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 "안마사 자격은 죽느냐 사느냐 생존권의 문제"
국립 서울맹학교 교사 강시열(37) 씨와 학생 오경훈(23) 씨가 CBS TV 에 출연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시각장애인들의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강시열 씨는 "사회 일각에선 특정 집단들이 이해타산을 놓고 다투는 것 아니냐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호소했다.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에 반발해 한달 째 한강 고수부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도둑질도 못 한다!
강 씨는 "집회에서 외치는 구호가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정말 안마를 해서 먹고 살고 싶으면 차라리 도둑질을 해라, 우리는 도둑질도 못 한다'고 절규하고 있다. 나 스스로도 자존심이 상하는 얘기지만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절망적인 심정을 드러냈다.
3년 전 헌법재판소는 같은 사안에 대해 헌법 34조 5항 '신체장애자 및 질병, 기타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의 보호를 받는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강시열 씨는 "헌법재판소에 묻고 싶다. 판결의 결과가 정반대가 될 만큼 사회적 제반 환경에 변화가 있었는가? 우리는 그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떻게 판결이 정반대로 되었는지 시각장애인들 전체가 헌재에 묻고 싶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실력’에 지는 것이 아니라 '편견'에 진다
16세 때 시력을 잃고 대학에서 어렵게 특수교육을 전공해 10년 째 맹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강시열 씨.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적 편견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강 씨는 "안마 실력이 뒤져서 시장경쟁 원리에서 밀리고 직장에서 밀려난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력으로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요소,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인을 보는 편견과 거부감 때문에 밀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각장애 학생들은 2년 간 직업 관련 수업을 2,040시간 받고 안마, 마사지, 지압, 기타 자극요법에 관련된 수기실습을 1,000시간 이상 수료한다. 학생들이 보통 노력을 하는 게 아니다. 숟가락질도 못할 만큼 엄지손가락이 부러져라 연습한다. 그렇게 하고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적합하면 학교에선 안마사 자격을 빼고 졸업 이수만을 인정한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엄격하게 안마사 자격이 주어지는지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도 시각장애인들의 가치가 평가절하 된다”면서 "시각장애인 중에는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백내장이 심해 백회가 끼어 눈동자가 뿌연 사람도 있다. 사시가 있거나 중심시야가 없는 분들은 째려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즘은 안마의 서비스업 형태가 부각되면서 '째려보는 눈길이 싫다, 저런 사람에게 받기 싫다'고 외면해버린다"고 덧붙였다.
2006년 5월 25일, 대한민국의 윤락 합법화?
또한 강시열 씨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금 스포츠 마사지 하는 분들은 1-3개월 과정으로 일주일에 고작 한 번 가서 2,3시간 배우고 자격증을 받는다. 돈 주고 자격증을 산 셈인데 마사지 하는 1,2시간 동안 방 안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5년, 10년 후 우리나라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한국의 윤락 합법화가 언제 이루어졌는지를 다룬다면 '헌법 판결을 한 2006년 5월 25일'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중도 시각장애인 비율이 훨씬 높아
강 씨는 중도 시각장애인 비율이 높은 만큼 안마사 자격 논란은 현재의 시각장애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 맹학교) 유치부나 초등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5, 6명 정도인데 고등학교까지 가면 30명 정도로 늘어난다. 추가된 인원은 후천적 장애를 얻은 것이고 그만큼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요즘은 성인병, 당뇨병의 말기 증상으로 시각장애가 많이 오고 있어 중도실명자가 훨씬 많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벌, 능력 있어도 '안마사' 를 할 수밖에 없다
멀쩡하게 사회활동을 하다가 어느 날 하루아침에 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만큼 그 사연도 가지각색.
강 씨는 "(전직이) 일식요리사도 있고, 태권도 사범도 있고, 명문대를 나온 뒤 연구원으로 있다가 온 분도 있고, 종합병원 원장이던 분도 있고, 펀드매니저 하다가 온 분, 변리사로 일하다 온 분, 실명으로 가정이 깨져서 이혼하고 오신 분도 있고, 사귀던 애인에게 부담이 될까봐 헤어지고 오는 분도 있다"고 소개했다.
강시열 씨는 중도 시각장애인들이 일정한 교육을 받고 대학도 졸업하고 전문직에 있었으면서도 결국 모든 걸 다 버리고 '안마'를 배우러 오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미국에는 '재활법'이 있어서 중도에 실명을 하더라도 본인 능력에 맞는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의무적으로 재활교육도 해야 하고 적응에 필요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지원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가 된다. 결국 해법은 그 직업을 버리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헬렌켈러, 한국에 있었으면 중복장애인 시설에서 여생 마감했을 것
강시열 씨는 "과연 헬렌켈러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인류에 희망을 주는 빛을 던질 수 있었을까, 스티븐 호킹이 과연 그 시간에 한국에 있었다면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미국 백악관 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있는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헬렌켈러는 중복장애인 시설에서, 스티븐 호킹은 임대아파트에서 쓸쓸히 인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영우 박사도 과연 청와대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 412번 채널)과 각 지역 케이블방송을 통해 6월 23일(금 낮 12시 30분), 6월 25일(일 밤 10시) 두 차례 방송된다. 인터넷 www.cbs.co.kr를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으며 방송 후에는 인터넷 주소창 누군가 로 접속해 VOD를 볼 수 있다.
200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