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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의 맥주 생산국 독일

서경화 |2006.07.22 00:10
조회 401 |추천 0

 

유럽최고의 맥주 생산국 [독일편 1 ]



맥주의 나라, 독일. 그 이름에 걸맞게 독일의 맥주산업 규모는 유럽 최고이다. 생산량과 소비량뿐만 아니라 직접고용인구와 간접고용인구에서도 유럽 1위이다. 양조장 수는 1279개(2000년 현재)로 97년 미국에 의해 추월 당하기까지 세계 1위였다. 하지만 수출은 생산량의 9.8%로 유럽연합 평균인 13.9%에도 못 미친다.

 

와인으로 유명한 이웃의 프랑스가 12.6%인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 수입 역시 전체 소비량의 3.1%에 불과하다. 이번 편에서는 독일 맥주문화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독일의 맥주문화: 문화적 다양성의 보고


독일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 10초안에 답하라고 하면 아마 대부분 히틀러를 말할 것이다. 나찌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독일을 강하게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독일인하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관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대중매체를 통해 재생산되는 독일의 과거 역시 그런 이미지를 증폭시킨다.

하지만 불행한 과거가 만들어내는 왜곡된 이미지와는 달리 독일이 인간의 이성과 사회 공동의 선을 중시하는 건전한 사회란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각 지방마다 고유한 전통과 정체성이 살아 숨쉬는, 문화적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이다. 독일의 맥주문화는 이러한 독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마을 한쪽에 자리잡은 작은 양조장과 거기에 딸린 작은 술집은 독일인들이 일상적으로 맥주를 만들고 마시는 곳일 뿐만 아니라 독일 맥주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원천이자 상징이다. 1200여 개에 달하는 이런 양조장들에서 독일 맥주의 자랑이자 세계 맥주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옥 같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는데, 약 12개 가량의 고전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다시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진다. 양조장마다 고유한 원료와 제조방법 그리고 하우스 이스트(House yeast)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형(Variations)까지 고려하면 맛의 스펙트럼은 보다 넓고 깊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각 지역에 있는 크고 작은 맥주 축제는 독일의 맥주산업과 문화의 성숙을 그리고 맥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남부의 맥주산업: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독일의 양조장들은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때때로 란트브라우에라이(Landbrauerei)로 불리는 마을양조장으로 양조장에 선술집이 딸린 형태로 운영된다. 여기에 레스토랑과 숙박시설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는 마이크로양조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마을양조장을 중심으로 맥주의 생산과 소비는 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끝나는 폐쇄적인 구조를 띤다. 이들 마을양조장들이 지역 맥주 더 나아가 독일 맥주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함은 말할 나위 없다. 특히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양조장에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는데, 이는 지역 맥주가 가장 최상이라는 믿음과 함께 가장 신선하다는 평가에 근거한다.

남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마을양조장들은 바바리아에만 약 670여 개, 그 가운데 230여 개가 가장 양조를 많이 하는 프랑코니아 지방에 몰려 있다. 소규모의 양조장들이 만드는 남부의 풍경과 달리 함부르크와 브레멘 그리고 좀더 서쪽의 도르트문트, 뒤셀도르프, 쾰른을 포함하는 독일 북부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북부의 맥주산업: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다



북부에는 남부보다 수는 훨씬 적지만 ‘큰’ 양조장들이 많다. 생산량은 남부의 거의 2배에 가깝다. 독일의 주요 양조 그룹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부는 14세기경 한자동맹 이래 상업적 양조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데, 이런 까닭에 상업적인 경쟁과 기업가적 정신에 익숙하다.

 

오늘날 독일 내에서도 맥주의 고장으로 불리는 바바리아가 17세기 초 30년전쟁 이전만 해도 주로 포도주를 생산하던 것을 생각하면 뒤바뀐 위상이 재미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거대 양조그룹이 맥주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실정과는 달리 독일에서 이들 양조그룹들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국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획득하는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그룹조차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지 못하고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인 바스타이너 브랜드 역시 5% 미만을 점유할 따름이다. 기업가와 마케팅 전문가가 만든 맥주보다 양조쟁이가 만든 지역 맥주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소비자 심리를 파고들지 못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종교적 원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북부가 일찍이 프로테스탄티즘을 수용한 반면 남부는 카톨릭을 고수했기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거기에 산업적 자연적 조건을 함께 언급하기도 한다.

