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외식 중 아빠의 말씀.
" 아빠가 오늘 회사에서 좋은 얘기 듣고 왔다. 휴먼쉽 세미나. "
" 뭔데여."
" 사람의 신에는 여러가지가 있어. 신념, 신의, 신앙, 신뢰... 그런데 이걸 다시 보면 말이야. 자기가 자기를 믿는 건 신념이야. 그리고 주변 친구나 가족들에게 받는 믿음은 신의. 그리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건 신뢰. 그리고 절대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신앙이야. 근데, 이런 건 다 먼저 자기가 자기를 100% 신념을 가지고 믿어야 비로소 차례차례 이루어지는 거야. 내가 나를 못 믿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믿어 주겠어? 그러니까 난 나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된다는 거지. "
와와. 대략 식탁 분위기 진지. 그리고 나의 택흘질.
" 아퐈. 제 생각은 좀 다르네요. 그 레크리에이션 강사분이랑 가치관이 다른 것 같아요. "
" 어떤 면에서? "
" 전 저를 100% 믿지 못하거든요. 전 아빠가 말씀하신 그 가치들의 순서가 거꾸로 라고 생각해요. 나를 만들어 준 신이 있고,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있어 나는 살아가는 거죠.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오늘의 나도 없구요. 그리고 자신을 너무 과신하면 주변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빠가 말씀하신 경우는, 어느 정도 인생에 대해서 바른 가치관이 선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아직 청소년인데, 그대로 저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 상태에 머무른다면 넓은 시야를 볼 수 없겠죠. 나를 너무 믿다보면 주변 사람의 이야기는 잘 듣지 못하게 마련이에요. 나와의 약속은 지키는 편이지만, 그런 약속이란 개념을 배우지조차 못한 사람들은 이 순서대로 인생을 살았다간 불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음.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온 가족이 정말 진지하게 토의. 내 동생은 내 편으로 왔고, 엄마는 아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하셨다. 사람 생각은 참 제각각 다르단 말야.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도 우 리의 토론을 경청. 결국 결론은 " 니 배짱 대로 살아라. " . 아빠는 흥분하셔서 닭갈비 집이 떠나가라 이야기를 해 주셨다.
말나왔으니 말하고 싶은 거. 아빠 말씀을 듣다보면 가끔 울컥 할 때가 있는데, 주장의 성향이 흑백논리 일 때가 많아서 인 것 같다. 늘 이거 아님 저거. 중간 지대가 없어서, 어렸을 땐 그게 정말 싫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빠가 " 이거 안 하려면 집에서 나가! " 해서 진짜 같이 화내면서 " 아빠 이야기는 전혀 틀려요! " 하면서 나간 적도. 아파트 계단에 화 식히면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나오셔서 걱정 좀 시키지 말라고 그러셨다. 참 어렸을 때는 엄마한테 많이 혼났는데, 아빠한테는 맞은 적이 없다. 맨날 동생 괴롭히고 험하게 놀아서. 그러다가 정말 심각하면 빗자루로 종아리 맞고.... 자주 때리시진 않았다. 정확히 이유가 기억나는 건 두 개. 하나는 동생이랑 싸워서 그런 거였고, 두번째는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가 갖고 싶어서 엄마 지갑에서 돈을 막 꺼내갔던 거였다. 인사 안해도 혼나고, 욕하고 반말하는 것도 혼남의 대상. 때리기 전에 반드시 뭘 잘못했는지 말씀해주시고, 다음부터 안그러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셨다. 그리고 내가 빗자루를 가져와서 몇 대 맞을지 정하게 하시고. 우리 엄마 참 멋있는 분이다. 인생의 선배님으로서 존경한다. 지금은 나보다 키가 작으셔서, 엄마 보면 많은 생각도 들고. 엄마는 내가 사학년이 되고 왠만한 건 혼자 할 수 있게 되자 임용시험을 보셔서 늘 하고 싶어 하셨던 선생님이 되셨다. 그래서 현재는 교원대학교에서 무료연수도 받고, 미국이랑 캐나다도 가시고. 아주 그냥 잘 나가신다. 대체로 우리 집은 우먼파워가 센 듯. 멋있고 귀여운 분이다.
그치만 지금도 아빠와 나의 논쟁이 벌어질 때면 엄마는 좌불안석. 근데 이제는 나도 많이 착해지고 감정적이지 않게 되서 차분히 설명해 드린다. 평소에 아빠와 이야기 하면 참 재미있다. 넓게 볼 줄 아시는 우리 아빠. 나랑 제일 많이 의견 차이가 나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 중 나랑 가장 닮았다. 평소에 유하다가 한 번 화나면 불같은 것도 그렇고, 고집쟁이에다, 목소리는 되게 크고, 음식 취향이나 혈액형이나 트로트 좋아하는 거나 키 큰 거나. 놀 때는 아주 그냥 갈 때까지 놀아서 쿵짝이 잘 맞아주신다. 나랑 잘 놀아주시는 듯. 개그 코드가 비슷하다. 아빠딸이라서. 엄마 숏다리라고 맨날 놀리고, 개혁정당 팬클럽에, 닭갈비 안티, 회 좋아하고, 휴일엔 뒹굴뒹굴하고. 진짜 너무 좋다. 지금은 쪼꼼 많이 부실하고 배 나온 차승원이 됬지만, 소싯적엔 진짜 아빠도 꽃미남이었다. 정말 우리 아빠라서 더 비웃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유감이다. 옛날 사진 보면 정우성이랑 현빈 섞어 놓은 것 같은데. 반면 지금 상당히 괜찮은 엄마는 무슨 호빵이 사진에... 지금 내 모습이 어렸을 때 엄마 닮았다고 하는데..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근데 글 되게 길어진다. 나 산만하구나.
우리 부모님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나도 어른이 되면 부모님 같은 어른이 될 것이다. 부모님과 이렇게 기본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가정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을 늘 존경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