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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축구에 대해서 뭘 아냐고?

정소연 |2006.06.18 04:42
조회 56 |추천 0
- KBS ‘슛돌이 vs. 여걸 6’






지석진 : 축구에 대해서 뭐 알아요?
조혜련 : 축구 일단 9명이서 하는 거잖아요.

 

매주 일요일이면 ‘날아라 슛돌이’(이하 슛돌이) 때문에 시청했던 KBS 2TV . 그래, 정확히 얘기하자면 를 시청한 게 아니라 ‘날아라 슛돌이’를 시청한 거였다. ‘품행제로’는 ‘남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마초’ 최민수가 이끄는 프로그램이어서 거북했고, ‘여걸 6’는 의 간판 프로그램이지만 초기의 실험성을 잃고 여타의 ‘짝짓기’ 프로그램과 비슷한 성격으로 흘러가는 것이 못내 아쉽고 불만스러워 복잡한 애증감정으로 시청을 꺼려하던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6월 11일에도 ‘품행제로’ 시간은 건너뛰고 ‘슛돌이’ 방영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꼬맹이 월드컵 결승전에서 슛돌이들이 미국 대사관 자녀들로 구성된 이글스(Eagles) 팀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하는 장면들을 보고 있는데 극적인 장면을 앞두고 삽입된 다음 코너 예고, 슛돌이와 여걸 6의 대결! 짧은 핫팬츠를 입은 여걸 6들이 슛돌이 선수들과의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이 예고 화면에 공개됐다. ‘저 예고가 사실일까?’ 내 눈을 의심하며 슛돌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말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내가 본 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가장 바랐지만, 만약 사실이더라도 그 장면들이 ‘여성폄하’로 해석되지 않게끔 프로그램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순진한 기대였을까? MC 지석진이 여걸들에게 비아냥거리며 던진 질문 “축구에 대해서 뭐 알아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월드컵에서 뛰고 있는 한국 국가대표선수들에게 환호하지만 축구도 ‘볼 줄’ 모르는 여자들이 군중심리에 들떠 야한 옷이나 입으며(요즘 여성들의 길거리 응원 패션이 야하다며 언론과 네티즌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웃통 벗고 뛰어다니는 남자들의 패션은 안 야하고?) 축구선수들의 이미지나 소비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내보이는 질문이었다. 축구에 대해서 뭐 아냐고? 중학교 체육시간에만 열심히 들었어도, 아니 국가대표팀 경기를 몇 번 봤어도 알 수 있는 상식을 ‘남성’ MC 지석진은 여걸들에게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어본다.

 

 그런데 이에 대답하는 여걸들의 답변도 가관이다. 조혜련은 ‘축구는 9명이서 하는 것’이라고 하고, 정선희는 골키퍼는 중요한 포지션이므로 야구처럼 등번호가 ‘4번’이라고 고집피운다. 여걸들의 이러한 ‘무뇌인(無腦人)’적인 답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지석진의 6명의 여성 MC들을 대상으로 한 ‘여자는 축구를 모른다’ 편견 굳히기 질문은 이어졌고 여걸들도 이를 도와주는 답변으로 편견 강화를 한층 견고히 한다.

 

지석진 : 좋아하는 선수, 한명씩 얘기해 볼까요?
현영 : 저는 박지성 선수요.
지석진 : 지금 어디에서 뛰고 있죠?
현영 : 어~(잘 생각이 나지 않자) 지금 독일로 가셨죠!
지석진 : 원래 뛰는 팀은?
현영 : (머뭇거리다)좋은데! 아주 좋은 구단이에요~!

 

7~8살 된 슛돌이들이 등장하자 ‘축구공이 아니라 너희들을 찰까봐 걱정’이라며 승리를 확신하던 여걸들은 각 팀 연습시간이 돼서 슛돌이들이 퇴장하자 ‘슛돌이들은 경기를 많이 해봤지만 우리들은 한번도 해보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말한다. 몸매, 체력 관리를 위해 꾸준히 유산소운동을 해왔을 것으로 보이는 여성들의 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오다니… 그래, 이건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특별훈련 감독으로 유상철이 소개되고, 훈련이 시작되었을 때 여걸들은 아예 작정하고 ‘여자 = 축구 문외한, 자신의 명예보다 사랑에 목숨거는 존재’라는 공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또 표현한다.


