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우하로구나, 라고 아빠는 말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손님이 오거나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엄마와 쇼핑을 하러 갈 때처럼, 아이들이 신나 하는 일이 겹치거나 계속되면 놀리듯, 야 이거 우하우하로구나, 라고.
니이무라 씨는, 나직하게 웃었다.
"우하우하라, 좋은 말인데."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는 해묵은 여관의 한 방에 있다. 유카다에 누비옷을 걸친 모습으로, 편안하게. 방안은 어둡다. 히나 인형 세트에 달려 있는 초롱 같은 모양의 전기 스탠드가 하나 베개 맡에 켜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무서웠어?"
니이무라 씨는 옆방에 있다. 하지만 장지문이 활짝 열려 있어, 내가 앉아 있는 이부자리에서 두 걸음 정도면 닿는 위치다. 니이무라 씨는 그 위치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적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천천히
"말."
나는 대답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무서워한 것, 을 얘기하고 있다.
"우하우하란 말이, 웬지, 무서웠어."
상식을 벗어난 말처럼 들렸다. 아빠가 그말을 하고나면 목소리는 사라져도 강박적인 명랑함과 쓸쓸함이 공중에 떠다녔던 것처럼.
"나도 좀 마실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부자리에 납죽 앉은 채 한 손을 뻗는다.
"좋지."
라고 말하고 니이무라 씨는 내게 잔을 건넨다. 엎드린 채로 손을 뻗어. 나는 가볍게 입맞춤하고 잔을 받는다.
조금 전에, 우리는 서로의 몸을 안았다. 행위를 하고서 금방 술을 마시면 난 늘 취해 버린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조심스레 마신다. 아마도 니이무라 씨와의 정사가 너무 달콤한 탓이리라.
나는 텅 비고 만다. 그래서, 눈 앞에 있는 것을 허겁지겁 흡수헤 버린다.
"성에 차지 않아서."
니이무라 씨가 말한다.
"응?"
나는 되묻는다. 포도주는 니이무라 씨가 좋아하는 고급스런 것이지만 내 혀에는 늘 그런 것처럼 곰팡내나는 뒷맛이 남는다.
"성에 차지 않아서란 말이 무서웠어, 난. 그냥 막연하게지만."
나는 잠시 그 말의 뜻을 생각하고, 솔직하다는 느낌에 미소지었다.
"성 자가 붙는 단어는 대충 다 좋아하지 않았지."
니이무라 씨가 계속 말한다.
"성악이니, 근성이니."
"그렇네, 알것 같아."
막 미소를 지었는데, 나는 내 두 눈에서 줄줄 흘러 넘치는 눈물을 느낀다. 당황해서, 닦아낸다.
오늘은 참 슬픈 날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서둘러 웃었다.
"옛날에 살던 집 옆에."
밝게 말해 보았지만, 목소리는 한껏 젖어 있다.
"칠칠치 못한 여자가 살았었어."
칠칠치 못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30대 중반쯤이었을까.
단독주택에서 혼자 애완견 두마리와 함께 살았다. 어떤 사업가의 정부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속치마 바람으로 지내는 것 같았다. 롤을 감은 머리에 망을 덮어씌우고 있는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대문앞을 쓰는 일도 있었다.
동네 여자들은 물론 우리 엄마도 그녀를 싫어했다. 칠칠치 못한 여자라고 수근댔다. 나는 그게 무서웠는데, 그게 험담인지 속치마 바람의 여자인지 우리 엄마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제대로 구별이 안갔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다. 창문은 다 꼭꼭 닫았는데, 마치 귓전에서 속삭이듯 쏴아쏴아 하고 가느다란 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내가 앉아 있는 이부자리는, 그소리에 젖은듯 점차 눅눅해진다.
"무서운 게 많았네."
내 이야기를 잠자코 다 들은 니이무라 씨가 말했다.
그랬다. 나이가 한 자리수였을 때 이미 사람은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령 친부모라도, 내가 다닌 다른 사람의 마음속은 깊은 어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
또 눈물이 흘러, 나는 포도주잔을 니이무라 씨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입맞춤하지 않았다. 슬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니이무라 씨는 한손으로 받아든 잔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다다미 위에 내려놓으면서,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끌어당겨 억지로 입을 맞추었다. 뒷머리를 바친 손바닥. 다음 순간 그의 손이 턱을 살짝 잡고 두 손가락으로 볼을 누르면서 입을 연다. 미끄덩 혀가 들어온다. 강렬한 혀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혀와는 전혀 다른 모양인 것같다. 따스하고 보송보송한 손바닥이 어느 틈엔가 내 가슴을 천천히 감싸고, 움켜쥐고 밀어올리고. 처음에는 한쪽만, 그러다 양쪽 다. 나는 이미 누비옷을 입고 있지 않은 듯 하다.
허리띠도 풀려 있다. 니이무라 씨는 천수관음 같다.
