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가 진지하고 심각한 베토벤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쾌하고 발랄한 모차르트의 시대다. 웃겨야 산다. 유머를 구사하고 남들의 농담 역시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새로운 재능으로 떠올랐다. 영화도 작품성보다 얼마나 재미있고 웃기는가에 따라 관객이 늘어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웃찾사’ ‘개그콘서트’ 등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이며 방송 진행자의 대부분이 입담좋은 개그맨 출신들이다. 이젠 직장에서도 우울하지만 능력있는 이들보다 보통 능력이라도 유머러스한 직원이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장 중 하나인 사우스웨스트항공사 역시 창업자 허브 켈러허 회장을 비롯, 전직원이 유머로 똘똘 뭉쳐 자칫 공포스러운 비행산업을 최고의 즐거운 경험으로 바꿔놓았다. 각박한 세상에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기이자 축복, 유머 속으로 빠져봅시다~. 〈편집자〉 ‘유머(humor)’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인생에서 무엇보다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유머’와 ‘위트’는 사회생활에서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특별한 양념’ 과 같은 구실을 한다는 것.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중에는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 인물이 최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그의 인기비결이 유머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은 어려운 고비 때마다 촌철살인적인 유머로 분위기를 녹였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드는 농담은 교황의 위엄과는 사실 거리가 있다. 하지만 교황은 기관절제 수술의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지난 2월 25일 마취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필담으로 던진 일성이 “그들(의사)이 내게 무슨 일(짓)을 한 거지?”라는 농담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 유머의 달인 바오로 2세는 예복을 차려 입은 근엄한 모습 속에서도 따스함과 재치를 잃지 않음으로써 이전의 대부분 교황과는 달리 신도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톨릭신도를 비롯한 전세계인들은 이제 바오로 2세의 그런 유머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금은 성공한 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 자리잡은 (주)한중엔터테인먼트 진철호대표(39)는 한 사람의 유머와 위트 때문에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은 경우다. 진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자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인생의 막장까지 몰렸다. 언론인 출신인 그가 자살까지 고려했던 것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 때문이다.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한번 겪기도 힘든 뇌수술·이혼 등 대형사건(?)을 5차례 이상 겪고 나니, 사는 게 뭔지 싶더군요.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생각했던 프랑스 외인부대 입대마저 좌절되고, 결국 선택한 것이 자살 시도였죠.” 하지만 진대표는 한 중년남자의 유머로 자살을 포기, 지금에 이르게 됐다. 1999년 아주 추운 겨울. 잘 마시지 못하는 소주를 2병 가량 먹고 한남대교에서 한강물로 뛰어 내리려는 순간, 길을 지나던 한 중년남자가. ‘지금 뛰어내리면 얼어 죽어요. 좀 기다렸다 따뜻한 봄이 되면 뛰어내려요’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오더란다. 말리기는커녕 ‘얼어죽는다’는 말에 자살을 할까, 이런 방법밖에 없나 하는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도 웃고 말았다. 지금은 큰 후원자가 된 그 신사와 그날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지금의 사업을 구상했다. “내가 그때 심각하게, 적극 말렸으면 당신이 정말 뛰어 내렸을 거야”라고 나중에 그 사람이 말하더란다. 진대표는 그 일을 겪은 후 성격도 낙천적이고 유머가 풍부한 CEO로 거듭 태어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인들의 도움과 우여곡절 끝에 그의 회사는 중국 내에서는 한국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제7회 장춘영화제’의 한국영화 주관회사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고, 중국 내 한국영화배급 건도 땄다. “이제는 성공의 문턱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바뀐 성격과 내면에 잠자고 있던 풍부한 유머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업계에서 걸어다니는 ‘유머 CEO’으로 불린다. 위트와 유머로 무장한 그는 가는 곳마다 좌중을 사로잡을 정도로 변했다. 한 기업의 대표라는 직함에 걸맞게 무게를 잡을 만 하지만 그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를 구사할 줄 아는 리더가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와 이에 따른 상시 구조조정 여파로 우리나라가 사회·경제적으로 침체기가 지속되면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 사이에서 ‘유머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다. 적절한 유머를 통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리더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유머가 삶의 활력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직장인 사이에서도 생존경쟁의 무기로 유머가 부각하면서 딱딱한 분위기를 벗고 유머 있는 사람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PR컨설팅전문기업 KPR 신성인사장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유머는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하고 친근감을 형성해 상대방에 대한 주목도를 높인다”면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업가,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유머는 매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온·오프라인에서 유머를 공유하거나 비책을 알려주는 코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유머와 관련된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있고, 영화와 방송 등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잇달아 신설되고 있다. 심지어 효과적인 유머를 구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넷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유머를 교습하는 강사들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터넷 유머사이트인 품위유머닷컴(www.opinity.co.kr)은 개설한 지 1년 만에 1000여명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유료회원으로 확보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회원의 약 70%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고위공무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주)오피니언리더커뮤니티 이상준대표는 “유머와 웃음을 품위있게 구사하는 것은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습관”이라며 “유머감각을 지닌 리더는 조직원들을 즐겁게 해 여유 있게 그들을 리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머라는 윤활유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게 이뤄지고 업무성과가 높게 나타난다.”며 “유머를 갖지 않은 사람은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남에게 얼마나 재미있게 전달하는가 하는 표현력이 성공의 핵심 열쇠라는 것.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기업에서도 ‘펀(Fun)경영’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당분간 ‘펀 경영’은 기업들의 대세” 펀경영은 미국에서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영전략으로 직원들의 유머감각을 독려하면서 직장 분위기를 활성화시키는 것. 재미(Fun)를 단순한 흥미 차원이 아닌 삶의 에너지로 바꿈으로써 직원들의 기를 살리고 일할 맛 나는 직장을 만들어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경영을 일컫는다. LG전자 CDMA단말기사업부는 매달 한번씩 ‘펀 데이(Fun Day)’를 가져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펀 데이에는 숫자판에 화살을 던져 나온 숫자와 사번이 일치하는 직원 5명에게 휴가와 함께 상품권을 지급한다. 인터넷쇼핑몰업체인 이디엠소프트(주)는 직원들의 단합과 즐거운 직장을 만든다는 취지로 ‘뻔뻔(Fun Fun)한 EDM피플’ 선발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료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전파한 직원을 한달에 한명씩 ‘뻔뻔한 EDM’으로 선발해 ‘여행상품권’ 등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 모토로라코리아는 사내에서 존칭을 생략하고 간단한 영어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편안한 사내 분위기를 조성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모토로라코리아 박재하사장은 “딱딱한 위계질서로 인해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즐겁게 업무에 임하자는 뜻에서 펀경영을 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펀경영은 기업들의 대세”라고 말했다. 전자제품판매업체인 DKSH코리아는 회의시간에 팝콘 같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취지로 직접 팝콘을 튀겨 먹으며 아이디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CEO가 직접 펀경영에 주인공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한국피자헛 조인수대표는 지난 2월 16일 열린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직접 록밴드 리드싱어로 변신, 깜짝 립싱크 공연을 해 큰 화제를 모았다. 또 광고회사인 오길비앤매더 백재열대표는 “광고의 생명인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 낼 때 즐거움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백대표는 이를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비타민을 보충하기 위해 매달 ‘과일의 날’을 정해 다양한 과일을 전직원과 함께 시식한다. 동국제강 전경두사장은 최근 사내 모든 팀장에게 ‘40년간 웃겨준 이야기… 날더러 웃겨달라고’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해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을 읽고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라는 전사장의 배려가 담겨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