 

북부가 도시의 발달과 함께 해상무역 및 공업을 통해 외부와 접해왔다면 남부는 내륙의 고립된 환경에서 농업 중심의 산업을 영위했기 때문에 보다 완고한 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남부, 특히 바바리아는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꼽히는데, 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바바리아의 나머지 지역과도 다른 자신만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프랑코니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프랑코니아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작은 양조장들을 볼 수 있는 곳인 것은 이들의 보수성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유럽최고의 맥주생산국 [독일편ll]

오랜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독일엔 다양한 맥주가 있다. 보통 맥주의 종류를 맥주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지역마다 고유한 맥주 스타일이 있다. 독일이 맥주의 나라로 불리는 것은, 규모와 같은 외형적 요인 외에도 이렇듯 다양한 맥주 스타일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해도 맥주 스타일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독일 맥주 하면 라거(Lager)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콜라를 가리키듯이 라거는 맥주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라거는 특정 맥주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제조에 하면발효 이스트를 사용한 맥주를 통칭하는 말이다. 보통 상면발효 이스트로 만든 에일(Ale)과 함께 맥주를 크게 분류할 때 사용된다. 맥주양조의 역사에서 보면 야생이스트에 의존하는 자연발효, 에일에 이어 세 번째 방법인 셈이다.

 


라거의 탄생, 필연과 우연의 변증법



라거의 탄생은 당시의 기술적 한계와 독일, 특히 뮌헨 지역의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냉장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이라 3-4월에 담근 맥주는 그 해의 마지막 맥주였다. 여름, 정확히 말해 4월 중순부터 9월 말경까지 맥주를 만들 수 없었던 만큼(법적으로도 맥주 제조는 금지되었다.) 3-4월 맥주의 변질 또는 부패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알프스 산지에 구멍을 파서 동굴을 만들고 거기에 강이나 호수에서 가져온 얼음을 가득 채워 맥주저장고로 사용한 것이다. 이때 동굴 안에서 맥주를 관찰하던 수도사들은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다. 맥주가 천천히 발효되고 이스트가 통의 바닥에 가라 앉는 것이다.

이스트가 가라 앉는 것이 하면발효 이스트의 특징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유럽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라거 양조의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던 건 수도사들이었다. 뮌헨이라는 이름도 ‘수도사들이 있는 곳’을 뜻하는 묀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우구스티너, 파울라너, 프란지스카너 등의 뮌헨 양조장들 역시 수도사들이 세운 것이었다.

 


다크 라거, 라거혁명의 방아쇠

하지만 라거가 독일 맥주 및 맥주 일반을 대표하는 말로 자리잡은 것은 19세기경이었다. 이 시기에 라거 양조는 수공업적 방식에서 대량생산 방식으로 발전했고 독일의 양조 산업을 근대적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는 마치 영국의 포터 양조가 영국의 양조산업을 수공업에서 산업으로 발전시킨 견인차 구실을 했던 것과 유사하다.

상업화된 최초의 라거는 뮌헨에서 탄생한다. 슈파텐 양조장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 2세가 만든 다크 라거(Dark lager)였다. 나무를 뗀 불로 건조시킨 브라운 몰트를 사용해서 반투명의 갈색을 띠는 다크 라거는 1834년 나온 이래 1950년대까지 뮌헨과 바바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인기가 높았다.

다크 라거의 성공은 연이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라거의 출현을 자극했다. 일종의 방아쇠 효과인 셈이다. 첫 번째 호응은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왔다. 가브리엘과 함께 양조기술을 배우기 위해 6년간 함께 유럽여행을 함께 하기도 한 비인의 안톤 드레허는 비엔나 스타일로 알려진 호박 빛깔의 갈색 라거를 개발했다.

