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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바라를 아십니까~!

류재중 |2006.07.16 10:04
조회 348 |추천 3
체게바라를 아십니까!!! 블로거 기자단 뉴스에 기사로 보낸 글 | 슈피겔의 주저림 2006.07.16 09:47


 

슈피겔http://blog.daum.net/bloomingspiegel/3980515 복사

 



1. 시간은 어느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전사로서 내 미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하지 않겠다"라고 결심한다. (1967)    
2. 수단이 비열하다면 결코 목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농림부 장관 재직시절)    
3.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는, 기층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중의 중에서 택일해댜 한다는 점이다. 자본중의는 인간을 제물로 삼는다. 한편 공산국가는 자율에 관한 한 전체적인 개념 때문에 인간의 권리를 희생시킨다. 우리가 그 어느 것도 일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혁명은 쿠바만의 주체적인 혁명이어야 한다     4. 이 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지다. 나는 우리가 콩고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콩고로 떠나기 전)    
5. 우리 시대가 당면한 분제는, 기층 민중을 헐벗게 만드는 자본주의와 먹고사는문제는 해결할 지 몰라도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중 택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1959년 초)    
6.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인민들의 단 하나의 해결책은 무장투쟁이라고 굳게 믿고 이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모험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저는 단지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온몸으로 표시하기에 주저하지 않는 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험주의자라는 공격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편지 중에서)    
7. 나는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유 의지에 따른 신념의 소산이었다. 나는 68년 혁명을 함께 한 내 또래를 ‘메시아를 기대한 마지막 세대’로 본다.     8. 당신과 우리 민중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에게 바라는 것을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9. 우리는 이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행동이다 (인터뷰 중에서)    
10. 무릎을 꿇느니 서서 죽는 것을 택하겠다. (인터뷰 중에서)    
11. 피델에게는 아메리카에서 영광스러운 혁명 성공의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해주게. 내 아내에게는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전해주게나 (체가 죽기직전에 남긴 말 즉 유언..아내의 재혼까지 이야기하는 그의 용기..) 
(Ernesto Guevara) ?, 1928?7,
Cuban revolutionary and political leader, b. Argentina.
Trained as a physician at the Univ. of Buenos Aires, he took part (1952) in riots against the dictator Juan Per? in Argentina, joined agitators in Bolivia, and worked in a leper colony.
In 1953 he went to Guatemala, joined the leftist regime of Jacobo Arbenz Guzm?, and when Arbenz was overthrown (1954) fled to Mexico, where he met Fidel Castro and other Cuban rebels. Guevara became Castro's chief lieutenant soon after the rebel invasion of Cuba in 1956, in which he proved to be a resourceful guerrilla leader. As president of the national bank after the fall (Jan., 1959) of Fulgencio Batista he was instrumental in cutting Cuba's traditional ties with the United States and in directing the flow of trade to the Communist bloc.
He served (1961?5) as minister of industry. At heart a revolutionary rather than an administrator, he left Cuba in 1965 to foster revolutionary activity in the Congo and other countries.
In 1967, directing an ineffective guerrilla movement in Bolivia, he was wounded, captured, and executed by government troops.
Guevara wrote Guerrilla Warfare (1961),
Man and Socialism in Cuba (1967),
Reminiscences of the Cuban Revolutionary War (1968),
and The African Dream (2001),
a forthright account of the failed Congo rebellion.

