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노동자, 시민단체뿐이 아니다. 경제학자 171명과 농업경제학자 45명도 각기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참여정부 핵심 자리나 정책 자문단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경제학자도 여럿 성명서에 서명했다. 종교인, 여성단체도 반대 뜻 천명이나 시위에 잇따라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 경제학자로 꼽히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정운찬 서울대 총장 역시 협정 체결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의견이 맞서 있다. 나라가 갈라지고 있다. 이런 대가를 치르고도 밀고 나갈 만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화급한 일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분열돼가는 소리가 정부한테는 ‘쇠귀에 경읽기’쯤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듯하다. 어제 6개 관계부처 장관이 낸 공동 담화문은 정부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일부 취약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피해”, “일부 단체에서 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대목에서는 반대 여론을 일부 계층의 딴죽걸기 정도로 폄하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기껏 “폭력시위 등 불법 행위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나 놓고 있다.
정부는 상황을 똑바로 봐야 한다. 일부의 반대도, 비전문가들의 막연한 불안감 발로도 아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52%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이 손해볼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90%가 협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회 시스템과 경쟁력을 한단계 높일 것이라는 추상적 강변이나, 입맛에 맞는 자료를 꿰맞춰 득실을 재는 식으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1차 협상 내용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어떠한 의견도 겸허히 수렴해 협상에 반영하겠다”고 하는 건 기만이다.
평화적 시위를 바라는 마음이야 한가지겠지만, 그 전에 정부부터 귀를 여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삶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생존권적, 생활권적 기본권까지 침해할 수 있는 일을 독단적으로 밀고 나갈 권한은 정부한테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