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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은 공짜였다

이미숙 |2006.07.19 11:28
조회 20 |추천 0


 

캉가루 날씨

 

치즈 케이크와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나의 가난

우리는 그 땅을 '삼각 지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자를 대고 그린 듯한 완전한 삼각형의

땅이었던 것이다 나와 그녀는 그러한 땅위에서 살았다

1973년인가 1974년 무렵의 이야기다

 

'삼각 지대'라고 해도, 이른바 델타 모양을 연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살던 '삼각지대'는 훨씬 가늘고 길어 쐐기 같은 모양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우선 완전한 사이즈의 둥근 치즈 케이크를 떠올려 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칼로 12등분해 주기 바란다

즉 시계의 문자반 같은 모양으로 잘라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끝이 뾰족한 부분의 각도가 30도인 케이크 조각 열두 개가

만들어진다 그중의 하나를 접시에 담아, 홍차라도 마시면서 차분히 바라봐 주기 바란다 이것이 - 이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케이크 조각이 - 우리의 '삼각 지대'의 정확한 모양이다

...........

 

'삼각 지대'의 양 옆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두 개의 철로가 뻗어

있었다 하나는 국철 선로이고, 또 하나는 민영 철도 선로다

그 두 개의 철로는 상당한 거리를 평행하게 뻗어 오다가,

이 쐐기의 뾰족한 끝 부분을 분기점으로 삼아,

마치 갈라지는 것처럼 부자연스런 각도로 꺾이며 북쪽과 남쪽으로 각기 방향을 달리 하고 있다 이것은 꽤 볼만한 광경이다

'삼각 지대'의 뾰족한 끝 부분에서 열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파도를 가르고 해상을 돌진해 가는 구축함의 함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쾌적함이나 거주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삼각 지대'는 정말 지독한 곳이었다

우선 소음이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철로 사이에 꽉 끼여 있는

셈이므로 시끄럽지 않을 턱이 없다

현관 문을 열면 눈 앞에 열차가 달리고 있고,

뒤쪽 창문을 열면 거기도 다른 열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승객과 눈이 마주쳐 인사할 수 있을 정도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지독한 곳이라는 느낌이 든다

...........

아이고 맙소사

우리가 일부러 그러한 장소를 골라서 살게된 것은,

무엇보다도 집세가 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갓 결혼을 하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기네스 북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난했다

.........

이사를 하는 데는, 친구의 라이트 밴 한 대로 충분했다

이부자리와 옷, 식기, 전기 스탠드, 몇 권의 책,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등이 우리의 전재산이었다

라디오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었다 세탁기나 냉장고, 식탁,

가스 스토브, 전화, 물을 끓이는 주전자, 진공 청소기,

토스터 따위도 없었다 우리는 그만큼 가난했다

그래서 이사라고 해도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인생은 아주 간단하다

 

이사하는 걸 거들어 준 친구는, 두 선로 사이에 끼인 우리의

새 거주지를 보고 꽤 놀란 듯했다

그는 이사를 끝낸 다음에 나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마침 특급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말했어?"
"정말로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구나"하고 감탄한 듯이 그는 말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았다

상당히 아구가 안 맞는 집이어서, 사방의 틈새에서 외풍이 들어왔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쾌적했지만, 그 대신 겨울철에는 지옥 같았다

스토브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면 나와 그녀와 고양이는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 말 그대로 서로 껴안고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보면 부엌의 싱크대가 얼어붙어 있곤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은 근사한 계절이었다

봄이 오자, 나와 그녀와 고양이도 한숨 돌렸다

4월에는 철도 직원들의 파업이 며칠 동안 계속 되었다

파업을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하루 종일 단 한 대의 열차도 선로 위를 달리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고양이를 껴안고 양지바른 선로로 내려가 햇볕을

쬐었다 마치 호수 바닥에 앉아 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는 젊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햇볕은 공짜였다

 

나는 지금도 '가난'이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그 삼각형의 기다란 땅을 연상한다

지금 그 집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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