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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궁정의학=일본침탈과 웰빙 자연요법

이원섭 |2006.07.20 13:05
조회 136 |추천 0

금후10년이내 임진.정유왜란때 탈취된 의서,식료서(食療書),자연요법,관계서적들이 일본의 동양의학자들의

손에 의해서 철저하게 재편되어 일본이 대체의학과 자연요법 그리고 자연치유 면역요법에 있어 세계의 종주

국이될 가능성이있습니다. 그러지않아도 왠만한 우리 토종식물들이 일본 식물학자(약용식물)들의 손에 의해

서 많은 부분이 일본식 학명 Japonica으로 개편 개조되고 체계화 되고 있는터에 쌍끝이 어선,복어의 채낙

같은 어업의 세부방법에 대한 중요한 항목이 한일어업협정에서 누락되어 재차 수정을 요청하는 구걸외교의

행태가 우리의 가슴을 암담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고있습니다. 현대 유럽에서 눈뜬 자연요법,대체요법의 꽃

은 이미 5백오십년전 조선조 개국초기 [향약집성방] 85권의 "신선방" [의방유취]365권의 "양생문"그리고

[신생록](정유인편]중종18년 간행속의 선술(仙術)내용 또 [구황촬요]안위 홍윤참저술중종36년출간 [정북창

방]정렴저등 귀중본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일본의 국보로 보관되어 근 8천권이상의 정본의서가 우리나라에도

없는것이 일본으로 약탈 이식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문화전쟁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한 김

문길 교수는 빼앗긴 문화유산을 찾아 일본땅 산간벽지까지 탐검을 했는데 그책 제4장8절에 "포로로 잡혀간

한의사와 빼앗긴 한방서적"이라는 제목하에 실로 몸서리쳐지는 실상을 고발하였습니다. 도요도미히데요시(

풍신수길)의 주치의였던 마나세 마사바야시(마나세가의 주구)가 침략 군사를 조선에 보낼때 학문이 뛰어난

교도경도(京都)의 오산(五山) 승려들을 종군시켜 가치있는 서적을 탈취해 오라는 건의를 했다는것이며 그의

견이 수렴되어 즉각 실천에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도요도미는 교도 오산 승려들을 종군승려로 조선에 보내

귀중한 서적과 한의학과 한의술을 배워오도록 명했습니다. 이들은 도요도미의 명령대로 서적약탈부를 만들

어 종군하였다합니다. 서적약탈부는 <종군문서비서참모부>라 불렀다고 위의 저서 저저 김문길 교수는 적었

습니다. 그러면서 김문길교수는 임진왜란때 약탈해간 기초 한방의술 서적을 본고장인 우리나라보다 수십배

나 더 일본이 엄중한 관리하에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우리한의술(韓醫術)이 일본보다 앞서있지

만 얼마안가서 우리가 일본보다 뒤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개탄했습니다. 이것은 100% 사실에 가까운 염

려이고 필자를 고뇌에 빠뜨리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사까역 뒷켠에 있는 고서점가에 조선조 때의 (급

유방)사본-소아과서적-의 가격이 10년만에 가까웠고 한푼도 깍아줄수 없다는 서점주인의 눈빛으로 보아 보

물취급을하고 있었습니다. 필사본이 그럴때야 원본은 오죽 철저하게 보관관리하고 있을까 상상하기에 어렵

지않습니다. 필자가 찾아본바에 의하며 임진왜란시 조선침략군의 선봉장들인 고니시유끼나가. 가또기요마사

등이 그들의 직업은 무장(武將)이나 그들의 선조 대대로 "약종상"이 본 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한성에

침입한 왜군들은 간판큰한의원에 돌진하여 의서,특수처방집,희귀약품 그리고 한의원을 납치했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한의원을 지키고있던 처자가 소서행장(고니시유끼나가) 군막에 잡혀가 일본에 후송되었는데 그

처자가 일본 유폐생활끝에 카도릭에 입신하여 소서행장의 수양딸로 부처되었으니 유명한 "오다주리아 성녀"

