지만 차범근팀과 경기후

      왕창 깨진후에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마테우스는 후에 90년 월드컵 MVP에 선정됩니다.

 


 
베켄바우어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있었다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으로 넣고싶다.    
 
펠레
 
"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줄알고 즐길줄 안다."


 


 

 
파울로 말디니
 
"내가 그런공격수랑 붙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클리스만
 

내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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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지다..


최근 박지성 이영표등..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여


재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여전히 최고의 한국 선수는 차범근이다..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5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4골의 소나기 골.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 :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시청률 최고.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신문 톱기사



KICKER지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아쉽게도 이기록은 최근몇년전에깨짐)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추천수2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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