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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붐 동영상(차범근의 활약 진짜 개멋지다)ㅎ

박찬호 |2006.07.09 23:23
조회 233 |추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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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활약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Park''s Cup).
말레이지아 전 1:4로 뒤지던 상황.
종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가 데뷔
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
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씨스트 기록.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紙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 결정 골.
KICKER지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씨스트로 선취골.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왼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지, 처음으로 이라는 단어 씀.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씨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
11월 일본의 오데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
차 선취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푸르트 3:1로 승리.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월요일 밤.

시청률 최고.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
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 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로타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 갈색 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경기 마테우스의 완승. 차붐 속수무책.
2:3 패.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이번엔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게 제치고 어씨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신문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는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이다."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
세계축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
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부상이후 슬럼프. 이때도 역시 한국언론 차범근 씹기 발동.
KICKER지 이일로 이라는 기사.
곧 슬럼프 회복.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
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
85~86시즌 분데스리가 MVP !
득점 4위.
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골 터뜨림.
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신문 톱기사

KICKER지

 

 

 

독일에서 본 차범근

 

그당시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전 나중에 들었습니다..

물론 울나라 중계는 없었구요.가끔가다 후에 녹화로 해주긴 했었습니다.
제 친척이 그러더군요...여기선 차붐때문에

한국인이란 자체가 존중받는다고 ..올드팬들은 한국인이라면

식당에서 식사비도 안받을 정도로 열기는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그당시 나라사정이 정말 안좋아서 해외로 인력수출할때인데

우리교민들 정말 차붐때문에 행복해했었다더군요.
지금 박지성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답니다.그당시는 못살고

힘들고 그러던 시기라 무시받기 일수고 그랬는데 차붐으로 인해서 한국인이라는 것하나로 존중받고 암튼 실로 피부로 와닿는

교민들이 느끼는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고 합니다.
독일시인이 차붐을 낳아준 코레아라는 나라에 대해 감사하다는

시를 쓸정도였고...지금도 그는 전설이자 레젼드입니다.

축구를 떠나서 가 보여준 인품과 행실은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선수였답니다.

정말로 수비들이 차붐을 막을려고 했던 짓들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정도였고 유에파컵 우승하고 그당시 감독하고 포옹시 전 독일이정말 감격했고 운동장에서 모든관중들이 일어나서 5분여동안 붐을 외치며 전광판에

차붐이라는 글씨가 써지면서 울렸답니다.

2002년에 차붐이 해설하면서 독일팀플레이가 너무 안좋다고

평가했다가 당시 감독인 풸러가 언론에 불쾌하다고 그러면서

차범근한테 약간 안좋은투로 말했다가

독일언론에서 난리가 났답니다.감히 차붐한테 그런말을 할수있냐고 빨리 당장 사과하라고 해서 다음날 펠러가 차붐 찾아가서
해후하면서 사과햇던거 아시죠..암튼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차범근에 대해

 

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떄부터 차붐을 보고자라났다.

나도 그선수처럼돼고싶다. - 오웬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발락
차붐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큰 영웅이다. - 피구
난아직 어리다 그러나 차범근은 세계최고의 공격수이다. - 마테우스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

있었다면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으로 넣고싶다. - 베켄바우어
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줄안다. - 펠레
내가 그런공격수랑 붙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 파울로 말디니
내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 - 클리스만

 

 

 

차범근에 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 독일에서 활약하는 동안 기록한 98골중에 페널티골은

 단 한골도 없었다.
2. 독일에서 활약하는 동안 경고(엘로우)카드를 딱 한 장만 받았다.
3. 겔스도프에게 의도적인 태클을 당해 척추가 부러져 선수 생명의 위기에 몰렸으나 병상에 오래누워있다가 나온후에도 그 선수를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전 독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4. 차붐이 활약했던 당시 독일축구계가 그를 귀화시키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을 버릴 수 없다고

단호히 사양했다.
5. 차붐이 병상에서 일어났으나 후유증으로 슬럼프가 길어지자

한국의 언론에서는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언론에선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6. 상대방이 반칙을 하면 당신은 무어라 말할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건 규칙위반이다. 그러면 안된다'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그럼

그 선수에 대해 보복을 할 경우도 있냐는 질문에 '나는 신앙인이며 그런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7. 차범근의 경기가 녹화방송되던 80년대 초의 월요일밤은

술마시는 사람들조차 귀가를 서둘렀다고 한다.
8.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한국대표로 차붐이 출전하자 상대팀에서는 그를 막으려고 기본이 2명, 많게는 3명이 달라붙었었다.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에 이를 인용합니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에 선정한 위인이다.

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

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

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가 없다.

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

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난 차범근이 좋다

추천수15
반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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