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ing
Afraid
ㅡKimMirae
of Nothing
어떠한 이유로라도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미워하는 사람이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그러지 아니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은 필시 어떤 많은 다른 조건과 변수를 차치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사람의 감정까지 예상하고 떠맡기 때문이다(사실 저주를 내리며 한 사람을 시기해도 결국 가해자는 피해자의 불행까지 고려해보기 마련이며, 한편 피해자는 가해자의 심정 따위에라기보단 눈앞에 닥친 불행에 더큰 관심을 쏟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나는 또 특정한 이유없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퍽이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괜시리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만큼 허무하고 하릴없는 감상이다. '감상'이나 '감성', '감정' 이러한 비슷한 어감을 가지고 있는 모든 단어들은 대체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가끔 만족도를 채워 삶의 의욕을 일깨우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우리를 저녁이슬이 내리는 것처럼 은근하고 천천하게 멜랑꼴리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주범이다-우리는 느긋하게 긴장을 풀고 있다가 느닷없이 늪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이미 그 때엔 '악'하는 소리를 지르기에도 늦어버린 것이다. 나는 내 자신도 그러한 악독하고 잔인한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열다섯의 여름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해 여름은 나에게 있어 밤이면 밤마다 '열대야'였고, 심지어 낮도 그 끔찍한 '열대야'였으며 종일이, 하루가, 여름이라고 불리는 1년의 4분지1 기간 자체가 온통 '열대야'였다. 그리고 나는 그 끈질긴 더위를 악몽을 피해다니는 아이처럼 이불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때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복한 상상을 의도적으로 꺼내며 감내하고 그것과 투쟁했던 것이다. 그 때는 나 자신도 스스로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라도 내가 겪는 고통이 이마만큼이나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다. 결국은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나, 그런 때에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내리는 결론은 항상, 틀림없이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나의 두 어깨를 내리누르는 확실히 육중하고 실제적인 무게를 지닌 어떠한 힘의 총체가 그의 예리한 집게손가락 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으리라는 짐작이었다. 그렇기에 열다섯의 나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 실체가 일순간 귓속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무서운 조합들을 조근거린다거나 아니면 천둥번개처럼 급작스럽고 위협적으로 등장하여 나를 깜짝 놀래키는 장면 따위를 매 순간 상상하면서 그 말못할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에 나로 하여금 일요일의 조용한 아침에 잘 알지도 못하는 재즈를 들으며 눈물흘리게 만든 것은 숲속의 괴물도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악령도 뭣도 아닌 나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가상의 두려움을 만들어낸 내가, 두려움을 유지시키려던 나 자신의 의지가(그 당시엔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두 손으로 지익 찢으면 쉽게 열려버릴 세상과의 벽을 더욱더 견고하고 무흠하게 만들어버린 게 아니었을까. 솔직히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두려움이고 뭐고 떨쳐버릴 수 있는 것과 똑같이 주도면밀한 계획없이도 실체없는 염려와 앞선 절망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누가 정복하지 않아도 점령당할 수 있는 도시다.
그래서 난 지금 당분간 내 마음을 온전히 나만이 조종하여 다룰 수 있는 것 쯤으로 여기기로 결심한다. 며칠 정도는 방 구석에 웅크려 새우잠을 자는 생활로부터 탈피하고, 이유모를 고통의 나락에서 구원받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