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본토에서의 알앤비 혹은 소울 뮤직의 존재감은 천연기념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옛 명성과 괴리를 두고 있다. 그만큼 대중들은 기존 음악과의 차별성이나 새로움보다는 ‘그게 다 그거지‘라는 식의 강박을 스스로에게 지우게 되었다.
가끔씩 출현하는 대형 아티스트들의 모습 역시 기존의 스타일을 고수하면 식상하다고, 자신에게 각인된 그의 모습에서 벗어나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식의 딴지만 거는 실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형국이 어수선하다는 말이다.
뭐, 대중문화에 기생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과 뮤지션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이밍을 맞추는 문제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예의 그 시기적절한 ‘우연’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무참한 순간들을 더 만끽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흥미롭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낭비하는 지리멸렬한 내 자신에게 경종이라도 울리고 싶었을까? 다행히도 변화의 첫 서막은 쟌 레전드로부터 시작했다.

글을 읽는 이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겠지만, 이후에 언급될 가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같이 One-Hit-Wonder(한 두곡을 메가 히트 시킨 후 잊혀진 가수들)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Kris Kross(크리스 크로스), KLF, Marky Mark & The Funky Bunch(마키 마크 앤 더 펑키 번치), Milli Vanilli(밀리 바닐리), Vanilla Ice(바닐라 아이스), Snow(스노우)... 장르를 넓혀가면, 4 Non Blonds(포 논 블론디), Lu Bega(루 베가), Tiffani(티파니) 등 이루 열거하기 힘이 들 정도로 One-Hit-Wonder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가수들은 우리들 기억 속에 잔재(殘在)한다.
그들은 내부적 혹은 외부적 상황에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던 수많은 스팟 라이트의 꿀맛에만 너무 젖어서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던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지금부터 소개할 쟌 레전드라는 한 젊은 뮤지션에게는 다행스럽게 그러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인 음악적 재능을 넘어서 대중들의 편견을 깨부술 수 있을 정도의 세상을 보는 지혜도 가지고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더불어 그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지내면서 그가 지내온 짧지만 생명력 있는 인생의 나날들이 꽤 가치 있는 것으로 비춰진 건 비단, 개인적인 취향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여러 물질 중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인체 메커니즘에 정확히 작용하기 위해서는 보효소, 즉 도움을 주는 효소들이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주변에 조력자들이나 멘토들이 많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그 만큼 많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행복하게도 쟌 레전드는 그의 앨범에서 자신의 원만한 인간관계의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를 메이져로 이끌어 준 칸예 웨스트와 음악적 동지인 데이브 타져(Dave Tozer)와 데보 해리스(Devo Harris)그리고 Black Eyes Peas의 윌 아이 엠(Will.I.Am)등의 축복 속에서 그는 어쩌면 중력감 마저 느껴지는 칸예가 만든 레이블의 첫 번째 깃발을 비교적 손쉽게 휘날릴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로린 힐(Lauryn Hill) 과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 알 그린(Al Green), 오 제이스(O-Jays)와 같은 전설적인 소울 알앤비 뮤지션들과 수많은 가스펠 뮤지션들로부터 받은 영감은 쟌의 음악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커넥션을 창조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가령 올드 뮤직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정절(Infedlity)'에 대한 접근은 매우 흥미롭다. 약관의 나이를 얼마 지나지 않은 청년에게 있어서 바람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 'She don't have to know'와 'Number 1'의 가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실소를 참기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커티스 메이필드의 'Let's do it again'을 샘플링한 '#1'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신나게 바람을 피다가 여자친구에게서 갖은 핍박과 수난을 당하면서도 뻔한 거짓말로 변명을 늘어놓는 내용에 대해서 그는 매우 직설적인 가사로 자신이 보고 있는 세태를 표현하고 있다.
