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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lemen's humming

권오삼 |2006.07.18 02:45
조회 25 |추천 0

젊은이들에게 고함.

 

좌와 우를 나눔에 있어 근대 유럽의 양차 세계대전 전후로 한

정치학자들 사이의 그 날개의 정의는 평등은 좌 자유는 우였다.

 

 젊은 시절 맑스주의에

탐닉하지 않은 젊은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젊은이가 아니라 하지만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자리싸움의 권모술수를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는 지금 그 외침이 과연 합리적이고 합당한지 아니 그에 앞서

패러독스에 빠져있는건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북분단이라는 지구촌 최대의 숙제를 껴안고 있는

분단 국가이다. 아울러 독재 군부정치의 아픈 과거 또한 갖고있다.

이러한 하나와 또다른 하나를 아우르지 못하고 일방으로 흘러갔던것이 우리의 근대사라 한다면 근간을 세워 민주주의가 기반을 잡고

시장 지배의 거대한 시장을 갖춘 국가의 틀이 자리가 잡혔다면

이제는 그 숙제를 풀어야 할 시기 인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대학생들의 사기충천한 사자후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한심하고 비통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 옛날 운동권들이 민주투쟁이란 큰 모티브를 내걸고 그 기개어린

목숨을 아깝지 않게 목놓아라 외쳤다면...

지금의 우리사회는 좌는 반미 우는 친북을 가리키는 심각한 양극화

에 이르러 레프트윙과 라이트윙의 정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논하고자 함이 없는 그 옛날 은나라 무왕의 시기인가?

어찌하여 편을 가르고 놀것이 미국과 북한밖에 없단 말인가...

사회참여를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라 조금더 각성해야 한다.

 

대학은 이미 갈 방향을 잃었고 청년은 실업과 경쟁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어째서 서점가의 부는 자기경영의 큰 바람이 이사회까지

미치지 않는것인가....

 

내 모자란 목소리가 그대들에게 미치지 않는다 할 지언정

나는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젊은이여 동세대를 같이 사는 동료이자 먼 미래의 세계를

이끌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한마디 하고자 한다면

극단을 이끌기 보다는 화합을 추구하고 가까운 미래의 이익을

쫓아 포퓰리즘에 빠진 목소리보다는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추어 불평과 불만을 잠식 시켜봄이 어떨런지...

폭력으로 치닿는 극단은 오히려 그것을 고조시킬지언정

아무런 발전을 가져오지 않음은 우리는 피뭍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음을 다시금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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