 

요즘 간혹 볼 수 있는 레드 비어 의 조상 뻘에 속한다. 그가 개발한 비엔나 스타일은 다시 뮌헨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 결과로 오늘날 메르쩬 스타일이 있게 되었다.

두 번째 호응은 멀리 체코로부터 왔다. 일찍이 다크 라거를 만든 경험이 있는 바바리아 출신의 요제프 그롤은 체코 필젠에서 필스너 스타일을 만들었다. 그는 영국에서 가져온 코크스 건조기를 사용해서 브라운 몰트 대신 페일 몰트로 라거를 만들었다.

 

결과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당시에는 보기 힘든, 맑고 투명한 황금색 맥주였다. 필스너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매일 맥주를 가득 실은 기차는 유럽 전역으로 출발했다.

다크 라거의 방아쇠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칼스베르크(흔히 칼스버스)에서 성공한 순수 효모의 분리도 다크 라거를 만드는데 사용한 효모를 이용한 것이었다.

 

칼 야콥센이 뮌헨에서 덴마크까지 효모를 가져갈 때 더위에 효모가 변형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마차가 정지하는 곳마다 효모를 담은 통을 물로 식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칼텐베르크 쾨니히 루드비히 둔켈


현재 다크 라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루드비히 둔켈은 쇠퇴하는 다크 라거를 부활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라거, 맥주의 대명사


짙은 갈색의 다크 라거를 시작으로 호박색의 비엔나 스타일로, 다시 보헤미아의 투명한 황금색 필스너로 발전하면서 근대 라거는 유럽 맥주 산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 영국 우위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은 맥주 산업 역시 가장 발달한 선진국이었고 당시 독일과 같은 후발 주자들에겐 모방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아울러 에일 중심의 맥주 제조를 라거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라거가 영국 인근을 제외한 전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이때 이후로 맥주의 역사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다크 라거에서 비엔나 맥주, 필스너로 발전하는 과정을 라거혁명이라고 표현하고 뮌헨-비인-필젠을 혁명의 삼각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다크 라거는 독일에서 퇴색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영국의 마일드 에일과 브라운 에일과 마찬가지로 195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밤베르크, 바이로이드, 쿨름바흐, 누렘부르크와 같은 바바리아 북부 프랑코니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할 따름이다. 그리고 현재 생산되는 다크 라거조차 색과 풍미에서 옛날보다 많이 희석된 느낌이 있다.

 

저도주를 선호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다크 라거의 짙은 색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다크 라거가 갖고 있는 블루 칼라 이미지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유럽최고의 맥주 생산국 [독일편 lll]

맥주는 보리와 물과 호프 그리고 이스트로 만든다.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맥주가 이렇게 정형화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도 맥주의 고장으로 손꼽히는 남부 독일의 경우 중세기에 유행했던 맥주들은 오늘날의 맥주와는 많이 달랐다.

그 당시의 맥주 원재료 가운데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는 물밖에 없다.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된 곡식을 들여다보면 요즘 많이 쓰이는 보리뿐만 아니라 밀, 호밀, 귀리, 기장, 완두도 쓰였는데, 한마디로 몰트로 만들 수 있거나 당으로 전환될 수 있는 곡식은 다 쓰였다고 할 수 있다.

 

8-9세기 이후 호프가 알려졌지만 호프 역할을 했던 원재료 역시 다양한데, 캐러웨이, 노간주 나무, 고갱이 그리고 심지어는 검댕, 석회가루, 삶은 계란 등이 쓰였다. 이러한 ‘비정상적’ 원재료를 사용한 맥주는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약간 당돌한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맥주를 왜 보리, 물, 호프로만 만들어야 할까? 혹은 왜 그래야 한다고 말했을까? 언제 그리고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일까?

