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토오루가 휴대전화를 갖고 싶단 말을 꺼냈을 때,
시후미는 콧전등을 찌푸렸다.
"그만 둬. 어쩐지 사람 가벼워 보여서 싫어."
그런 말을 했다. 자신은 갖고 있으면서.
시후미의 휴대전화에는 명주실로 짠 스트랩이 달려 있다.
밤공기처럼 차가운 블루 색상의 스트랩.
"직접 만들었어요?"
언젠가 토오루가 묻자, 시후미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 애가 만들어 줬다고 했다.
가게, 다이칸야마에 있는 그곳은 좀 희한한 가게여서, 가구며 옷이며
식기까지 갖추어 놓았다. 이른바 셀렉트숍이란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때만 해도, 개 목걸이와 사료 그릇까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더구나 가격이 무척 비싸다.
시후미의 가게에 있는 물건은 모두 그렇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시후미는 무엇이든 갖고 있다.
돈, 자기 소유의 가게, 그리고 남편.
4시 15분. 전화벨은 아직 울리지 않는다.
토오루는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지못해 마신다. 인스턴트 커피를
토오루는 좋아한다. 걸러먹는 커피보다 취향에 맞는 것 같다.
옅은 향기가 기분 좋다. 타는 것도 간단하고.
간단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5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이윽고 전화가 걸려왔다.
" 늦어서, 미안."
작은 목소리로 시후미가 말했다.
" 나올 수 있어?"
전화 목소리는 늘 미덥지 못하다.
" 네."
토오루가 짧게 대답하자,
" 잘 됐네."
라고, 진심으로 기쁜듯이 말한다. 그리고,
" 그럼, 플라니에서."
라는 말에 이어, 늘 그렇듯 싱겁게 전화를 끊고, 토오루는 수화기를
든 채 어정쩡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오전 수업을 착실히 받고, 코우지는 매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벤치에앉아
5분 만에 해치웠다. 날씨 좋은 한낮. 코우지는 좀처럼 학교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우둔한 녀석들 곁에 가까이 가면, 우둔함이 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다.
오늘은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라서, 오후에는 수업 하나만 듣고 유리를
만난다. 유리와 헤어진 후엔 토오루를 만나기로 했다.
랩과 종이컵을 휴지통에 버리고, 코우지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리는 사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 네, 카와노입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답지않게, 키미코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응답한다.
" 아, 여보세요?"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 코우지?"
들뜬 기색으로 키미코는 말하고,
" 우와, 날씨 좋다."
라고 덧붙였다.
" 어디야?"
" 학교."
키미코의 매끈하고 모양 좋은 다리를 떠올리면서 코우지가 말했다.
" 점심 먹은 참이에요. 잠깐 목소리 듣고 싶어서."
담배를 피우고, 눈부신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파란 하늘에 연기를 내뿜는다.
" 나 좋으라고 하는 소리지?"
의도적으로 한 박자 공백을 두었다.
" 너무하네. 진심으로 한 말인데."
나직하고, 어딘지 모르게 거친 자신의 목소리를 코우지는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 밤에는 전화도 못하고."
마음 상했다는 듯이 계속했다.
" 좀처럼 만나주지도 않고."
도서관 앞길을 하시모토가 걸어온다.
코우지는 인사대신 한 손을 들어 올렸다.
" 들어 봐."
키미코는 급히 소리를 낸다.
" 나도 만나고 싶어.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코우지 생각만 하고 있어."
코우지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운동화 바닥으로 비벼 껐다.
" 문득?"
이미 하시모토는 눈앞에 서 있다.
" 나는 늘 생각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짧은 침묵.
수화기 너머 키미코가 동요하고 있는 기색이 느껴진다.
당장 달려다 와락 끌어안았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한다.
" 미안."
코우지는 사과했다.
" 또 전화해도 돼요?"
11월인데도 날이 따뜻하다.
양달 아래 스웨터를 입고 있자니 은근히 땀이 밴다.
" 또 전화해 줄래? 라고 물으려던 참이야, 지금."
코우지가 웃자, 키미코도 키득키득 웃었다.
" 또 전화할게요."
코우지는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밝고 똑부러지는 키미코의 웃음소리가 귀에 남았다.
" 나는 늘 생각해요."
하시모토가 작은 소리로 흉내를 냈다.
" 정말 정성이다,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