의 납치실상인 것입니다. 일본의 명약으로 유명했던 [금대원]은 가또기요마사가 한성왕궁을 침노할때 명주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방문을 풍신수길에게 압송하여 그것이 후루바야시겐기(1579-1657)에 하사되어 그것을

다시 아사구사계의 절에 봉납하여 후일 일본의 명약이 되었습니다. 오배자가 주제로 아선(阿仙),울금,승마,

편두,우황,사향,유향,몰약,백단,감초등 18미로 방제된것이라합니다. 그밖에 [호두살귀웅황원]이라는 호열자

치료약이 일본에서 인기있었습니다. 웅황 용골 호두골(뱀머리뼈) 무청(순무)등이 주제로 방제 되었다는데 [

향약집성방]에 호두골이 상세히 기럭된바있으며 이처방은 일본 에도시대 고방파(古方派)한방을 대표하는 의

학자 길익동동(吉益東洞)(한국발음 1702-73)의 처방에서 나왔다고 전해옵니다. 전술한 마나세가는 한미한

천민출신인데 영리하여 이주의학(李朱醫學)을 섭렵한후 오다,모리,도요도미등의 무상들의 시의를 지내 마나

세부자의 의가(醫家)를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조선조 의서 약탈의 간접정범의 일원이었을지도모릅니다.이제

동야의학의 종주국인 중국이 유상기공학(唯象氣功學)체계를 세워 의학의 ICBM이라할 첨단과학을 구축하여

제3의학 즉 대체의학의 새로운 지평선을 개창(開創)할 방향으로 역주(力走)하고 있는터에 우리도 독창적이

고서도 방대하고 심원(深遠)한 동의학(東醫學)의 최후 결실을 보아야 되겠습니다. 그것도 남북의의도학도들

이 손을잡고 21세기 대체의학즉 제3의학의 터전을 닦아야 되겠습니다. 서양의 첨단 의공학등을 전공한 외국

유학파 엘리트의학도들이 조선조 궁정의학인 "향약집성방"정신 "의방유치"정신 "동의보감"정신을 재진작한

전혀 독창적인 새로운 제3의 치유계(治癒系)를 정립(定立)해야만 되는 영광스러운 과제를 안고있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선각자 조용식박사가 제3의학의 기치를 들고 동서의학의 화합터인 한

의과대학(韓醫科大學)을 먼저 개교하고 그동안 많은 임상사례와 인재양성의 두가지 터전을 닦아 놓았습니다

. 그노력은 UN과 W.H.O의 인정을 받아 겨레전통의학으로 자리매김을 한것입니다. 조선조말 기울어지는 국

가의 앞날을 고민했던 고종황제가 일본 미국에서 거금인 국채(國債)를 얻어와 신사유람단등 신진 개화와 엘

리트들을 "찰방(擦坊)이라는 벼슬을 일율적으로 내려주어 외국과학문물을 배우게하는 유학이민사업을 적극

추진하였던 것입니다. 고종황제의 이런 비창할정도의 위국충정이 결코 헛되지 않아서 경제 경영학분야, 첨

단과학 의학분야(서재필박사)에 각각 5백명이상의 최고수준의 한민족 엘리트 이민2세 3세박사들이 각분야에

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일본의 미래 학자들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선도(仙道) 도교(道敎)의학이 조선초

