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코지로(? ~ 1612)/[?~慶長(케이쵸오)17]
미야모토 무사시와 간류우 섬에서의 결투가 너무나 유명한 江戶[에도] 초기의 검객. 자세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미야무토 무사시의 전기 「二天記」에서는 越前[에치젠]출신이라고 씌여있다. 단,
최근에는 九州[쿠슈] 의 國人衆[코쿠 진슈우 : 남북조 무로마치시대에 활약한 지주층]였다는 설도 있어 실제로는 수수께기로 남아있다. 원래, 「二天記」 는 무사시의 사후 120년 후에 쓰여진 것으로, 당연히 무사시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희화된 구석도 있어 분명치 않다. 고지로가 사용한 검 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부분이 많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검객인 토다 세이겐[富田勢原]을 따라 수행했다는 설이 통설이나, 세이겐이 아니라 그 제자인 카네마키 지사이에게 사사 받았다는 설도 있다.세이겐, 지사이 모두 小太刀[코다치,소태도]의 달인이었으나, 고지로는 길고 큰 太刀[타치,태도]의 기술이 특기였다. 그렇기도 한 것이 세이겐(지사이)는 稽古[케이코 : 대련, 연습]을 할때, 자신은 코다치, 상대는 大太刀[오오타치]라는 형식을 취했으므로, 고지로는 스승의 상대로서 오오타치를 사용하게 되면서 오오타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후에는
細川家[호소카와 가문]에서 검술사범역을 맡았다.
1612년, 고지로는 간류 섬에서 무사시와의 결투 끝에 절명하고 만다. 「二天記」에 의하면 18세였다고 씌여 있으나, 실제로는 무사시와 같은 연령 이거나 그보다 위(70세였다는 설도 있을 정도)였다고 생각된다.
흔히 고지로라 하면, 物干之竿[모노호시사오 : 바지랑대] 라 불리는 장검으로 그검으로 제비를 베면서 터득했다는 검술 燕返之[츠바메 가에시 : 제비치기,혹은 제비베기] 지만, 실제로는
虎絶[코세츠]라고 불렀다고 한다. 눈 속임의 初太刀[쇼다치 : 일검 즉 첫번째 공격] 후 적이 움찔하는 찰라에 두번째 공격으로 제압하는 컨셉은 변함없지만, 코세츠는 상하가 아닌 좌우로 검을 휘둘렀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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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검객 사사키 코지로 무사시와의 혈전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지로 암살설이 돌면서 새로운 설도 돌고 있다고 한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를 보면 코지로는 천재인 만큼 천재에게 보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나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요시카와 에이지가 소설에서 좀더 사사키 코지로라는 인물의 개성을 소설속에서 살리기 위해 그렇게 그렸다고 생각된다.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배가본드]에선 코지로가 귀머거리에 벙어리로 나오는데 그것도 만화에서의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이노우에가 그렇게 그렸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진들은 배가본드의 사사키 코지로...
그리고...이거 작성하는데 너무 힘들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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