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 강금실의 50일간의 정치 여행은 마치 체 게바라가 23살의 나이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시작한 9개월간의 긴 중남미 여행에 비유하고 싶다. 게바라가 그 여행을 통해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처럼, 강금실은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 들었고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정치 지도자로 변모해 간 것이다.
▲ 낙선이 결정되던 31일 밤. 자신의 캠프를 찾은 강 후보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면서 결코 어두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뉴시스 사진편집
불과 4주전인 지난 5월 4일 영등포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했을 때만 해도 강 후보는 겨우 네 다섯명의 승객들과 가벼운 악수를 나누고 빈 자리에 앉아 버리는 도저히 서울 시장 후보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구세군 브릿지 센터 노숙자들, 그리고 쪽방촌 거주자들과 종묘 공원에서의 노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민들의 삶을 알아 갔으며, 고용안정센터, 대한노인회 서울연합회, 극단 연습실, 봉제공장, 새벽 인력시장 방문 그리고 서울역과 군자차량기지 그리고 남대문 시장을 비롯한 각 지역의 재래시장 방문 등을 통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청년들의 삶을 발로 뛰며 눈으로 직접 확인 하였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의 고통에 대해 눈물로써 공감 하였다.
그후 그녀는 무섭게 변해갔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기존 정치에 대해 분노하게 되었고, 자신이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시장에 당선되어야 하는지를 더욱 절감하게 된 듯하다. 시민을 만나는 자세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유세에서의 발언도 길어지고 힘이 있어졌다. 그녀의 발언은 현장에서의 체험과 경청한 바를 토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흡입력이 있었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첫날인 5월 18일 저녁 명동 유세에서 18분 여 가량의 연설을 통해 그녀는 “그 동안 열린우리당과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였느냐”고 분노에 차서 포문을 열었다. 아울러 “이제 정치인들에게 속지 말고 시민들이 직접 나서자”고 시민주체성을 강조 하였다. 그녀는 민중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목도하면서 민중들이 원하는 것이 결코 엄청난 돈이 들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이 결코 아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열린우리당과 기성 정치인에 대한 공격을 하게 된 배경인 듯싶다. 집권 여당이 너무 무책임 하였다는 것이다. 그날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우리당 당원들과 강금실의 지지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고 그녀가 우리들의 희망이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보여주었다.
19일 아침 자양동과 건대 입구 유세를 마치고 그녀는 지역의 몇 군데를 더 가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또한 72시간 유세 첫날 밤 후보가 신당동 떡복이 집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우리 일행은 야식으로 떡볶이를 먹으려나 했다가 선거운동을 위해 그곳에 가겠노라고 한 후보에게 놀랬던 것처럼(신당동에서 우리는 떡볶이 한 가락도 먹지 못했다.) 이미 그녀는 5월 4일의 쭈뼜거리던 그녀가 아니었다. 강금실 후보는 27일까지 연속적으로 무수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시민들과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이어진 72시간 마라톤 유세는 각종 악재로 인해 최악의 불리한 정세 속에서 진행되었다. 72시간 유세에 돌입하기 전날 아침 강 후보는 함께 할 의원들(우원식, 이인영, 임종석 그리고 필자)과 함께한 자리에서 ‘침묵’을 주문하였다. 가급적 언론에 노출 하지 말기를 동참하는 의원들에게 당부하였다. 당장 급한 데도 언론을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 후보의 정수기 광고 건이 나왔을 때도 강 후보의 입장은 그만 하자는 것이었다. (아마도 선거운동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나는 날까지 언론에 대한 노출을 꺼리는 후보는 강금실 후보가 전무후무 할 것이다.) 이렇듯 그녀에게 72시간 마라톤 유세는 승리를 위한 전략적 결단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신성한 의식이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녀는 72시간 동안 무려 51 군데의 유세지역을 순회 하면서 2만 명 이상의 시민과 직접 만났고 연설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서민을 위한 정치가 어떠해야 하며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그녀의 얼굴은 핼쑥해졌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건강을 걱정했던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후보들과 함께한 의원들의 지친 기색과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강금실 후보는 72시간을 성실히 보냈다. 평소 잠이 많은 편인 그녀로써는 견디기 힘든 조건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눈을 붙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녀는 맹랑할 정도로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군해 왔다. 지난 29일 오찬을 하면서 공식 선거운동 마감일을 하루 앞두고 유세차 위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그녀는 “재미있겠네요”라고 그야말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거에서 한참 지고 있는 후보의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렇게 시종일관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군해 왔다. 물론 유세차로 이동하는 안은 후보의 체력을 감안하여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0여 일 동안 특히 72시간의 마라톤 유세는 우리 사회의 재발견의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자신이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아울러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관점에서 벗어나 일상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하였다. 나아가 참여정부가 채 못한 ‘시민참여’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채 못한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로써 그녀는 시민이 주인인 새로운 정치를 시민들과 함께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 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정치와 정치인을 혐오하는 제3자가 아니라 가장 앞장서 나가는 선봉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또한 이번 선거를 통해 열린우리당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에서 가장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맞는 정치인으로 전화한 것이다.
▲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그러나 그녀의 정치운동은 당과 당원에 충성하기 보다는 민중과 서민에게 충성이라 말해야 옳을 것이다. 지난 29일밤 창신동 봉제 공장을 둘러 나올 때 한 구의원 후보 지지자가 바로 옆에 있는 구의원 사무실에 들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시간 관계상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요청한 당원이 구의원 사무실에도 격려 방문하지 않을 거면 여기 왜 왔느냐고 고함을 치며 따라왔다. 그 장면에서 필자는 느꼈다. 강금실 후보는 우리당을 구하기 위해서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중과 서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정치를 시작했음을. 필자 또한 강금실 후보와 정치여행을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리고 진정으로 그들의 목소리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은 아무리 지고지순한 가치를 지닌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힘이 될 수 없다는 것. 법과 제도의 개혁 보다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왜 우리당에 실망하고 등을 돌렸는지 그리고 그동안 우리당 지도부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지도 깨달았다.
그런 가슴 벅찬 깨달음과 거듭남의 연속이어서 인지 우리당의 참패 소식 앞에서도 의기소침해지지 않는 자신을 본다. 그것은 바로 리더 강금실을 만났기 때문이며, 강금실로부터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며, 다시 뛰면 된다는 확신에 차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