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UE4
최진홍
|2006.06.23 00:32
조회 34 |추천 1
[당시 제 나이 15살....저분은 18살 이었지요......저는 어려서부터 절에 들어온 수행승이었고 저분은 이곳에서 유지를 하시던 이장의 아들이었어요....]
밤하늘은 더할나위없이 청명하다.
비구니는 조용히 흐르는 별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났고...이곳은 국군이 요새로 쓰게 되었어요...저는 산속에만 있다가 아무것도 모른체 공포에 시달려야했고....저분은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군에 자원입대해서 이곳 신흥사 군군 방어군에 있었답니다....그리고 그때부터 북한군의 공격과 국군의 방어전 속에서 이곳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답니다....]
[....]
[그러던 중....이곳이 기어이 북한군에게 넘어갔고 군인들은 남쪽으로 후퇴를 했어요...오직,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저분만이 포로로 잡힌 상태였구요...]
[저 노인만 포로가 되었다구요?....어째서요?]
준이 조용히 묻자 비구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 저때문이었답니다....아미타불....]
[말하라우.....]
[....모른다...]
[이 종간나새끼!!!!]
거친 군화발이 그의 가슴에 적중했다.
숨이 턱,턱 막혀옴과 동시에 죽음의 공포가 가슴을 뒤흔든다...비릿한 피냄새...뒤로 묶어놓은 손목이 빠질듯 아프다.
[어서 말하라우....음어함...어디숨겼어!!!!!!]
[모른다고 했잖아!!!!]
[이 새끼!!!!]
인민군 장교의 주먹이 그의 아가리를 찢어발기듯이 후려쳤다.
그러자 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헉..허억....이 종간나새끼...아주 독종이구만....]
인민군 장교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벗어놓은 위통을 집어들었다.
그런 그의 눈은 사악함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어쨋든...이 종간나새끼 입을 반드시 열어야 해....하늘이 준 기회라우....음어병이 이껏 기집애 하나 지키려고 절에 남아있다가 생포되다니....알았나!! 동무들!!!]
[예..에옛!!!]
인민군 장교는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소리를 빽 지른다음 신경질적으로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흠뻑맞은 그의 옆에서 울고있던 소녀가 엉금엉금 기어와 그를 일으켜세우려 했다.
[흑..흐흑..괜...괜찮아요...?]
[나...난..괜...찮아...너...너는....?]
[저는 괜찮아요....흑.]
소녀는 순간 울컥하며 울음을 삼켰다.
군인들이 후퇴하고 스님들도 모두 죽거나 피신했다....그저 자신만이 우왕좌왕하다가 인민군에게 잡혔고, 욕을 당하려는 찰라 후퇴하던 중이던 이 사람이 다시 돌아와 자신을 구해주었다...
[...어..어쨋든...으..음어함을..놈들이....차..찾으면 저..절대 안되....큭...]
그는 이말을 끝으로 다시 기절해버렸고 소녀는 억지로 울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이 짜증났는지 인민군 몇이 와락 달려들어 소녀를 그에게서 떼어내어 바닥에 내팽겨쳤고 소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의 신간이 흐른후였다.
[종간나....호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까 나갔던 인민군 장교가 종이 몇장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그런 그의 눈에는 사악함, 광기, 희열이 뒤썩여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호오....너..이 지방 유지의 아들이었나?..그런데 자원입대를 했다고?...대단하군...]
[.....으....]
[....그래서 준비했다....너 놈의 입을 열 방법을....]
인민군 장교는 히죽 웃으며 뒤의 병사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이 지방 마을사람들 다 불러...이 놈은 유지의 아들이다...마을사람들을 다 눈앞에서 죽여버리면 이 놈도 입을 열겠지...크크크..]
좁은 절마당에 불안감에 휩샇인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오랜 전쟁에 찌든체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서로 웅성거리며 눈치만 보던 그들은 인민군들이 총부리를 앞세워 커다란 회당으로 사람들을 모두 몰아넣자 불안감을 넘어 공포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힘도 없었다.