"나도 내가 바람핀거 인정하는 편이다. 하지만 난 남자다. 나에게서 무얼 기대하느냐?"고 말이다. 더불어 그는 고전적인 올드 알앤비에서는 현대의 힙합가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위트나 거들먹거림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음악에는 비록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 재미있는 가사를 붙여본 것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와서 새로운 걸 경험해보라'는 다소 자신만만한 'Prelude'로 시작하는 앨범 [Get lifted] 내에서 주목할 만한 곡들을 살펴보자.
작년 여름 칸예와 함께 작업했다는 'Ordinary people'은 앨범에서 두 번째로 커트된 곡으로 현재 챠트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가사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지리멸렬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사람 간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가 수놓는 명료하고 깨끗한 피아노 선율이 매우 매력적이며,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 진 가사 속에서 그의 연애관을 훔쳐보는 색다른 재미가 돋보이는 곡이다.
역시 칸예와 함께 공동으로 작곡한 'Used to love U'는 신나는 피아노 루프와 열정적인 라틴리듬, 그리고 소울풀한 멜로디 라인이 조화를 잘 이룬 곡이다.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뮤지션이 실제로는 같은 뿌리에서 파생되었다는 감각적인 사실에서 다시 한번 흑인 음악의 뿌리 깊음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다소 재기 넘치는 듯 보이지만 어레인지먼트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정말 현존하는 최고 프로듀서의 오만스러울 정도의 완벽함을 경험할 수 있다.
쟌 레전드 식의 '비둘기 집'이라고 해도 무방한 'It don't have to change'는 가족들과 함께 부른 노래이다.
두왑(Doo-Wop) 스타일이 강조되는 이 곡은 할머니부터 어린 조카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하모니를 맞추어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2절에서는 삼촌과 아버지와 남동생이 각각의 소절에서 자신들의 그야말로 프로급 실력을 뽐내고 있다.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 너무 많이 변하지 말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간직한 채 살아가자' 라는 가사는 점점 소원해지는 우리네 가정의 모습까지 반추하게 만들어 내심 숙연하게 하기도 한다.
'Refuge(When it is cold outside)'에서는 자신만만한 젊은 뮤지션에게도 못내 말하지 못할 두려움이 있었는지 속내를 드러내는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절대자에게 두 손 모아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며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달라는 내용의 곡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에 충만할 수도 있었을 한 젊은 뮤지션의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rdj주은 곡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애인이 있는 각각의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상황에 대한 위트 있는 노래 'She don’t have to know', Snoop Dogg의 피쳐링이 착착 달라붙는 'I can’t change', 사랑에 빠진 것을 마약(Cloud 9)에 빠진 것과 비슷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마약을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는 'So high', Kanye와 Twista의 멋진 콜라보(Collaboration)를 백업했던 바이올리니스트 Ben-Ari와의 협연이 돋보이는 'Live it up' 등이 귀담아 들을 만한 곡들이다.
쟌 레전드가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있고 놀라울 만큼 상업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그처럼 데뷔 후 몇 년간 메이져를 움직이는 아티스트로 평가 받다가도 변덕이 심한 대중들의 기호에 의해서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험한 꼴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주된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알앤비 음악 자체로 락이나 힙합처럼 그만의 세상 바라보기를 언급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기도 한다.
흑인 음악 씬 중, 알앤비 보다 힙합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이유에는 알앤비는 ‘그게 다 그거’라는 대중들의 생각도 한 몫 했으리라 짐작된다(많은 영화에서 베이비페이스의 음악이 다 그게 그거지 하는 대사가 많았던 것처럼).
하지만 그가 지난 대선 때 자신의 정치적 성향(케리 진영 지지자)을 공공연히 언급하면서 그 역시 뮤지션이기 전에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그가 처음 메이져 콜라보를 함께 했던 로린 힐이나 그가 필라델피아 거주 시절 배웠던 네오 소울 뮤지션들의 그것처럼 무언가 세상을 향한 외침을 음악 속에 담아내길 진정 원한다. 그만의 흐림 없는 두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이 과연 어떠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박철웅 | nokio7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