유상철을 보자마자 여걸들은 멋지다며 꺄악 소리를 질렀고, 현영은 유상철을 보자마자 껴안더니 최여진은 한 손으로 유상철과 악수하고 다른 한손으로는 유상철 손등을 비벼댔다. 유상철이 여걸들의 ‘정강이 보호대’ 미착용을 지적하며 이혜영 정강이에 손가락을 튕기며 ‘이 정도에도 아프니 꼭 착용해야 된다’고 말하자 여걸들은 자신들도 해달라며 유상철에게 달려들었다. 또한 패스 연습을 시작할 땐 훈련은 뒷전이고 사랑스럽게 ‘감독님~’ 부르며 유상철에게 하트와 사랑의 총알 날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유상철이 작전 노트에 각 여걸들의 이름을 쓰고 지시를 내리는데 이혜영이 “내 이름에만 동그라미 쳐줬다”라고 말하자 현영은 “내 이름에는 별표!”, 이소연은 “전 줄 거주세요”라며 작전에는 관심없고 오로지 유상철의 구애에만 관심을 보였다.

 

경기는 예상대로 슛돌이들의 승리로 끝났다. 슛돌이 팀이 여걸 6팀을 7대 0으로 이겼다. 여걸들이 최선을 다해 뛰었다면 슛돌이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아이들을 상대로 성인이 승리하는 프로그램을 왜 만들어야 했느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여걸들이 슛돌이들에게 패할 수밖에 없는 이런 프로그램은 왜 기획한 것인가도 물을 수 있다. 핫팬츠에 팔만 번쩍 들어도 배꼽이 보이는 짧은 티셔츠를 입히고 축구에 대한 백지상태의 지식들을 쏟아내며, 유명 선수 출신인 감독이나 유혹하려 드는, 6개월간 열심히 축구만 한 아이들에게 질 수 밖에 없는 이 ‘바보(로 보이게끔 만든)’ 여성들과 슛돌이들과의 축구 경기를 왜 만들었냐는 것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보니 김시규 책임 프로듀스는 그동안 축구를 관람만 해온 여성들이 축구의 어려움을 느끼고, 좀 더 축구를 이해하게 하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여성들이 적지 않음을, 고학력 사회에서 ‘체육’이란 교과목을 이수한 여성이라면 축구의 기본적인 룰은 숙지하고 있음을 무시하는 성차별적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니 무엇보다, 김 CP의 말처럼 아이들과 축구하며 땀 뻘뻘 흘리는 성인 여성들을 보며 여성 시청자들이 ‘아, 축구란 정말 힘든 거구나~’라는 끄덕임의 반응을 보여줄까? 오히려 여성으로서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더 받게 되지 않을까? 여걸들과 같이 뛴 슛돌이들은 어떻고.

 

조금만 경기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거나 형편없는 실력을 보이면 ‘여자래요~’하며 놀리는 슛돌이들에게, 상대 팀 여자 선수가 잘 뛰면 ‘여자가 잘 뛴다’는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슛돌이에게 이번 여걸들과의 축구 시합이 ‘여성’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기만 하다. 제발, 여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처럼 발언하면서 여성을 폄하하는 이중적인 행위, 여걸 6는 더 이상 그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제작진은 ‘여걸’의 의미를 아는가? 여걸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활동적인 여성을 말한다. 과연 현재의 ‘여걸 6’가 그러한지, 앞으로도 이름 값 못하는 ‘여걸 6’라면 코너 이름을 바꾸던지, 프로그램 폐지까지 제작진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괜히 열심히 아등바등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오락은커녕 스트레스나 주지 말고 말이다.


 

글 소연

* 이 글은 월간 7월호 방송비평에 개재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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