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한 잔 할까? 친구?"
남자의 말에 친구라 불리는 여자는 고개를 45도 비틀었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으며 되묻습니다
"술이 필요한거야, 친구가 필요한거야?"
그 말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둘 다. 왜?
술만 필요하다면 술값만 주고 갈려고?"
여자는 아직 좀 망설이는 눈치.
발끝으로 땅을 톡톡 쳐대며 그럽니다.
"아니, 그 반대야
나도 술은 마시고 싶은데..
니 친구가 되서 니가 하는 똑같은 이야기 또 듣기는 싫거든"
말을 마친 여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며 살짝 덧붙이길
"서운해? 내가 이렇게 말해서?"
그 말에 남자는 고개를 좀 심하게 앞뒤로 끄덕댑니다.
"아니야 뭐.. 이해해... 충분히 이해하지..
이때까지 참아준게 고맙지 뭐
그러면 내가 오늘은 다른 이야기 할테니까
그냥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하면서 같이 술이나 마실까?"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어둠이 내린 포장마차에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앉아있습니다.
초록색 병 하나, 투명한 술잔 둘, 하얀색 플라스틱 접시..
그리고, 두 사람..
두사람이 더 안주를 시킬 기미가 없자
주인아저씨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청하고
이제 포장마차는 참 조용하기도 합니다.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적막함 속에서 서로 술잔만 채워주던 두 사람
여자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술잔을 뱅뱅 돌리다가
몇 번이나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한참만에 이야기를 꺼냅니다
"있잖아, 너 옛날 여자친구 이야기.. . 하고 싶음 해.
어차피 앉아있는거구, 어차피 귓구멍은 열려있는건데..
까짓거 뭐, 말해! 내가 들어줄께.. 좀 지겹지만..."
오랜 망설임 끝에 하는 이야기, 하지만 남자는 그냥 웃고 맙니다
"됐어, 안할래..
술만 마시면 그 얘기하는 것도 버릇인거 같애.이제 그만 해야지
그러지 말고 니 이야기 해 봐
난 그렇다치고 넌... 넌 오늘 왜 술 마시고 싶었는대?
누구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그 말에 여자의 대답.
"나도 버릇이 됐나보지
금요일 밤, 공휴일 전날밤, 비오는 밤, 맨날 너하고 술마시다보니까
이맘때쯤이면 아~ 오늘은 술마시겠구나.. 내 몸도 딱! 아는거 있잖아 왜
에휴, 그니까 니 이야기 해 봐
그 지겨운 얘기 들어주는 것도 버릇이 되서 그런지 안들으니까 허전하네
최근에 또 너한테 문자메세지 보냈어?
홈페이지에 새소식 있었어?"
친구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내가 친구가 되어주면 그대가 좋다하니
나는 어쩔수 없이 오늘밤도 친구가 됩니다
사랑을 말하다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