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젊은 날의 고요한 절정 같은 하루하루.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맴돌고, 스쳐 지나갔다. 혹은, 나를 꿰뚫어 상처를 입히고 떠나갔다.많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나와 어울리고, 짜증을 내고, 좋아하고, 화를 냈다. 나 때문에 울음을 터뜨리고, 나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지겨워졌다고 했으며,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를 지나갔다. 만 명?
아니 그 보다는 조금 부족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재미가 있다.
내가 그들을 떠올리면서 재미가 있고, 즐거운 이유는,
그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에게 직,간접적 이익이 없을 때에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 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다.
평소엔 뜨거운 여름 날 졸린 하마처럼 그렇게 흐리멍텅하더니,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관련될 것 같은 냄새를 맡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까지 고려해서, 어떻게든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일이 성사되도록 만들려고 한다.
논리적일 때도 있고, 비열할 때도 있고, 그냥 목소리만 클 때도 있다. 정말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 정도로 '농밀하게 편협적'일 수 있냐는 것이다. 스위스 전 주심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널려있다. 지뢰 밭처럼. 축구공이 지뢰지대로 넘어가면 왜 거기에 지뢰가 있었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축구공을 포기하는 것이 빠르다.
나는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고, 그들과 나는 유전자의 종류가 다른 것 같아, 함께 있으면 굉장히 거북스럽다. 어느 바람부는 지뢰지대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나 같이 중립적인 사람은, 그런 사람들과 거래를 하게되면 어김없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지뢰지대로 넘어간 축구공은 포기해야 한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나한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있게 생각을 하려고는 한다. 그런데, 자꾸 상대방 입장까지 생각하니까 일을 그르치고 만다.
만약 내가 그 지뢰같은 사람하고 물건을 하나 거래한다고 하자. 내가 처음에 제시한 가격은 100원이고, 그 사람이 제시한 가격은 1000원이다. 그 물건의 보통 시장거래가격은 500원정도이다. 나도 어짜피 흥정할 생각으로 물건값을 처음에 낮게 부른 것이니 결국엔 시장가격과 비슷한 500원선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지뢰도 그럴거라 생각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다. 지뢰는 처음부터 물건을 500원에 넘길 생각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501원이면 501원이지, 절대로 500원에 넘기지는 않는다. 지뢰에겐 Win-Win 은 없다. 둘 다 이겨도 자기가 조금 더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게 지뢰다.
난 결국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지뢰에게 당해낼 수가 없어서, 약 800원쯤에 대충 거래를 마무리 짓고, 녹초가 되어버려서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질 것이다.
정말 지뢰들과 상대하는 건 혹독하게 추운 날 빙산의 뒤편에서 빙산을 미는 것처럼 힘이 들다.
무슨 말을 하려다 이렇게 많이 쓰게 됐을까.
이게 다 세상에 흩뿌려져 고집피우고 있는 지뢰들 때문이다.
이제 나 같은 사람 좀 그만 괴롭히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라구.
500원이나 501원이나 그게 그거라구. 살다보면.
그걸 보고 있으면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것 같다니까.
( 원래, 이글의 처음의 제목은 '중립의 이중성'이었는데, 쓰다보니 글의 논지가 자꾸 빗겨나가서 내용은 그냥 두고, 빗겨나간대로 제목을 바꾸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