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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역시 자식 교육을 잘 시켜 놓았더군
지방 나들이를 다녀오는 한 일행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중 지난 5월의 박근혜 피습사건과 5.31지방선거 이야기가 나왔다.
“박근혜의 인격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근혜는 아주 훌륭한 인격을 지녔데. 박정희가 역시 자식 교육을 잘 시켜 놓았더군”
한 원로 언론인(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송정숙)의 월간지(한국논단 7월호) 칼럼에서 읽은 내용이다.
칼럼에서 필자는 “박정희가 역시 자식 교육을…”이라고 말한 사람이 ‘ㄷ일보 출신의 ㅇ씨’라고 소개하면서 두가지 사실에 놀랐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박정희 시대에 투쟁을 한 경력이 있는 ‘꼬장꼬장한 언론인 ㅇ씨’가 박근혜의 인격을 거침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놓고 말하는 데 놀랐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행의 대부분이 그 말에 수긍하는 표정이었고 한 여성은 미소를 지어 동감을 표하더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ㄷ일보 출신의 ㅇ씨’가 피습사건을 통해서 박근혜의 인격을 평가하게 되었으리라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즉 ‘1센티만 더 들어갔어도 큰일을 당할 뻔한 비수’에 찔리고도 “비명을 지르며 인사불성이 되지도 않았고 두려움에 차서 오금이 저려 하며 주저앉지도 않았다. 울부짖거나 이성을 잃지는 더욱 않았다”며 박근혜의 ‘침착함과 원숙함’을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는 “이 일로 절대로 오버하지 말라. 내 대신 당에서 다른 분들이 나서서 선거전의 공백이 나지 않게 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던 박근혜가 ‘전쟁터를 누비는 역전의 유능한 지휘관’ 같았다면서, 지난날 자기 승용차의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를 정치 테러라고 선전선동해서 “역사적 사실처럼 만들어놓은 그런 술수로 대통령까지 하고 만 사람”(김대중 전 대통령을 명기하지는 않았지만)의 사례를 비교했다.
천박한 정치 현실에 초연한 박근혜의 이런 모습이 결국은 아버지에게서 올곧게 ‘교육’을 받은 결과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개인의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지원 유세를 다니던 1997년 겨울, 경부고속도로 상에서 승용차의 오른쪽 뒷문을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었다. 문짝이 그의 무릎까지 치고 들어와버린 돌발사고의 충격에 운전기사가 어쩔 줄 몰라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침착하게 차를 우측 1차선으로 붙이세요”
장미꽃이 핀 정원을 바라보며 살고 싶었지만…
우리는 정치인 박근혜를 보면서 아버지 박정희를 함께 추억하고 그 시대의 의미를 여러 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대통령 박정희는 딸 박근혜에게 무엇을 주고 갔을까.
적어도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정치는 박근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 청와대를 떠나, 그 자신은 대학 전공의 연구를 계속하거나 장미꽃이 핀 정원에서 손님에게 차 대접을 하며 사는 게 소원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운명은 평범한 여성의 행복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퍼스트레이디 역으로 아버지 옆에 섰던 5년을 그는 어머니가 없는 청와대의 쓸쓸함을 지우기 위하여 정말 최선을 다한 세월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을 한마디로 ‘사심 없는 헌신’이라 했다.
“사심 없이 정치하셨다는 것,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을 지시하시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체크하고 끝까지 챙겨서 완성될 때까지 정확하게 하신다는 것이 좋은 교훈이 됐어요. 저는 정치에 사심이 끼어들면 망한다고 봅니다” (신동아 2001년 2월호)
아버지의 국가관은 그 자신의 사생관(死生觀)을 융합한 것이었다. 국가를 위해 언제라도 자신을 던질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는 비장함은 시나브로 딸에게 전이(轉移)되었고, 오늘날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적 신념으로 굳어져 있다.
박근혜 당대표 시절, 그의 집에 가봤던 전여옥 의원은 “집안이 승방이나 수녀의 방 같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처럼 사생활까지도 세인의 관심을 모으는 정치인도 없다.
“머리를 풀고 화장을 지우고 방에 혼자 있을 때는 무얼 할까? 가끔 혼자 술도 먹고 울기도 할까? 대학 보낼 자식도 없고, 무능한 남편이나 얌체 같은 시댁 때문에 속 썩을 일 없어 부럽다가도 은근히 안쓰럽기도 했다. 낯 모르는 이들이 실컷 만져 퉁퉁 부은 손이나 아프다는 발은 누가 주물러줄지…” (뉴스메이커 제577호)
세인의 호기심에는 애틋함이 깔려 있다.
