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장 전기감전 사고☆
◇ 박병장 소속◇
- 경기도 파주시 1사단 통신대대 운용중대 통신병
◇ 박병장 전역날짜 ◇
- 2006년 4월 12일
◇ 박병장 사고일시 ◇
- 2006년 3월 9일 오후 4시경
◇ 박병장 사고난 장소 ◇
- 부대안에 있는 12M 높이의 전봇대
◇ 박병장 사건 경위 ◇
- ○○중대장은 박 병장과 그의 후임병인 김○○병장에게 수송부 옆 담에 설치돼 있는 전화선을 전봇대 위로 올리라고 명령했었다. 혹시라도 담이 무너지면 전화선이 끊길 우려가 있다면서 내린 지시였다. 원칙상으로는 전화선은 땅속에 묻게 되어있다.
전봇대 반대편 옥상에서 작업을 하고있던 박병장은 변압기가 있는 전봇대위 상판대에서 그 상판대가 부실하여 주춤거리고 있는 후임병 김○○병장을 보게되었고 선뜻 도와주러 올라갔다.
전봇대 아래에 있던 최○○상병은 김○○병장에게 야전선을 던져주었고, 그 야전선을 박병장에게 건네주었다.
김○○병장과 박병장과의 거리는 약 2M 정도였고, 박병장은 야전선을 밑으로 내려서 밑에서 야전선에 케이블을 묶어 당기는 과정에서 고압선에 닿아 2만3천볼트 고전류에 감전이 된 것이다.
사고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하사와 오병장, 최상병, 이일병, 박일병이였고, 중대장은 작업지시 후, 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한다.
◇ 박병장 병원 후송 ◇
- 불꽃이 일면서 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박병장 몸에 불이 붙은채 , 한쪽 다리가 상판앵클에 걸려 거꾸로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고 함께 작업하고 있던 김○○병장은 한칸 밑의 상판으로 내려가 본인의 윗옷을 벗어서 박병장의 불을 끄려했다.
하지만, 역풍이 불어서 실패를 하였고 , 밑에 사람들이 사다리갖고 오고, 유일병이 소화기를 가지고와서 불을 꺼주었다. 그 사이 하사는 119에 연락을 하고 윗간부들에게 사고에 대해 보고하였고, 엠블런스가 왔다. 사고가 난 후 , 그 주변에는 사단장과 대대장, 사단인사참모등이 있었고, 중대장과 최상사가 박병장을 끌어내려 병원으로 후송된 것이다.
사고후 후송되기까지 약 20-30분 정도 소요가 되었다.
박병장은 금촌의료원으로 옮겨졌고 워낙 부상상태가 심각하여 응급치료만 받은뒤 바로 일산 백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백병원측에서 화상전문병동을 안내하여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되게 된 것이다.
◇ 박병장의 화상정도 ◇
- 온몸의 깊은 2도화상 1% , 3도화상 53%
초기에는 4도화상을 입은 오른쪽 팔을 절단하지 않을 경우 패혈증 및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80%라고했다.
3월 13일 오른팔 절단수술시에도 ‘수술부위 출혈 및 동통 , 수혈로인한 합병증(간기능악화), , 저체온증, 세균에의한 균혈증 및 패혈증등으로 인한 사망확률은 80% 마찬가지였다.
◇ 사고 후 부대간부들의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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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 축소
박병장의 사건을 조사한 사단헌병조사단은 사고첫날 아버지에게 조사서를 보여주었다.
부대의 문제점은 기록되어있지 않았고, 그저 박병장의 전기감전으로 인한 사고내용만 기록되어있었을 뿐이다. 그후, 군대간부와 헌병조사단에게 사고의 의심가는 부분을 물어보았지만, 다들 피하기에 바빴다. ...............................................................................................................................
2. 부대측 책임회피
사고첫날 사단 참모장은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사실 박병장보고 전봇대에 올라가라고 지시한사람도 없고 내려오라고 지시한 사람도 없었다.” 며 , 군대측의 책임을 회피하고 박병장의 잘못으로 돌렸다.
또한 사단 인사참모도 취재하는 ○○기자에게 ‘전봇대에 올려보낸 사실이없다’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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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대측 감시 및 반협박
3월11일즈음 , 박병장누나가 각 방송사에 박병장의 사고소식을 제보하였다.
부모님께서 아들을 위해 인터뷰를 취하하셨고 , 그 이후로 병원에서 당직을 서던 대대간부로부터 감시를 받기 시작했다.
