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전, 재밌는 이야기.
(너무 솔직해서 어쩌면 서글픈 이야기-)
얼마전 7년만에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염치없는거 아는데 부득이하게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됐는데
식장을 채워줄 친구들이 없다고 참석해 달라는 부탁이였다.
솔직히 좀 황당하기도 했지만 점심시간마다 함께 즐겁게
공차던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갈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역시 짐작한대로 7년전 함께 공차던 우리들은 조금은 어른스런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고 동창회 느낌에 가까운 식을 마쳤다.
교복대신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지만 마냥 웃기기만 했다.
선생님들께 맞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서로 체육복 훔쳐
입은 이야기까지 당시에는 참 암울했던 이야기가 7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너무너무 소중한 우리만의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식을 마치고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신부측 친구들과
신랑측 친구들과 함께 뒷풀이를 하게 되었다.
지금부터가 재밌는 이야기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1차는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의 정신없는 수다와, 처음 본
남,여가 서먹하기도 하거니와 얼렁뚱땅 2차를 가게 되었다.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친구덕에
분위기는 점점 단체 미팅과 같은 분위기로 흐르고 있었다.
정말 이게 몇년만에 모르는 여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인지...
부끄러워서 눈도 못마주치고 술을 전혀 못하고 콜라만 연신
마시고 있는 내게 호기심이라도 생겼는지 의도치 않았던
너무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한 여자아이가 내게 질문을 계속했다.
" 오빠 여자친구 있어요? "
" 아니... 좀 됐어..."
" 오빠 왜 없어요? "
" 몰라... 그냥 연애운이 없나봐... "
" 오빠 여자 첨볼때 뭐봐요? "
" 눈썹... "
" 오빠 언제 여자가 예뻐보여요? "
" 나 눈꼽있는데 직접 때어줄때..."
" 그럼 오빠 눈꼽만 띠어주면 되는거네? "
" 어?? 꼭 그런건 아니고... "
" 저 진짜 건방증 심하고 까부는데 어때요? "
" 아니야. 굉장히 귀여운걸. "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많은 미인들 중에 하나 일것 같은
여자가 내게 계속 질문을 하는데 솔직히 싫지만은 않았다.
긴장된 동공막?연신 콜라를 들이키던 나는 화장실에 갔다.
이내 뒤따라 들어오는 친구들-
(고딩때 쉬는 시간 종치면 난 매점으로 뛰었고, 그 친구들은
삐삐의 음성을 확인하러 공중전화 부스로 뛰던 친구들이다.)
거의 협박에 가까운 부탁으로 내게 꼬실 마음 없으면 그만
우리에게 넘기라고 하길래 미소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 나같은 애한테 라이벌의식 느낀거야? 맘대로 해라. "
그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나보고' 뻐꾸기가 작살 '이란
표현을 썼는데 해석하자면 여자를 홀리는 말솜씨가
대단하단 뜻이라고 말해줬다. 내가 그랬단 말인가...?
그렇게 3차까지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이후로 난 말을
아꼈고 친구들의 뻐꾸기를 감상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참 재미없는 뻐꾸기였고,
어느새 어떤 친구는 7년째 여자를 한번도 안 사귀어
본 사람으로 둔갑해 있었다. 와우!!
화장실에서 부탁하던 모습과 간절한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자신에 찬 목소리와 표정들이다.
갑자기 어린 그녀들 중에 가장 언니로 보이는 여자애가
삿대질 하며 내게 소리쳤다.(이제 다들 술기운 돈다-)
" 성근씨! 친구들이 얘한테 대쉬하는데 보고만 있을꺼예요? "
" ........ "
" 으휴!! 저렇게 눈치가 없으니 애인이 없죠!! 이제 몰라요!! "
" 저... 담배 떨어졌네요. 잠시 실례할께요. "
(나이가 먹긴 먹었는지 성근씨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내가 이 타이밍에서 사랑보단 우정을 택하겠다고 말하면
재수 없겠고 그냥 난 그런 호의적인 관심이 참 버겁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진 않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입에 한까치를 물리고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며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난 버스 막차를 타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가방을 가지러
술집으로 들어가니 모두들 4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가보겠다는 말에 왜 벌써 가냐고 잡았지만 난 차마
버스타야 싸다는 말은 부끄러워 하지 못했다.
(지갑에 내 재산은 꼴랑 만오천원이다. 하루에 오천원씩.
담배 한갑, 가벼운 점심식사 삼일을 버틸 수 있는 돈이다.
택시비로 날려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그냥 내일 일이 있어 바쁘다는 핑계로 냅다- 정류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문득 그 아이를 생각했다.(이름도 까먹었다.)
하늘에 맹세코 여자를 생각할 마음따위는 버린지 오래지만
만약에 정말로 그녀에게 반했다고 가정해보자.
내 지갑속의 만오천원으로는 절대로 그녀의 관심을 붙들진
못했을 것이고 어차피 이렇게 뒤돌아 가고 있었을 꺼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막- 서글퍼지는게 아닌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녀를 못잡았다면 아마 울었을꺼다.
(지금까지 살면서 돈없는 남자친구를 끝까지 챙기는 여자는
미친 햄토리밖에 못봤다. 물론 불평도 간간히 했지만...)
굳이 비유를 하자면 백화점에서 옷구경할 때 주머니에
돈이 있는거랑 없는거랑 분명히 기분이 다른거. 바로 그거!!
허나 그거보다 백배,천배정도는 구린 기분일꺼다.
언제나 남자는 가오.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내가
택시비 아끼자고 버스정류장으로 뛰는데 너무 그지같았다.
전에는 지갑에 늘 만원짜리가 섭섭치 않게 차있었다.
나의 당당함을 넘어선 무례한 말솜씨의 원천중에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데 부인하지 않겠다.
또 하나 웃긴건,
TIME.정장과 셔츠에 명품 브랜드 스니커즈까지 갖추고
뛰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이내 뜀박질을 멈추고 걸었다.
(고급 자가용 클러치에나 어울릴 듯한 스니커즈다.
한때 골아픈 일이 있으면 술대신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질러버렸던 참... 주제넘게 내것이 된 것들이다. 어이없게도
합이 백만원도 넘어버린... 쩝-)
' 늦으면 나도 택시 한번 타지 뭐.. 맨날 버스 지겨워! '
이런 어린애같은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결국 운좋게 막차를 탈 수 있었고 버스창에 스치는
가로수를 보면서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게는 성공을 확신해
주는 친구 만형이가 있고, 아무때나 돈없이 찾아가도 학생이
돈이 어디있냐며 담배 한갑씩 들려주는 종철이가 있어서
이틀이 지난 오늘 이렇게 웃으며 자판을 띵기고 있다.
결론은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하자는 계몽적인 에피소드.
(부제: 로또를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