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냉정과 열정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릴 적 내가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한 몸 다-바쳐 통-일.....통일이여 오라” 그렇다 이것은 누구나가 한번쯤은 불러 봤음 직한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누구나 학교를 다니며 이런 노래를 불렀고 남한과 북한과의 통일은 꼭 이루어져야할 하나의 당연한 일이라 배워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반공을 주제로 한 표어나 포스터를 그려가야 했고 특히 포스터를 그릴 때는 북한은 항상 빨간색, 남한은 항상 파란색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그렇게 그리지 않으면 혼나기 일쑤였다. 또 정부차원에서도 북한의 군사적 침략을 대비해 끊임없이 국방비를 증가시켜왔으며, 북한을 하나의 타도의 대상으로 보아 서로가 서로를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였다.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북한은 평화 통일해야 할 대상의 하나인 동시에 무력으로 압도해야 할 대상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0년 6. 15 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기존의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화해와 협력이라는 이름 하에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시행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 시기에 각종 남북한간 친선 스포츠 대회도 개최 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나 남북이산가족들이 상봉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금강산관광도 가능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남 ? 북한간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그 여느 때보다 통일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소원이었던 통일이 한발 짝 더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냉정과 열정
1. 열정
얼마 전 ‘간 큰 가족’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실향민인 아버지를 위해 자식들이 남과 북이 통일 된 것처럼 꾸미다가 결국은 들통 난다는 것이다. 영화 ‘굿바이 레닌’과 비슷한 내용의 이 영화를 보면서 전쟁 통에 처와 자식과 떨어져 홀로 남한에 와서 새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도 낳아 잘 살지만 언제나 가슴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에 대한 애절함을 품고 사는 실향민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국내에는 아직도 수십만의 이산가족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이제나 저제나 북녘 땅을 밟아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이들의 통일에 관한 열정은 구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열정이 있다. 지난여름 ‘광복 60돌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행사의 하나로 남북한 통일 축구대회가 열렸었다. 뉴스에서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축구를 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조국통일이란 구호를 외치며 함께 기뻐하는 경기장의 모습을 중계했다. 비단 이번의 통일 축구대회 뿐만이 아니다. 2003년 대구에서 열린 대구 유니버시아드 경기에서도 북측응원단이 파견되어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와 함께 우리국민과 같이 응원을 하며 통일을 염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6년 아시안게임, 2008년 올림픽에서 남과 북은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에 합의하는 등 남과 북의 통일에의 염원이 특히 스포츠경기에서 잘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2. 냉정
IMF이후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경기침체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단연 ‘먹고사는 일’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조차 최고의 관심사는 학문이 아닌 취직이다. 좋은 직장을 잡은 사람은 곧 능력 있는 사람, 멋있는 사람이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능력 없는 삼류로 전락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당장 자신의 안위와 관계없는 통일에 대한 문제는 당연히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웹 서핑을 즐기고 있던 나는 약간은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대다수가 북한과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우리가 지금보다 못살게 되므로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만약 통일이 되면 잘 먹지도 못하고 가난한 북한주민들을 우리가 다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니냐?”라는 의식을 가지고 북한과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통일반대, 혹은 “통일이 되면 좋긴 하지만 되지 않아도 좋다.”는 통일무관심의 개념들이 우리 청소년의 머릿속을 점차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민족주의 성향은 강해지고 있지만 북한에 대해 그리고 통일에 대한 관심은 왠지 시들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 가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언급했던 말에 대해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과연 우리에게 통일의 열정은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통일에 대한 열정에 관해 냉정히 따져 보려한다.
통일부에 따르면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세대 중 60세 이상이 69만 여명 이라고 한다. 눈앞에서 부모나 형제가 헤어지는 아픔이야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마는 이들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소수에 불과하다. 허나 이들 중 상당부분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대신 그들의 자리는 전쟁과 이산을 경험해 보지 못한 후세들이 점점 차지하고 있다. 과연 이들에게 통일에 관해 이산세대 만큼의 절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가면 갈수록 경쟁을 권하고 경쟁에서 지면 도태 되어버리고 마는, 그래서 하루에 수십 명씩 노숙자가 생겨나는 우리사회에서 통일의 기원 내지 통일에 대한 관심을 바란다는 것이 애시 당초 어려운 일일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구호를 외치고 서로를 응원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통일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생각했을 때 그것은 진정한 열정이 아니다. 나는 진정한 열정과 관심은 지속성을 필요조건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에서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여 제아무리 조국통일을 외쳐본들, 그들은 내일이면 또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냉혹한 현실에 시달려야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조국통일이란 구호는 민족적 스트레스의(동북공정, 독도문제에 관한) 하나의 해소 방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 ? 고등학교는 대학입학의 전초기지로, 대학은 직장의 전초기지로 전락해버린 우리사회의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점점 먹고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하는 중년층들에게 이산의 아픔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통일은 먼 미래의 일이 되어버린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