사단간부는 가족과 접촉이 있을때면 하는말이,
‘누나가 인터넷에 올리는 등 또 감정적으로 나오게된다면 사단에서 따로 주는 위로금은 없고, 단지 행정적으로만 처리하게된다.’고 하였고, 이말을 들은 부모님은 아들을 위해 박병장사고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말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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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강제로 받게된 위로금
3월17일 사단장은 가족에게 돈봉투를 건넨다. 못받겠다고 하자, ‘그럼 법적으로만 하겠다’ 며, 일어선다. 곁에 있던 사단간부들은 위로금을 받지않는건 예의가 아니라고 비웃는다.
필요없으니 가시라고 하자 , 다시 앉으며 돈봉투를 부모에게 건넨다.
법적으로 나오는 보상은 한정되어있다는 것을 아시는 부모님은 ‘법적으로 하겠다’라는 말에 위로금을 받으시게된다. 그러면서 사단장은 2차위로금까지 언급을 하고 돌아갔다.
그 후, 사단장의 모습은 볼수없었다.
장병들에게서 모금한 1000만원의 위로금이 지금에와서는 우리가족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들은 지금 위로금까지 주었으니, 할도리 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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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부대측 관리소홀
사단간부는 치료비가 벽제병원으로부터 민간병원으로 잘 입금되고있다고 말하였으나,
가족에게는 2번에 걸쳐 몇천만원의 청구가 들어왔다.
병원측 실수라 하지만, 군대측에서 관리 소홀로 인한 점이 더 컸다.
말로만 다 알아서 해준다고 해놓고 , 잘 입금되고 있다던 치료비수술비는 단한번도 입금이 안되었다며 결국 가족에게 청구가 들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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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무책임한 행동들 급기야 연락두절까지..
박병장 간호에만 전념하면 부대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고 해서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간부가 사단장의 자이툰행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본인이 말했다고 하지말라는말..
그것이, 박병장의 사고 한달 반 후였다.
가족은 부대에서 뭔가 계획하고 있는 것을 느껴 다급해졌고 그래서, 대대간부와 사단간부들을 통해 자이툰행을 물어보았지만, 모두 극구 부인하였다. 취임식이 있기 일주일전까지도 말이다.
치료비일도 그렇고 , 더 이상 군대를 못믿게 된 가족은 사단간부들을 불러 박병장의 치료완치 후의 문제와 , 그밖의 치료비등 지원문제에 대해 세밀하게 묻기시작했다.
그것을 알려주는 간부들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은 다급해지고 , 애가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차위로금을 언급하고 간 것에 대해 말바꿈하는 사단장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사단장의 말바꿈행동은 급기야 군대전화번호까지 결번시켰고 , 모든 간부들과도 연락이 두절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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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뒤늦게야 발 바빠진 군대간부들
연락두절이 되자 , 가족측은 국방부에 재조사요청과 동시에 4월20일 박병장 사건을 제보하기 시작했고, 4월21일 방송이 되었다.
그러자, 군대측으로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군단에서 재조사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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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의 사고현장 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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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단의 재조사가 끝난 후, 4월 26일 사고현장 방문
그날, ○방송 기자님도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국방부에서 취재허용을 하지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가족들만 사고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단에서도 가족들의 사진촬영 또한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문제의 사고현장은 그렇게 또 묻혀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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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 재현은 군단헌병수사대장의 지시아래 이루어졌다.
재현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
군단헌병수사대사람들과 사단인사참모 , 사단헌병수사단, 중대장, 사고당시 목격자 병사들이었다.
사단장은 4월25일 이취임식을 한 후 바로 자이툰으로 떠난 상태였다.
군단 헌병수사대 조사서에는 사단 조사서와는 달리 상세한 내용이 기재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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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압선이 있는 12M의 전봇대에 ‘위험표시’는커녕, 병사들이 작업했던 상판에는 추락방지를 위해 마련되어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부실한 상판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 이였다.
2. 지휘관은 고압선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전봇대위의 작업지시를 하였고, 본인은 지시 후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휘관은 적어도 병사를 위험한 곳에 올려보낼때에는 지켜보고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또한 안전장비를 갖추게하고 올려보냈어야한다.
3. 가족앞에서 책임회피를 하는 중대장의 모습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고압선이 없는쪽을 지시하였다고 하지만, 병사들은 명확한 지시가 없었다고 한다.
◇ 사후조치 ◇
1. 박병장은 공상처리로 된다.
- 치료비 및 수술비, 향후치료 부분까지 지원가능 , 치료 완료시까지 전역연기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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