정의학(宮廷醫學)의 핵심인데 그런 분야가 바로 21세기 대체의학(제3의학)의 핵심사항입니다. 세계에 자랑

할 옛선도계(仙道系)의가(醫家) 양홍달(楊弘達)3부자- 태조의 시의들- 박윤덕-태종.세종의 내의-노중예(례

)세종의 내의-서하(徐賀)세종의 식의(食醫)-전순의(세종의 내의);[의방유치]편집참여-임원준-문종의 내의-

이길보(李吉甫)세조의 의학교수-권찬(세조의 의학습독관) 허종(許琮)-성종의 내의(내의원제조)-김순몽(중종

의시의)-박세거(중종의 내의)-김안국(중종시대의 대의학자) 정렴(호 북창)-중종,명종의 내의, 양예수(명종

.선조시의 내의) 허준이동의보감을 편집할때 태의로서 참가-허준(선조.광해군의 내의)-동의보감편찬자-그의

내경편은 선도(仙道) 도교의 기의학의 결정(結晶) 류성룡(선조시 임진왜란때의 영의정)-침구학의 대 권위자

홍만선(박물학-농서-의서-산림경제 섭생 식의학자(食醫學者)숙종말,조정준(영조시대의 소아과학자 급유방

편찬,이헌길(영조시대) 마진(麻疹)임상기 정약용(다산) 의학자-마과회통저술-이원풍(정조시대) 마진방의 권

위-이규경(오주형행문 저자)종두변증설 윤초창(초창결-5운6기설 운기론의 대가 어숙권(고사촬요)-명종시대

서명응(영조시대) 박물학자(고사신서 저술) 류중림(영조시대)

증보산림경제 영조시대 내의원 입사 서유구(임원경제지)-산림 경제 박물학의 백과사서 수진(修眞) 복식(복

식)등 선식(仙食)의 대학자 구황본초저술-보양지등 이경화(정조시대)[광제비급]편찬자 강명길(정조시대)[제

중신편] 8권5책 내의원 수의(首醫) 수양총서유집(광해군시대)-상.하2권 이창정저술-양생요법 조선조 세조와

정조는 왕의 위치에서 동의학 발전과 동의학도 양성에 발벗고 나선 의군(醫君)들이어서 세조의 의학습독관

제도 정조의 홍제전서 의학관계등 저술) 정조는 맥결약성에 정통했습니다. [수민묘전(4권)]직접저술 선조시

대이후에 나온책들 특히 산림경제 임원(경제)16지 고사촬요 정조시대 의서들은 일제강점하에[의학사(醫學史

)]연구를 핑계로한 식민지 의료문화 수탈이라는 목표하에 총독정치하의 미끼사까에(三木榮)등이 거의 전부

일본으로 정본(正本)들이 반출되었습니다. 사상의학의 개조라할 이재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은 궁정의학

의 갈래에서벗어 났지만 체질의학의 지남서(指南書)입니다. 순조 철종 고종때의 혜암 황도연과 그의 아들

황필수는 서울 무교동 일대의 개업의였습니다. 의학도 정통하여 해산된 내의원 의사들에게서전문된궁중납약

(내국납약)에 대해서 [의종손익) [방약합편] [의방활투] [신약성가]등 저서에 내비쳤고한의학(韓醫學)임상

가는 물론 동의학사(東醫學史) 사학도 그리고 궁정의학을 간접으로 찰지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도 남습니

다. 사실을 말한다면 그후 석곡 이규준(영남의 임상의학자겸 자연철학자(의철학)의<부양론> <기혈론><신유

양장변> 그리고 [의방촬요]고종황제 어명으로 지음과 고종조의 태의원전의 최규헌(호몽암)의 [소아의방

(小兒醫方)]저서와 그속의 소아망진법의 하나인 "찰색법" 그리고 "해백약백물독(解百藥百物毒)"은 원본을

접하지 못해논급할수없으나 일견 중요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전술한 미끼사까에는 지석영

선생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극찬을 하였는데 그가 고종황제의 서각인 [집옥재(集玉齋)]를 출입하면서

미끼사까에의 식민지 문화(의학문화)의 일본반출 의도에 많이 놀아난 냄새가 나서 지석영선생의 유업에흠이

될까 두렵습니다.혜암 황도연과 석곡 이규준과 같은 대동의 의학자이후 금석 이재화-우두관계 [제영신편]

저술을 끝으로 8.15이후 오늘날까지 북한의 김봉한학설을 능가할 국내 국외에서 뚜렷한 동의학자의 맥이

끊어진 안타까운 상태입니다.