[...잘 봐둬라....저놈들은 바로 너때문에 죽는거야...너 놈이 국군의 음어함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을 안해서....저렇게 불에 타 죽는거라고...]
[그..그만..둬...]
[그럼 말해....음어함..분명히 이 절 어딘가에 숨겼지!!!! 어디야!!! 어디냐고!!!!!]
인민군 장교가 온갖 고문에 시달린 그의 멱살을 붙잡고 고함을 지르자 장내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들 온몸이 피투성이인 그의 입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큭...그..그건...크흐윽....]
[말해!! 어서 말해!!!! 그럼 너 놈도 살고 이 마을사람들도 산다!!!! 어디야!!! 어서 말해!!!]
[그..그건..!!..크흐그으윽...]
[질긴놈....좋다.]
순간 인민군 장교는 싸늘한 얼굴로 멱살을 놓고는 광기에 번득이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불질러....]
[..예..?..도..동무..!!!]
[불싸질러 버리라고!!!!!]
횃불을 든체 머뭇거리는 인민군 병사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장교는 다시 그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빨리 말해!!!! 다 죽이고 싶은건가!!!! 넌 이 지방유지의 아들이잖아!!!!! 어서 말하란 말야!!!! 어디에 숨겼어!!!!!]
[크..흐으윽....]
그는 여전히 어금니를 꽉 깨문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인민군 병사가 횃불을 천천히 내려놓으려고 할때였다.
[....이....이거....]
소녀는 조용히 무언가를 들고 인민군 장교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걸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여기 있어요...군인 아저씨가 숨겨놓는거...봤어요...이거에요....그러니..사..사람들을...주..죽이지 마세요.....]
그 소녀의 손에는 그가 숨겨놓은 음어함이 들려있었다.
그걸 본 인민군 장교의 눈이 환희에 가득 차 올랐다.
동시에 그의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크게 터져나왔다.
그리고 음어함을 받아든 인민군 장교의 괴기에 찬 웃음소리가 불협화음을 이루며 회당안에 메아리쳐졌다.
[제가 음어함을 건네 주어서 다행히 마을 사람들과...저기 저 분은 목숨을 구할수 있었죠....]
비구니는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준은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고..저 만치에 힘이 다 떨어져서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한국전쟁 참전군인...그 노인은 담배만 뻑뻑 피워댈 뿐이었다.
[그렇군요......]
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 노인에게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당신은 왜 이 절에 불을 지르려는 겁니까.]
[내가 그걸 당신에게 말할 이유는 없어.]
노인은 우직해보이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차가운 밤바람이 스산하게 그의 하얀 백발을 밀어올렸다.
준은 입을열었다.
[제 추측을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흥! 하든지 말든지.]
[당신은 지우고 싶은겁니다....]
준은 천천히, 그러나 빠른 호흡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저 비구니님이 북한군에게 협력했다는 증거....그것을 지우고 싶었겠죠.]
[........]
바람이 불어왔다.
점점 드세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곳 신흥사는 예전에 불이 난 지점에서 1.5킬로 내려온 지점에 다시 재건한 절입니다...그 이유는 원래 신흥사터에는 불에 잘타는 수목류의 나무가 많았고 봉우리가 들어가있어 공기가 잘 돌지 않았기 때문이죠...아마 절 전체를 태워버리는 불 말고도 크고 작은 불이 많이 났을겁니다....그래서 이곳으로 재건하기전, 옛 스님들은 구신흥사 절터에 무언가 '장치'를 해놓은게 분명합니다.....당신이 후퇴하기전에 여기 계신 비구니님이 욕을 당하는걸보고 달려왔다.....글쎄요...아무리 전시이지만 후퇴하는 군인이 그렇게 빨리 올수 있었을까요?....하지만 구 신흥사에 만들어놓은 장치를 이용한다면 간단하죠.]
[장치라는 무슨...난 그런 소리는...]