“처음에는 썰렁할 정도로 간소한 살림살이 속에서 혼자 밥 먹고 무슨 낙으로 사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전여옥은 말했다. “언제라도 훌훌 털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음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국가라는 대의를 위해 정말 죽을 수가 있는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른다
당연히, 정치인 박근혜의 국가관과 사생관은 어머니, 아버지를 여읜 처절한 아픔으로 숙성되었다.
아버지의 비보를 전하러 온 비서실장(김계원)과 마주섰던 박근혜.비서실장은 말문이 막혀 눈물을 흘렸다.
“실장님, 왜 그러십니까?”
섬뜩한 예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차분했다.
비서실장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말씀해 주세요. 저는 어머니 일도 당했잖아요. 무슨 일이라도 견딜 수 있어요”
바닥까지 간 고통을 겪었는데 감당 못할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기어이, ‘있을 수 없는’ 비보를 들어야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기가 막히고 놀라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물었다.
“휴전선은 괜찮습니까?”
아버지에게 달려가야 할 정황에서, 육군 장성 출신의 비서실장이 비통한 눈물을 흘리는데 박근혜, 눈물 한방울은커녕 생뚱하다 할 휴전선의 안전을 묻는 나지막한 물음은 차라리 비정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가족의 가장이지만 그러나 국가 안위를 책임진 대통령이요, 따라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을 넘어 반사적으로 달려간 것이 돌연한 권력 공백으로 인한 국가위기였던 것이다.
그는 북쪽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무력 도발과,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그들의 흉칙한 적화 야욕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었다. 게다가 이쪽은 예비군 폐지 주장과 민방위제도까지도 쟁점화하는 정치공세에 대학가의 교련 반대데모까지 그치지 않아 안보 위기에 노심초사하는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근혜임에랴.
이때의 박근혜 모습은 갖가지 언론의 반복된 보도를 통해서 일반 대중의 심저(心底)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지만 박근혜는 잔잔하다. 삶의 궤적에 고난이 깔려 있지만 평온하다.
정치 행보는 조용하다. 좀체로 흥분하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깊은 강물 속 같은 정밀(靜謐)한 내면은 격동과 고난을 온몸으로 껴안는 탁마(琢磨)로써 이루어진 것이리라.
깊은 강이 조용히 흐르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근혜라는 ‘희망’을 건졌다
그가 입원해 있을 때, 텔레비전에 나와 의료시술과 환자의 용태를 설명하는 병원장의 진지하고 정중한 예를 갖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원로 언론인의 칼럼에서도 “대표께서는 이러저러한 처치를 받으시고 지금은 회복 상태에 계십니다”라는 식으로 다듬어진 병원장의 담화에 대하여 “경어가 완벽했고 진지하고 그리고 최상의 것이었으며 그럼에도 결코 과공(過恭)으로 들리지 않았고, 숙연하고 권위 있어 보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칼럼은 “노여움도 보이지 않고 그냥 웃으며 상처를 감싸는 이 맹랑하도록 속이 깊은 여성지도자를 통해 사람들이 ‘인격’을 발견한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면서, “우리는 ‘박근혜’라는 희망을 건졌다”는 맺음말로써 암울한 정치 현실의 반전(反轉)을 기대했다.
박근혜라는 ‘희망’ 앞에는 그러나 장애가 가로놓여 있다. 그의 정치 행보에 무게가 실릴수록 반대 세력의 정치공세를 포함한 도전은 만만치 않게 집중되었다. 그가 흔들림없이 제 위치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여느 정치인이 갖고 있지 않은 남다른 정치학습 경험을 갖고 있다.
청와대, 국가경영의 맥박이 뛰는 권력의 중심부에서 아버지 옆에 섰던 5년 세월이 그것이다. 아버지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역을 맡은 딸에게 국정 현안을 설명해 주고, 고민스러운 부분에 관하여는 의견을 듣기도 했다. 그 시기에는 외국 VIP들의 방문도 잦아 외교 감각도 가다듬으면서 그 나름의 정치적 동선(動線)을 만들어 나갔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시절의 경험은 결과적으로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청와대 일기는 오늘까지 내외적으로 끊임없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박정희 모델’의 알파와 오메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통치철학과 특히 아버지가 이 나라를 만들어간 고독한 정열이 절절이 배어 있는 고백록과도 같은 것이다(일부가 한 월간지에 공개된 바 있다).