그동안 북한에서의 방대한 동의학 고전(한문본)의 한글번역사업은 대한민국의 많은 동의의학도들에게

참고와 자극제가 되었을것입니다. 그간 기인(奇人) 또는 괴인(怪人)으로 취급되면서 무면허 의인(醫人)

활동을한 김일훈선생의 죽염등 민간의학의 연구, 보급은 공기속의 광선, 핵비소등의 지론과 함께 금후대체

의학 연구에 이정표를 부여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별자리와 인간의 길흉화복 특히 질병과의 관계, 환경오염

시대의 독풀이법등 김일훈 선생의 지론은 금후 한국적 대체의학 정립에 힌트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외세에 빼앗긴 우리의 의학, 건강문화를 쾌복하고 빼앗긴 우리의 의학 건강문화를 쾌복하고 재정립

하여 중국의 신기공학(유상기공학)에 뒤지지 않을 대체의학의 터닝포인트가 국내 동의학도들에 의해서 서양

의학의 기득권밖에서나마 마련되어야 하는것은 겨레의 지상명령 일까합니다. 세종임금의 집현전 석학들과

의학유의(儒醫)자들의 땀의 결정인 [향약집성방]편집정신과 [의방유취]편찬정신이 이시대에 강한 멧세지로

고막을 뚫어야 됩니다. 일본은 우리의 옛 차문화(茶文化) 차의학을 재편성 시켜 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 구

마꾸라씨를 필두로 대규모 세계녹차페스티벌을 오짜페스티벌의 형태로 전 역량을 기울여 준비중입니다. 중

국도 닉슨대통령께 선보였던 용정차를 수출효자로 지목하고 보알차 철관음차 덩어리치 가루차 오룡차등 다

양한 차문화를 수출 제일선에 올려놓고 맹추진중입니다. 조선조 6조중 이조의 별청 내시부 직제에 왕의 차

를 관장했던 상다(尙茶)직책이 있었습니다. 약술과 약차의 비중을 가장크게 두었던 선도(仙道) 선술(仙術

)의 계맥이었습니다. 상온이라는 종3품벼슬 상다(尙茶)라는 종3품벼슬이라는 고위직 품계가 차문화의

비중을 웅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시즈오까대학의 스기야마 교수와 시즈오까현립대학의 나까무라교수등이

일본농림수산성의 적극 외곽단체인 생연기구(생물계 특정산업기술연구 추진기구)를 핵심으로 녹차잎의

수용성고분자(TNDs)의 발암억제와 노화방지작용을 프로젝트 사업으로 연구개발 중 입니다. 녹차야말로 대

체의학의 꽃 입니다. 필ㅈ자의스승 이재우 내관께서는 약방의 감초는 그대로 감초(甘草)이고 병의원의 감초

(필수약)는 녹차였으며 왕실(중국,한국)의최고 엽약(葉藥)이 동백나무과의 녹차잎새라고 고려의뇌원차, 대

차,각차를 설명한 대목에서 구전해 주었습니다. 즉 녹차는 감초이전의 귀중한 "해독 불로(不老)본초"인 것

입니다. 세계최고의 뇌원차(고려.조선조초)를 일시대에 청자굽기의 기술복원과 같은 수준으로 복원재생

시켜야됩니다. 나무문화(숯과 목초액) 쌀문화(쌀기름 쌀겨 볏집) 녹차문화(다이어트 항암 노화방지)는[왕

실양명술]이라는 필자가 물려받은 궁정의학중의 [비록]속의 핵심사항입니다.잃었던 숯문화 쌀문화 볏집문

화(토양재건-제철야금술) 녹차문화의 복원작업은 반듯이 이루어져야만 고선도(古仙道)의 건강문화의 축

(軸)이 바로잡힐것입니다.

*선도양명(仙道養命)의 비록은 [동의보감]에서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2006.7.20
joins.com/블로거,sungfi,이원섭(Lee won 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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