비구니가 더듬거리며 말하자 준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불이 잘 나는 구 신흥사에는 유사시 대피하기 위한 통로가 있을겁니다...아까 낮에 말씀하셨죠? 옛날 이곳을 재건하신 세 스님은 신선과같이 영묘하신 분이라 순간이동을 쓴것처럼 나타나곤 하셨다고...아마 당시에도 그 비밀통로를 썼을 겁니다....그 통로는 이곳 신 신흥사까지 이어져있구요....그때 비구니님이 욕을 당하려했다면 짧은 시간일텐데 그걸 보고 어떻게 달려와 막습니까....이것밖에 생각할게 없지요....그리고 그 통로도 대충 상상은 가는군요.]
준은 천천히 절의 입구에 놓여진 청동석가여래좌상을 가리켰다.
[저 청동좌상은 현대에 만들어 진 것이겠죠?]
[예...저기에 증축한지는 5,6년정도...]
[원래 대부분의 절에는 청동좌상을 입구에 놓지 않습니다...절의 중앙이나 후편, 그러니까 상석이 놓는게 정석이지요....하지만 저 청동좌상이 왜 저기 있을까요?]
[그야...그냥 관광객들에게....]
[아니요. 아닙니다....]
준은 다시 빙그레 웃었다.
[그 이유는 저기에 커다란 청동좌상을 놓아야 절 입구에서 뻔히 보이는 '비밀통로'를 감출수 있기 때문이죠.....물론 청동좌상을 증축한 쪽에서는 그게 비밀통로인지도 모르고 보기 안좋으니까 그랬겠지만.....절문...즉 청동좌상의 옆벽에 작은 구멍이 있을겁니다.]
[.........]
[이곳 신흥사는 굴곡이 많은 역사라 보수하기 위해 콘크리트벽도 많이 있지요...그러니 그 비밀통로를 후대에 콘크리트로 막아버린다해도 이상하게 보일게 없지요..대부분 그렇게 되어있으니까요...하지만 저곳만큼은 틀립니다...그 이유는..아까 여학생들이 가르켜주었죠.]
준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여학생들 사진을 찍어줄때 이상한점이 있더군요....여학생들은 같은 콘크리트 벽이지만 왼쪽벽에는 서고 오른쪽에는 서지 않았서요...왜일까요...그건 오른쪽의 콘크리트는 주기적으로 몰래...계속 비밀통로를 숨기기위한 보강작업을 하다보니 시멘트 냄새와 마르지않은 느낌이 났기에 때문이죠...물론 그걸 여학생들이 눈치챈건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쪽을 피한 겁니다....왜 오른쪽 벽은 항상 시멘트가 안말랐을까요..답은 하나. 그곳은 주기적으로 누군가 몰래 공사를 하고있는 겁니다.....비밀통로를 막기위한...]
[.....그런데 비밀통로를 막는거랑 나의 죄를 지우는거랑....이 절에 불을 지르려는 이유가...]
[아까 말씀하셨죠?...이 절의 벽들이 다 오래되어서 새로운 증축공사를 한다구요.....그렇게되면 비밀통로가 드러납니다....그래서 아예 태워버리려 한거구요.....비구니님의 죄를 지우려는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바로...마을 사람들....그들 때문입니다...당시 끌려왔던 그들 말이죠.]
[그렇다면....]
[....예..그들은 생존했기 때문에 다행이겠지만...개중에는 군인을 배신한 당신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도 있을겁니다.....예를들어 당시 군인에 친인척 관계를 맺었거나.......그런 그들이 이 비밀통로에 그 증거를 남겨놓았을 겁니다...자신들이 살았기에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살게해준 당신에게 증오를 품는자....그게 인간입니다.]
[.........]
[바람이 부는군요....]
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흥사 증축을 서두른다 하는데요...]
준이 회를 집어들며 빙긋웃자 횟집 아저씨는 씀슬하게 웃었다.
그러자 준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낡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군인의 사진이었다.
[...가족인가 보죠?]
[내 아버지라네.....한국전쟁때 이 근방에서 북한군의 기습으로 돌아가셨지......]
[......]
[......]
[....세상엔 어쩌면 다 묻어두 될 그런 비밀도 있는 법입니다....]
[그런가 보군.....]
회집 아저씨는 말없이 소주한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준은 그걸 받아들고 빙그레 웃었다.
* 신흥사 - 강원도 속초에 있는 천년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