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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힘있는자가 쓰는가.

김민주 |2006.07.20 14:11
조회 58 |추천 0

 

 

 

이틀전 주문해 27일 오늘 오후 6시쯤 도 착한 이책을 띄엄띄엄 읽어

대다가 6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기를 마쳤다.

 

The rape of nanking- [Iris chang]

 

이 책을 이틀전 읽고싶다고 생각하게된 이유는

1997년 출간된 첫해에 6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라는 책 아래의 설명과 함께

여러 책들에 조금씩 그러나 적지 않은 무게감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 '난징 강간, 그 진실의 기록' 이라는 부제를 무시할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러한 사건이 있었고, 얼마의 희생자가 생겼다는 추측만으로 안다고 생각했던 내가 알던 난징 대학살의 현장은 이 책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내게 다가왔다.

 

이 책은 철저한 자료조사와 증언자들의 인터뷰, 자료사진 등을 통해 1937년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과 만행의 참상을 생생히 되살려,

영어로 쓰여진 난징대학살에 대한 훌륭한 첫 번째 보고서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어디서 부터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가야할까?-

 

1937년 11월 상하이 침공을 성공적으로 끝낸 일본인들은 중화민국의 새로운 수도에 '난징' 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했다.

1937년 12월13일 이 도시가 함락되자 일본군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잔학한 행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명의 젊은 남성들이 짐승처럼 도시 외곽으로 끌려나가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총검 훈련의 대상이 되었으며- 휘발유세례를 받은후 산채로 불에 태워졌다.

 

'몇달' 동안 거리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시체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전문가들은 20 에서 30만 이상의 난징시민이 살해된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의 수만 보더라도 난징의 대학살 사건은 지금껏 저질러진 다른 끔찍한 만행을 압도한다.

 

로마인이 카르타고에서 저지른 만행(15만명 살해), 스페인의 종교재판, 1398년 델리에서 10만명의 포로를 살해하고 1400~1년 시리아에서 사람들의 두개골로 탑을 쌓은 티므르 랭의 만행보다도 끔찍하다.

 

히틀러는 6백만명의 유태인을 살해하고 스탈린은 4천만명 이상의 러시아 인을 죽였지만, 이것은 몇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었다.

 

하지만 난징 대학살 사건은 단 몇주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책을 읽는 내내 나로 하여금 경악한 감정을 갖게했고 번번히 책을 읽다 다시 덮고 생각하게 만들고 또 나로하여금 다시 책을 펴게 만들었다.

 

난징의 대학살은 사망자 수뿐 아니라 이들이 죽음을 맞이한 참혹한 방식 때문에 라도 기억되어야 한다. 중국인 남성들은 총검술의 연습 대상으로 일본군의 목베기 시합의 대상으로 희생 되었다.

또한 2~8만 명에 이르는 중국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

일본 군인들은 이 여성들을 강간 했을 뿐 아니라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들어내거나 가슴을 도려내고, 산채고 벽에 못을 박기도 했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딸을, 아들은 어머니를 강간 하도록 강요 받았다.

 

산채로 매장하고, 신체 장기를 도려내고 산채로......

 

더 있다. 더 많이 있다-  구역질이 치밀만큼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했는가에 관한 증거와 기록은 이책의 도처에 널려있다.

 

10년전 이 책을 출간하기 전 이 사건은 미국에서 출판된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무시당했다고 한다. 제 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미국 저작물 가운데 어디에서도 난징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일본에 대한 원자탄 투하나 유럽에서 벌어졌던 유대인 학살과는 달리, 간혹 있는 역사서에서의 두어줄 이 외에는 찾아볼수 없었다고 한다.

 

이 대학살의 진상이 밝혀지길 꺼려진채 남아있는 이유란,

난징의 사건은 홀로코스트나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처럼 전세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희생자들 스스로가 침묵하고있었기 때문이었다.

 

중화인민주의 민주공화국,중화민국,미국에서 조차도 냉전식 사고로 인해 이 사건을 애써 외면해왔다.

 

1949년중국의 공산혁명 이후.

중국과 대만은 이스라엘이 독일에 대해 그랬던것처럼

일본에 전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 두 정부는(중국과 대만) 일본으로 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고

교역의 물꼬를 트기위해 서로 경쟁했기때문이다.

또한 소련과 중국 본토에 뿌리내린 공산주의에

위협을 느끼던 미국도 적이었던 일본과 우호와

신뢰의 관계를 맺으려 했다.

 

이런 팽팽한 냉전 상황에서

일본은 다른 패전국이 강요받았던 심도 깊은 조사를 피할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수있는지.

이 책을 읽는동안 뼈저리게 느끼고 몸서리 쳤다.

 

몇만명이나 되는 중국군들이 최소한의 용기만을 가지고서라도 총을 어깨에 매고 죽을각오로 싸웠더라면 일본 군인들이

그들은 그렇게 짐승취급하여 죽이지는 않았을것이다.

목숨을걸고 일본장교셋에게 달려든7개월의 임산부 만큼의

용기만이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다면 일본군인들이 중국 민간인들조차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범하지 않았을것이다.

장제스의 마지막 퇴각 명령이 없었더라면.

탕생치가 최후의 전력도 그자리에서 목숨을 다해 싸우라-

라고 했다면 난징 대학살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후 가슴에 울렁이는 비통함은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도 잔인할수가 있는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대풀이 한다, 라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처럼 나는 현재를 사는 한명의 인간으로써

기억하고 마음깊이 새겨 절대 잊지않겠다.

 

인류사에 다시는 없어야할 이 데모사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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