출처 : http://education.yahoo.com/reference/encyclopedia/entry/GuevaraC



  1.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 (사진/유해로나마 귀환하는 게바라를 환영하는 쿠바국민들. 영웅없는90년대에 게바라 열풍은 그가 맞서 싸웠던 제국주의 미국과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영웅이 다시 돌아왔다.” 60년대 ‘혁명영웅’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사망 30돌을 맞아 전세계적으로 ‘게바라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게바라 바람은 그가 볼리비아 정부군에 의해 처형된 10월8일(1967년)이 가까워오면서, 혁명의 고향 쿠바를 정점으로 남미를 돌아 이미 유럽·북미 등까지 영향권으로 삼은 상태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제국주의’ 미국에 대항하는 ‘수많은 베트남’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게바라는 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다. 검은 베레 모자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은 당시 유럽과 남미 대학의 기숙사 벽을 어김없이 장식했다.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 지난 59년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성공시킨 뒤 쿠바의 2인자 자리를 박차고 아프리카 콩고와 남미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활동을 계속하다 전장에서 숨진 게바라. 이 열정적 투사에 대해 당시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 세기에서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 또 미래의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도 당시 “최근 가장 충격적인 일이 무엇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게바라의 죽음”이라고 즉각 답했다. 그만큼 게바라는 진보진영의 가슴속에 깊은 영향력을 남겼다. 하지만 이런 그의 영향력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한때 쇠퇴하는 듯했다. 그가 주창한 게릴라전이 남미에서조차 세력을 잃어갔고, 그의 사상적 뿌리인 마르크스주의도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 등으로 빛이 바래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체 게바라를 부르는 소리는 90년대 들어 오히려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웅’을 기리는 목소리는 사망 30돌인 올 들어 빠르게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가 ‘혁명의 고향’으로 삼았던 쿠바에서는 요즘 거리마다 온통‘게바라’다. 이곳에서 게바라는 수도 아바나를 비롯한 곳곳의 대형 포스터나 티셔츠, 심지어 맥주잔 받침이나 우표 등 모든 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또 쿠바의 은 매일 5분간 체 게바라에 대한 연속기록영화를 돌리고 있다. 이 기록영화는 같은 날, 그러나 다른 해의 체 게바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지난 9월25∼27일 체 게바라에 대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리는 등 그의 인생을 재조명하는 각종 학술행사도 잇따르고, 라는 CD-ROM을 비롯해 그의 일기나 논문, 기타 편지글 등의 출판도 활발하다. 그러나 쿠바에서 게바라 열기를 지피는 것은 이런 외형적 행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곳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게바라에 대한 이미지가 쿠바의 게바라 열기를 이끌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듯하다. “게바라는 나에게 성인이었어요. 이 세상에 체 게바라처럼 좋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볼리비아에서 체가 투쟁한 지역의 농민들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와 함께 게바라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들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요. 그는 예수와 같이 가난한 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까요.” 올해 84세인 안드레스 노인은 59년 쿠바혁명 당시의 게바라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고 말한다. 게바라를 직접 대했던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게바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쿠바를 ‘해방’시킨 뒤 국립은행 총재 등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사탕수수밭에서 자발적인 노동을 했던 게바라의 모습은 그를 더욱 또렷이 남겨 놓은 것이다.
사망지 볼리비아는 세계인의 순례지 (사진/지난 7월 쿠바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 1만1천여명 참가자들에게 게바라는 가장 인기가 높았다.) "그는 누구보다 용감한 투사였지요. 그는 볼리비아에서 숨졌지만 어쩌면 콩고에서 이미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에겐 실현해야 할 이상이 있었으니까요." 지난 60년 콩고에서 게바라와 같이 투쟁한 빅토르에 드레케 크루스는 ‘죽음도 불사하던’ 게바라의 모습이 그뒤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게바라를 실제 접했던 이들의 감동은 곧 그대로 젊은층에게도 전해지게 마련이다. 심지어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알베르티코(6)도 “체는 어린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저는 체를 사랑해요”라고 밝혔다.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출발하기 며칠 전에 5명의 자식들에게 쓴 이별편지에 “아버지가 코끼리만한 큰 키스를 보낸다”고 썼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물론 이런 사랑조차 그의 ‘혁명에의 길’을 막지는 못했다. 쿠바가 게바라 바람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이 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게바라 열기를 막기에는 너무 작아 보인다. 이미 게바라 열기는 쿠바라는 울타리를 넘은 지 오래다. 전세계의 게바라 바람은 이미 지난 8월 쿠바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1백31개국에서 모인 1만1천여명의 각국 청년들은 게바라 셔츠를 입고, 검은 베레를 쓴 채 열성적으로 게바라 깃발을 흔들었다. 게바라가 목숨을 잃은 볼리비아에는 최근 매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성지순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게바라 순례자’들은 게바라가 66년 12월 볼리비아에 도착해서 67년 10월 최후를 마칠 때까지의 ‘게바라 루트’를 그대로 뒤따른다. 