아버지가 거의 매일 쓴 그 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울었다는 박근혜.
“반대자들도 그 일기를 읽는다면 아버지의 진실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는 반대자들과의 화해, 포용, 화합에 대한 자신감을 담담히 피력해 왔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는 “저의 상처로 우리나라의 모든 상처가 봉합되고 하나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정치인에게서도 이런 가슴으로부터의 울림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생명을 노린 정치테러의 음모를 규탄하고 분노의 투쟁을 다짐하는, 그런 사고와 그런 방식의 정치만을 보아왔다.
그래서 더욱 박근혜와 ‘박근혜 아닌 것’의 차이는 관심을 가진 관찰자들의 눈에 선명히 파악이 되고 있다.
한 예로, 조인스닷컴 토론방인 디지털국회의 한 논객(서상순)은 피습사건과 관련한 글(천상의 엄마편지 제1신)에서 박근혜는 부모의 ‘비범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아 ‘인애덕성(仁愛德性)’이 있다면서 피습으로 인한 상처를 “사랑의 인성으로 치유하되, 복수심을 치유의 약으로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글 속의 화자(話者)인 육영수 여사를 통해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지만 그것이 필자 자신의 생각임은 물론이다.
화합의 리더십만이 ‘희망’이다
박근혜 정치의 일관된 흐름이 있다. 바로 화합이다. 그리고 화합은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좌파정권은 빈곤을 양산해 왔고 증오를 증폭시켜 왔다. 당연히 박근혜의 화합 정치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증오와 증오가 맞서 있는데, 복수심이 불덩어리 같은데 “사랑의 인성으로…” 이 말은 허구(虛構)로 들릴 만큼 결코 쉽지가 않다.
딴은 그렇다. 그렇긴 하지만 어떤 편가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노라면, 분열과 증오의 허우적거림 속에서 함께 증오하는 것은 장삼이사(張三李四)일지언정 지도자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교사가 따로 없다. 바로 실패한 좌파권력이 말하고 있다. 좌파는 투쟁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었으나 정치에 실패했다. 화합의 마인드가 없기 때문이다. 투쟁과 분열만이 판을 쳤고, 좌파 스스로 분열의 객체로 전락해 버렸다. 분열의 파편에 불과한 권력으로 숱한 분열의 개체들을 통합할 수는 없다.
경제난국, 안보불안, 사사건건의 시위와 파괴적 이기주의, 악머구리 끓는 소요와 무질서, 공동체정신의 실종은 회복, 해소도 안되고 해결, 수습도 안되고 통제, 정돈이 전혀 안되는 일체의 와해로 치닫고 있다. 총체적 실패와 더불어 집권좌파는 사실상 몰락했다.
미움은 미움을 밀어내지 못한다. 미움의 개체들은 서로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더욱 힘을 받아 왕성한 세포분열로 증식을 한다. 미워하는 것은 지도력이 아니다. 정치도 아니다. 그것이 좌파 몰락의 교훈이다.
목하,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고개를 드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새 시대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국민의 몫이다.
소위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에게 향하는 지지와 성원은 지도자로서 역량을 발휘해 달라는 주문이다.
정치는 권력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국민은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를 혐오한다.
국민이 신뢰하는 박근혜의 다른 점은 국가적 대의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순직(純直)함일 것이다. 그는 고도의 정치학습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고, 혼비백산할 충격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 위기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다.
국민이 그에게 보내는 지지와 성원은 이런 것들이 조화된 지도력에 대한 기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것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의 정치를 구현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것이다. 바로 화합이다.
그에 대한 지지와 성원이 그를 국가 지도자로서 최고의 책임을 부여할 때, 그는 그동안 정치적 위치의 한계로 가슴 속에 갈무리해 두어야 했던 꿈과 사랑을 맘껏 펼치게 될 것이며 화합의 정치는 비로소 힘있게 추진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목표하는 국가 선진화를 향한 새로운 진운(進運)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새 시대를 여는 진정한 리더십이며, 박근혜에게 거는 희망이다. (*)
출처:http://kr.blog.yahoo.com/inman032 근혜의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