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전상서
그게 언제 였지요?
어머님을 마지막으로 보내 드린게.... 무척이나 추운
날이였지요.
광목으로 만든 옷을 한벌 얻어 입고, 머리에는 짚으로 만든 띠를 얹고,
작은 대나무 지팡이로 얼어붙은 땅에
기대
까까머리 중학생, 어린 제가 무던히도 울었지요.
아버님을 먼저 보내시고 몇년을, 홀로
어린 자식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하시던 기억이 나네요.
아버님 가시고 얼마후.........
장남인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였지요?
장이 서는 전날이면 어머님은 풀빵에 넣을 고물을 만드시느라 팥을 삶으셨고,
전 다쓴 공책이며, 책이며를 찢어서
풀빵봉지를 만들었지요..
밀가루를 쑤어서 만들어 주신 풀로 봉지를 붙이고,
하나 하나 방안에 널어 놓고선, 스스로 대견해
하던 기억이 납니다.
장이 선 날이면 학교를 일찍 파하고, 전 장터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님이 보고 싶어서 라고
하면서...
그치만 혹시 풀빵을 하나 얻어 먹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욱 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먼지나는 시장 언저리에
앉아, 젊으신 어머님이 풀빵을 굽고 계신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잠시 쭈삣거리기도 했지요.
동네가 다 아는 일 이었지만, 그래도
친구들 눈에 띌까봐 그랬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요..
저녁 늦은시간에 만들어 가신 풀빵재료가 다 없어질
때면 고무다라를 포게어 놓으시곤,
꼭 풀빵 한판을 더 만드셨지요.. 물론 그건 저와 동생 몫 이었지만요..
요즘도 가끔 풀빵 닮은
붕어빵을 사 먹어보는데, 그때처럼 그 맛이 나질 않아요.
병으로 누워 계시기전 까지의 4년이란
시간이, 어머니에게는
고통과 회한의 날 이었을거라 미뤄 짐작합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의 모진풍파를 한몸으로 막아선
그때의 모습에 가끔 눈 밑이 젖어듭니다.
며칠전, 앨범을 꺼내 어머니의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았습니다.
몇장 되지
않은 그 사진들을 말입니다.
참 곱고 예쁜 얼굴이셨습니다. 웃는 모습도 참으로 고왔구요..
이젠 제 나이가 그때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건너 뛰어 있습니다.
점점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는 횟수가 느는걸 보니,
이제 저도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어머니 앞에선 늘 아이인걸요..
어머니~~
이번 구정에는 어머님 좋아하시던 팥죽 한그릇 만들어 가지고 가겠습니다.
저도 못 먹어 본지
오래 됐거든요..
살 얼음 둥둥 떠있는 동치미도 한그릇 담아서
오랫만에 어머니 하고 실컷 먹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할미꽃은 어머님이 젤로 좋아하던 꽃이지요?
애 엄마가 전해 드리라고 하네요.
어머님 얼굴도 못 뵙고 시집왔다고
가끔씩.......
죄 스럽다는 얘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