이들의 순례는 볼리비아의 법적 수도인 수크레에서 시작해 버스로 7시간 거리인 이게라로 향한다. 이게라는 게바라가 처형됐던 곳이다. 또 이들은 발걸음을 처형된 게바라가 ‘전시’됐고, 그의 유해가 발견된 바예그란데로 이어진다. 외신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에서 온 파울 로웰러(46)는 “우리는 대학 교정에서 게바라의 깃발을 흔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평등과 정의를 의미했다”면서 순례자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대학생대륙연맹(OCLAE)도 이 성지순례에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순례단을 두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지난 9월17일에 멕시코 모렐로스시에서 출발하여 중미나라들을 거쳐 볼리비아로 향했다. 또 한 그룹은 10월1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게바라의 고향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를 거쳐 볼리비아로 향했다. 이들은 10월8일 이 게라에서 만나 게바라 추모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들은 지나가는 나라의 청년들을 순례대열에 합류시키는 등 남미 전역에 게바라 바람을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영웅없는 시대가 게바라를 부른다  (사진/게바라가 투쟁했던 지역에서는 게바라를 성인으로 추앙한다.) 이 밖에도 남미에서의 게바라 열기는 매우 뜨겁다.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가 게바라 학술대회를 열고, 니카라과에서는 그간 산디니스타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게바라 동상건립이 10월8일에 맞춰 완성된다. 게바라열기는 그의 활동영역이 아니었던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식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좌파성향의 각종 잡지는 몰론 대표적 시사주간지 에서도 게바라 특집을 다뤘다. 또 각 방송사에서도 게바라를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을 잇따라 방영하고 있다. 유럽의 게바라 바람은 얼마 전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몬주익공원에서 열린 쿠바혁명기념식에서도 나타난다. 공원에 모인 수천명의 사람들은 카스트로와 함께 게바라의 사진을 들고 그를 기렸다. 게바라가 ‘제국주의’로 규정했던 미국에서도 게바라 바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쿠바를 적성국으로 지목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게바라 기념식이 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 캠퍼스에 학생운동 단체들은 집합장소를 ‘체 카페’로 이름붙였다. 게바라에 대한 평가는 쿠바를 ‘독재국가’로 규정하고 있는 쿠바 망명가들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플로리다대학에서 쿠바역사 저술을 하고 있는 미겔 곤살레스는 “게바라가 쿠바 독재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세계의 가난한 사람, 짓밟힌 사람을 위한 상징인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세계는 한 게릴라 전사에 열광하는 것일까. 최근 이라는 전기를 편낸 미국 전기작가 존 앤더슨은 “그가 60년대의 신화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바라 전기를 위해 지난 5년간 전세계를 누빈 그는 또 90년대 들어 게바라 바람이 대중문화 곳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이런 바람의 원인에 대해 “영웅없는 이 시대가 영웅의 요소를 갖춘 그를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유럽에서의 게바라 바람도 이런 60년대적 요소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평이다.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60년대 중반은 유럽에서도 변혁의 시기였다. 당시 나온 온갖 권위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의 외침들은 ‘68년 학생혁명’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 속에서 이런 정신은 많이 시들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유럽의 게바라 바람은 “단지 그의 정치적인 입장에 이끌려서라기보다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 인간상으로서 체 게바라를 받아들였다”는 수많은 회고담 속에서 잘 드러난다.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유럽인들은 가슴속엔 “체 게바라는 살아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게바라 바람에 대한 분석은 쿠바에서도 마찬가지다. 쿠바공화국의 국가이사회 회원인 아르관도 하르드 다발로스는 “체는 아메리카의 역사에서 전례없이 행동과 사상을 통일시킨 특별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게바라 열기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을까. 쿠바의 한 지도급 인사는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단언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체와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60년대라는 시대상과 그 시대를 불꽃같이 살다간 게바라와 같은 인물을 다시 기대할 수 없는 이상 게바라는 앞으로도 ‘이상을 꿈꾸는 인간’의 대표로 남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현재의 게바라 열풍은 그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단지 그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점이 더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게바라의 출생지인 아르헨티나에서조차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체 열풍은 단순 '저항 이미지 탓' 분석도 등 외신들은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가 게바라 티셔츠를 입는 이유에 대해 “단지 그가 외형상 풍기는 ‘저항 이미지’가 좋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그는 60년대 팝스타 지미 핸드릭스나 요절한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딘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 중 어떤 것을 따르든 현재 게바라는 ‘매우 비이상적이고, 냉소적인’ 우리 시대에서 균형추 구실이라는 또하나의 ‘혁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출처 : 김보근 기자 브레멘=최우성 통신원 아바나=호세 아리오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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