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는 첫 월드컵 출전인데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토고의 아쿠사 기술 위원장은 숙소에 모여든 한국과 프랑스 취재진 카메라를 물리치며 한마디,
"우린 아주 좋아요 인터뷰는 나중에 합시다
한국이 0대6으로 질겁니다 그럼 안녕~"
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게다가 토고 선수들을 환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앞에서는 물론 이거니와 호텔 주변은 썰렁하기만 했다. 그나마 기다리던 팬 한명도 밥 먹으러 가야한다며 호텔 앞을 떠나버렸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건 한국 취재진10여명과 독일 zdf방송,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 기자 뿐이었다.
감독사퇴 파문이 있었지만 팀에서 상담가 역할을 하는 살루는
"우리 선수들은 원래 감독 없이도 개개인의 능력으로 팀을 잘 꾸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보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살짝, 든다
승자의 패자에 대한 동정...
그러나 한국과 토고의 첫 월드컵 출전을 보면 달라진다.
▶한국이 월드컵에 출전한 1954년. 1인당 국민소득은 70달러였다.
예산이 없어 합숙훈련은 1주일밖에 못했다.
대표팀이 스위스로 떠나면서 갖고 간 선수단비는
200달러가 전부였다.
일단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선수단 22명이 함께 갈
취리히행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2그룹으로 나중어 2진은 첫 경기 전날 밤 늦게야 도착했다.
공항에서 기자들이 비웃듯 물었다.
"경기 날짜나 제대로 알고 오는 거냐"고,
우리 상대였던 헝가리는
1952년 올림픽 제패 후 32전 무패를 내닫던
우승 후보였다.
한국선수들은 56시간을 꼬박 날아 온 여독까지
고스란히 쌓인 채여서 하프라인 넘기도 쉽지 않았다.
결과는 0대9.
골키퍼 홍석영의 가슴은
숱한 강슛을 받아내느라 퍼렇게 멍들었다.
선수들은 1원 한푼 받기는커녕 커피 한 잔도 제대로 사먹지 못했다. 그때 선배들의 눈물은 월드컵 4강의 밑거름이었다.
▶이번에 데뷔한 토고의 1인당 국민 소득은 380달러다.
32개 참가국 중 제일 가난하다. 남한 절반쯤 되는 땅에 580만명이 산다. 인산과 커피, 카카오를 주로 생산하는 농업국가다.
잔디구장은 수도 로메에 있는 2개가 전부다.
그러나 축구열기는 50년 전 한국에 비할 수 없게 뜨겁다.
마을마다 직장마다 축구팀이 있다. 프로팀도 14개나 된다.
▶지난 1월 이집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회에 토고 선수들은
개막 전날에야 왔다.
월드텁 본선 진출 보너스를 달라며
축구협회와 승강이하다 늦어진 것이다.
가나가 2만달러와 집, 자동차를 보너스로 줬다는 소식에
선수들은 격분했다.
토고는 그 대회에서 전패했다.
토고가 독일에 월드컵 베이스캠프를 차린뒤로도
축구협회는 약속했던 보너스 3만 5천달러를 주지 않았다.
선수들은 막판훈련을 거부했고 감독은 사임했다.
▶50여년 전 월드컵에 처음 출전했을 때 한국 대표팀은
가난하고
지금처럼 붉은 악마와 같은 서포터들도 없이 외로웠어도,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당시 대표선수였던 박재승옹은
"오로지 조국의 명예를 위해 월드컵에 나섰고
명예에서 돈은 중요한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속사정이 어떻든 결국 돈 때문에 첫 월드컵에서 사보타주하는 선수들을 보며 토고 국민들은 얼마나 애태우겠는가,
명예보다 돈이 앞서는 현대 월드컵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듯하다.
##하지만 토고가
이번 패배에 굴하지 않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이겨주었음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