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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VS 토고 하이라이트

김선태 |2006.07.22 00:19
조회 76 |추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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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축구 형식에 가까운 공놀이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부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오래 전부터 소의 방광이나 가축의 태에 바람을 넣거나, 털을 넣어 찼던 축국(蹴鞠)이라는 것이 있었으나 일종의 놀이 형태였다.

한국에서 현대 축구가 선을 보인 것은 1882년 6월 무렵 영국 군함 플라잉후이스호의 승무원과 군인들이 인천에 상륙하여 공을 차고 놀았다고 하며, 그들이 돌아갈 때 볼을 주고 간 것이 볼차기의 계기가 되었다. 한편 궁중어전통역관(宮中御前通譯官)들은 거의 관립 외국어학교 출신으로서 외국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축구를 다소나마 알고 있었다.

그들은 1896년 한국 최초로 대한축구구락부라는 팀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의 근대적인 축구팀의 효시였다. 그리고 1906년 3월 궁내부 예식원 주사인 현양운(玄暘運) 등 30여 명이 대한체육구락부를 조직하여 일정한 경기규칙 없이 경기를 했으나, 1922년 7월 중국 상하이[上海] 거주 동포의 축구단이 내한하여 처음으로 정기 경기규칙을 적용시켜 현대 축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1921년 2월 공식 축구경기로서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되었고, 전국적인 첫 축구조직체는 1928년 5월 20일 발족한 조선축구심판협회였다. 이 협회는 비록 심판 분야에만 국한된 조직이었으나, 경기운영까지 관장하여 축구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뒤 1933년 9월 19일 조선축구협회가 조직되어 축구를 보급하고 발전시켰다.

1945년 11월 26일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고 1948년 2월 FIFA(Fé dé ration Internationale Football Association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하였으며, 조선축구협회는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대한축구협회)로 개칭되었다. 같은해 7월 런던(London)에서 개최되었던 제14회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세계무대에 진출하였다. 1954년에는 AFC(Asia Football Council:아시아축구연맹)에 가입하였고, 그해 5월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 처음으로 본선에 출전하여 예선전에서 탈락하였으나 한국 축구의 큰 발돋움이었다.

1956년 9월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및 1959년 4월 제1회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으며, 1960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2연패를 이루었다. 그해 10월 서울 효창운동장의 축구장이 건립되어 축구의 발전을 크게 북돋았다. 4년 뒤인 1964년 10월 제18회 도쿄[東京]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했고, 1969년 제2회 킹스컵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 축구의 끈기를 보여주었다.

1971년 5월 제1회 대통령배쟁탈 아시아축구대회, 1972년 9월 한·일정기축구경기도 창설되었다. 활발한 움직임으로 1976년 8월에는 제5회 세계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1983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는 4강에 진출하였다.

한편 1986년·1990년·1994년에는 월드컵 축구 본선에 아시아지역 대표로 3회 연속 출전하였고, 이어 1996년에는 FIFA 집행위원회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의 2002년 월드컵 축구 공동개최를 결정하였다. 1990년 6월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축구대회, 1992년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했지만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다.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 일본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출전하였다.

1980년 12월 한국 최초의 프로팀 할렐루야가 창단되었으며, 1983년 5월 프로축구가 슈퍼리그라는 명칭으로 등장하였다. 2000년 현재 코리안리그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천마, 전북 현대 모터스, 안양 LG 치타스, 울산 현대 호랑이,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천 SK, 부산 아이콘스, 대전 시티즌의 10개 구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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