 


형편없는 남부 맥주, 뛰어난 북부 맥주

12세기경 독일에선 귀족들(특히, 남부 독일)이 수도원과 수녀원으로부터 맥주 양조를 넘겨 받는다. 영주들은 자신의 양조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더러는 개인 양조장에게 거액의 대가를 받고 라이센스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세속화의 결과는 누가 보아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도원으로부터 양조특권은 가져올 수 있어도 양조 전문 지식과 기술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부 독일은 이야기가 약간 다르게 전개되었다. 귀족 중심의 남부 독일과는 달리 북부 독일에선 상업적 양조업자들이 교회의 양조 독점에 대항했는데, 이들은 기업가적 정신을 갖고 있는 진짜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양조 전문 기술을 빨리 습득했고 결국 질적으로 수도원 맥주를 앞지르는데 성공한다. 14세기 한자 동맹이래 맥주가 북부의 주요 수출품목이었던 것은 이러한 성공을 말해준다.


맥주품질 규제의 등장

품질이 안 좋으면 잘 팔리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맥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일이 12세기경 남부 독일에서 벌어졌다. 맥주의 질이 떨어지면서 맥주소비량도 떨어진 것이다.

 

당시 남부 독일의 맥주들이 ‘비정상적’인 원재료를 사용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이다. 당시 맥주 양조를 보물창고처럼 여기던 귀족들이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이에 따라 맥주의 품질을 규제하는 명령이나 법령이 남부 독일의 주요 도시(1156년 아우구스부르크, 1293년 뉘른베르크, 레겐스부르크, 뮌헨)에서 발표되기 시작한다.

 


규제의 완성, 맥주순수령

1447년 뮌헨 시의회는 모든 양조업자들이 단지 보리, 호프, 물만을 사용하도록 명령문을 공표한다. 이는 바바리아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되는데, 반세기 후 바바리아의 맥주순수령(1516)의 기초가 된다.

 

맥주의 품질을 규제한다는 일반적인 목적 외에 맥주순수령에는 당시 바바리아 왕실이 그 지방의 보리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경제적 이해도 깔려 있다. 법령이 제정되던 당시 바바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밀맥주의 유통과 생산을 통제하고자 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세기에 걸쳐 맥주순수령은 독일 전역으로, 모든 종류의 맥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었다. 1906년에는 카이저가 지배하는 모든 영토에 공식적인 법으로 공표되었는데, 이때 이스트가 기본 구성요소로 추가되고 알트, 쾰슈, 바이젠과 같은 상면발효맥주에 몰트로 만든 밀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형성과 함께 맥주순수령은 독일 맥주 세법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부분적으로 당시 자유주였던 바바리아가 맥주순수령이 독일 전역에서 시행되지 않으면 공화국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맥주순수령은 독일연방정부 세법의 일부로, 독일은 물론 스위스, 그리스, 노르웨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슈나이더 밀맥주(Schneider Weisse)


바바리아 왕실은 1516년 맥주순수령에 이어
1567년 밀맥주 제조 금지령을 내림으로써 밀맥주 생산을
통제했다. 하지만 1602년 밀맥주 양조권을 취득한 이래
1872년 뮌헨의 양조업자 게오르그 슈나이더에게 양조권을
양도하기까지 270년간 밀맥주 생산을 독점했다.

맥주순수령 VS 자유무역

맥주순수령에 대한 외부의 시각은 어떠할까? 1987년 유럽연합 법정은 원재료의 선택을 제한하는 맥주순수령은 자유무역을 규제한다고 판결했다. 독일인들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이웃국가들의 시선은 맥주순수령이 담고 있는 제한을 용납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판결 이후, 쌀과 같은 다른 곡식으로 만들거나 화학적으로 처리된 맥주들이 독일로 수입되는 것이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독일 양조업자들은 여전히 맥주순수령에 맹렬히 집착한다. 그들에게는 맥주순수령은 자긍심이자 전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독일 맥주의 라벨과 광고는 여전히 자랑스럽게 지방 맥주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많은 독일 사람들은 ‘순수한’ 맥주가 아니면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맥주들에 대해서는 ‘화학주’라며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호밀과 에머밀, 삼과 같은 옛 곡식들을 이용한 맥주 역시 재발견되고 있다. 독일에선 제품이 맥주순수령 이외의 원료로 만들어진 경우 단순히 브랜드 이름으로 식별되고 라벨에 ‘맥주’로 표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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