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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시 ♡

이승환 |2006.06.24 00:53
조회 62 |추천 1
첫키스/한용운


마셔요, 제발 마셔요.
보면서 못 보는 체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입술을 다물고 눈으로 말하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뜨거운 사랑에 웃으면서 차디찬 잔 부끄럼에 울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세계의 꽃을 혼자 따면서 항분(亢奮)에 넘쳐서 떨지 마셔요.
마셔요, 제발 마셔요.
미소는 나의 운명의 가슴에서 춤을 춥니다. 새삼스럽게 스스러워 마셔요


행복/한용운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인연설/한용운

함께 있을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곁에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다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 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하지 말고

애처롭기마저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에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었음을 아파하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라 오직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님의 침묵/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거짓이별/한용운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 밑의 푸른 구름이 쬐는 가을 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가도 마음은 붉어갑니다.
피는 식어가도 눈물은 더워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日)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


나의 꿈/한용운


당신의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에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이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사랑의 존재/한용운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글이 어디 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출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壽命)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繡)놓는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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