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소수자들의 가슴속에서 부활하소서

임태훈 |2006.06.15 09:25
조회 118 |추천 1


"화려한 외교관을 상상하지 말라. 그리고 편협한 인종주의, 속 좁은 애국심 같은 것으로는 국제기구에서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열정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 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

 

추모의 글: 이종욱 박사를 먼저 보내면서

 

                                              박경서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

 

내가 이종욱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약 20여년 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같이 생활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의 백신 국장 이었고, 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아시아 국장이었다. 그는 나의 처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해서, 나를 보면 늘 '선배' 또는 '형님'이라 칭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10여년 전 그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꿈꾸던 당시 아직 여

러 가지 주위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할 때에도

나는 그와 함께 있었다. 회원국가의 전직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유엔기구의 수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국가간 정치적 거래의 산물일 뿐, 사실상의 공헌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그는 나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리고 4년 전 그는 드디어 한국인 최초로 유엔기구의 수장이 되었다.

 

그 영광된 자리에서 그는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거의 한 달에 한번씩 서울 시간으로 아침 8시-9시쯤 나에게 전화를 걸어 북녘의 폐결핵 예방문제, WHO 총회에서 부각될 이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시간이 겨울이면 제네바 시간으로 새벽 2시였으니 그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사무실 일을 본다는 얘기다. 지난 3월 29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와 함께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때 그로부터 G8에 초대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축하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었었는데, 결국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최초의 초대에 참석하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참 소박하고 겸손한 분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총리급 이상의 대우를 받게 되어 있는데, 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소탈해서 더욱 친근감이 가는 분이다. 그는 늘 지구상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고민이 자신의 머리를 짓누른다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북녘을 방문해오면서 북녘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했으며 진정 가슴으로 북을 도운 분이다. 그가 취임한 후 WHO는 유엔 산하기구 중 가장 튼튼한 재정구조로 이웃기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100% 완벽한 총회를 준비하느라 그는 너무 과로했고, 스트레스 때문에 근무 도중 쓰러졌다는 소식을 나는 방송이 나오기 3일 전 제네바 칸톤 병원의 의사로 있는 나의 작은 아들을 통해 들었다. 나는 줄곧 그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전 세계인들이 그의 지도력을 원하며 그를 아껴줄 것이니 제발 그를 살려달라고 기원했다. 살아있는 유족들에게 (부인과 아들 그리고 가족들) 주님의 위로하심이 같이 하기를 기원한다. 그는 죽었어도 그의 뜻과 인류에 대한 사랑은 우리와 늘 함께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위의 추모글을 쓰신 박경서 선생님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이시며, 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상임위원을 역임하셨으며,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대한민국 유엔인권대사직과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시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국외로 추방되다시피 하셨고, 제네바에서 국제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 동아시아 사무총장을 역임하시며 버마 군사정권에 의해 연금중인 아웅산 수지 여사를 방문하였으며, 동아시아 기아 퇴치를 위해 식량지원 등의 활동을 하셨고,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 대북 지원 활동도 하셨다. 최근 위암 수술로 건강이 많이 축 나셨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