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
전남대학교
정미지
어느 처음 누군가
저 산위의 햇살을 기억했을까.
마냥 쏟아지는 햇볕인데
그 따스함을 잡으려
어느 처음 누군가
그 순진한 땀 한 방울 흘렸던가
세월은 끊임없이 햇살만을 좇는다
햇살을 좇으러 가빠른 숨을 내뱉고
내뱉은 그 숨결 하나에
겨우 디딘
발아래 내려다본다.
바란 것은
반듯하게 뻗어지는
정상에서의 온기가 아니다
나 하나 버텨주는 이 버팀목 위에
마냥 나를 세워둘 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 투박했던 손은
어느 길고 긴 시간이 흐른 뒤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둘게 매만져진 층계 사이로
흙 내음새 초록빛 이끼는
시간을 견디며
나보다 더 오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산위로 뻗어있지만
돌계단은 나에게
길을 일러주지 않는다
구석에 배인 땀의 온기 위에
마냥 나를 세워둘 뿐이다
어느 처음 누군가
햇살을 잡았던
그 돌계단 위에
서 있다
햇살을 기억했던
그 누군가의 거친 숨결 위에서
이제 나는
영겁의 시간을 견디어낸
돌계단을 기억 한다
햇살을 품을
어느 먼 날 그 누군가에게
나는 또 하나의 기억을 남긴다
돌계단을 오른다
비 오는 날
대우초등학교
4학년 대반
강세라
“세라야, 일어나! 늦었어.”
“엄마, 아직도 비가 와요?”
우리 학교는 해마다 국사봉에 올라간다. 하지만 내가 올라갈 때마다 ‘똑똑똑’ 소리를
내며 가랑비가 내린다. 한 방울, 두 방울씩 비가 내릴 때마다 친구들은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질퍽질퍽한 땅을 밟으며 우산을 쓰고 가면 어느새 비는 그치고 내 마음도 맑게 개인다.
1,2학년은 산 중턱까지 3,4학년은 정상까지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 갈대밭에서 점심을
먹고 5,6학년은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는 올라가는데 체력을 다 소모해서 정상에 올라가니 서로 함성이 쏟아졌다.
“와, 저기 내 집도 보인다!”
“저기 제일 큰 대우조선소도 보인다!”
“그래 그 옆에 우리 학교도 보인다!”
우리들은 안개가 끼인 사이로 보이는 크고 작은 건물들을 찾기 바빴다.
또, 내려올 땐 친구다리에 걸려 친구와 같이 온몸이 흙탕물이 되었다. 속으로는 또 누가 안 넘어지나 기대도 해보았다. 비록 힘은 들었지만 비 온 날에 등산을 하니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비야, 제발 다음에는 오지 말아줘!”
독도의 대답
부산 금사중학교
3학년 1반 서기경
도심속에서 무심코 던져진
과자봉지 하나
자신의 몸을 돛단배 삼아
품속 가득 짭조름한 빛을
담아낸다
누구 하나 길 가르쳐주는
이 없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다
바람 가는 대로
갈매기 가는 대로
돛을 펴고
노를 저어 도착한
조그맣지만 커다란
섬
새들의 날갯짓이
진하게 물든 그 곳에
과자봉지는 지친 몸을
기대었다.
수많은 세월이
깊게 새겨진
투박한 할머니의
손 같은
독도의 가슴
그 속에
오직 바람과 새 그리고
거센 파도만이 스쳐가는
독도에게 과자봉지는 넌 저시
한 마디를 던진다
- 무섭게 쏘아보는 파도가
두렵지 않나요?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이
밉지는 않나요?
과자봉지의 물음에
독도는 대답이 없다
항상 그러하듯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과자봉지의 품속으로
바닷물이 들어온다
점점 깊이 가라앉는
그에게 독도는 기분 좋게
자신의 품을 열어준다
밉지 않다 두렵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조국의
한 조각이기에
한 순간이라도 나의 조국과
닿을 수 있기에
나는 항상 내 가슴을
열고 기다릴 뿐이다
창가에서 어느 날
나주여자고등학교
3학년 명새들
제게는 병이 있어요. 소아당뇨라고 하더군요. 이 녀석 때문에 저는 수차례 병원에 입원해야했어요. 제겐 엄마가 없거든요. 그래서 혼자 몸조리 한다는 것이 힘들었고 몸을 관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해버린 탓에 병원에 입원하는 횟수가 부득이하게 잦아져 버린거죠.
병에 시달려 기거를 조절해야 한다니. 정말 슬픈 일이었습니다. 병원 안 허무함에 가득 찬 환자들의 표정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들. 저는 조금씩 무기력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병원에 있는 동안 저는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는지도 모르지요.
점 점 더 무료하고 갑갑해져 가는 생활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회진을 도는 의사선생님들이 매번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는 저를 공포로 밀어 넣었습니다.
“또 왔니? 그러니까 너 조심 좀 하란 말이야. 잘못해서 당뇨합병증이라도 걸리면 넌 실명할 수도 있어. 발이 점점 썩어 들어가서 잘라내야 될 수도 있단 말이다.”
충격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자 차라리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은 공평하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을 굳게 믿으며 빌어보기도 했습니다.
‘하늘아, 내게 슬픈 병을 준 대신에 훗날 깨끗한 주음을 맞게 해줘, 병신으로 썩어가면서 더럽게 죽기는 싫어.’ 라면서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병실 한 구석을 바라보다가 문득 창문으로 시선이 가게 되었어요. 하늘이 보이더군요. 바람에 살랑이는 푸른 나무들도 보였어요. 나처럼 슬픈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세상은 너무 아름답게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입니다.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그 날 이후로 자꾸 그 창문으로 시선이 가게 되는 거예요. 10분, 20분. 그렇게 창문가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날이 늘어갔고, 어느 샌가 제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유난히 수선스럽게 춤을 추던 어느 날, 저는 살며시 장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더군요. 전 그제 서야 깨달았습니다. 하늘은 내게 절망만을 준 것이 아니었어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작은 실마리도 남겨 주었던 거예요. 제게 꿋꿋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바람속에 꼭꼭 숨겨서 말이죠.
이제 알아요.
하늘이 제게 이 병을 내린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을요.
이제 당뇨는 저와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되었습니다. 전 앞으로 언제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죠.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