우리는 어제 이곳에 왔다. 도쿄에서 떠날 때는 눈이 부시도록 화창해서 하늘까지 우리의 앞길 - 여행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 을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열차는 비어 있고, 우리는 네자리를 차지하고 마주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껍질채 매콤달콤하게 구운 새우와 쫀득쫀득하게 조린 삼치. 그런 도시락을 사먹는다는 자체가 우리가 행복하다는 증거였다.
여관 사람들은 한눈에 우리를 불륜커플이라 여겼으리라. 직원이 징믈 들고 방을 안내해줄때, 나는 분명하게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독신인 연인 사이다. 오랫동안 기다린 니이무라씨의 이혼이 겨우겨우 성립된 참이었으니까.
정말이지 우리는 오래 기다렸다. 처음 만났을때. 나는 스물셋, 니이무라씨는 서른여섯이었다. 그리고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리, 같이 살수 있는거야?"
니이무라 씨의 이혼이 성립되고서 백번도 더 물은 것을, 나는 또 뭇는다.
"그럼"
니이무라씨가 대답한다.
"이제 뭐든 할수 있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듣는데도 믿겨지지 않았다. 믿겨지지 않아도, 또 듣고 싶었다.
우하우하로구나.
아빠가 봤으면, 아마도 그렇게 말했으리라. 미치루 우하우하로구나.
그리고, 지금 물론 그렇다. 그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기쁘고 기뻐서, 갑자기 인생이 무서워졌다. 눈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눈을 껴 집어넣어, 선반 위에서 그 눈으로 세상을 보게되는 먼지투성이 달마상처럼.
우리는 해질녘의 온천가를 산책했다. 나는 아무튼 기쁘고 기뻐서, 뜻도 없이 뛰었다가 돌아와서 니이무라 씨의 손을 잡고, 그러다 쑥쓰러워 그손을 놓고, 그랬다.
물이 많지 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에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에서 옅은 물색 하늘이 모였다. 정기 휴일인지 안쪽에 거튼이 쳐져 있는 자전거 가게의 유리문도, 바람이 살살 우리는 어루만졌다.
"미치루."
이름을 불러 돌아보면 또 입맞춤이다.
여관으로 돌아와 대욕탕으로 갔다. 이전에는 남탕과 여탕으로 나뉘어있는 것조차 싫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사지 의자가 있는 곳에서 만나, 같이 방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섹스를 하고, 이번에는 방에 달려 있는 조그만 노천탕에 둘이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밤 속에서 거뭇거뭇하게 보였따. 니이무라 씨는 뒤에서 나를 꼭 껴안은 자세로 물에 몸을 담갔다.
부력과 중력 사이에서, 피부와 피부가 후후 웃는 것 같았다.
"꿈만 같다"
안락의자 같은 니이무라 씨의 몸에 기대어 땀이 송송 돋은 얼굴로 나는 말했다.
"정말, 현실 같지 않아"
그런데도 나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외로움은 서늘한 밤 기운이 되어 나를 감싸고, 한없이 퍼져나갔다. 현실 속에서.
니이무라 씨가 먼저 나갔다. 금방 나갈게, 라고 말하고 나는 노천탕에 잠시 더 남았따. 혼자서, 어째서인가, 니이무라 씨를 잃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벌써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심장이 얼어붙을 듯한 공포였다.
눈앞에 키 낮은 나무들의 화단이 있었다. 화단도 온천물처럼 거뭇거뭇하게 보였다. 콘크리트로 다진 땅도 거뭇거뭇하게 젖어 있었다.
머리 위로는 달도 별도 없고 구름 모양만 희미하게 알아볼수 있는 밤하늘이 거뭇거뭇 싸늘하게 펼쳐져 있었다.
언젠가 아내와 헤어지면, 이라고 니이무라 씨는 몇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에야 안다.
조금도, 믿기가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러고 무턱대고 믿는다 여겼었는데.
"로우."
나는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불렀따. 내 귀에도 맥없고 불안하게 들리는 목소리.
로우는 5년 정도, 그냥저냥 사귄 남자 친구다. 니이무라 씨가 싫증나면 언제든지 나한테로 와, 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그런일은 있을 수 없기에, 로우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절대 그런일은 없을 테니깐, 라고 단언했다. 너는 나의 제동장치에 지나지 않으니까,라고
나는 니이무라 씨를 무척 좋아한다. 니이무라 씨가 아닌 남자는 남자라 여겨지지 않는다. 니이무라 씨만이 내 생명이고 인생이고 사랑이고 모든 것이다. 이것만은 신에게 맹세할 수 있다. 언제든. 가슴에 손을 얹고
더 많이 니이무라 씨를 좋아하지 않게, 나는 늘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별 상관은 없지만, 제동장치는 로우만이 아니었다.
물밀 듯 불안이 밀려와, 나는 도망치듯, 탕에서 나왔다.
방안은 반짝반짝 빍았따. 텔레비전에는 낮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니이무라 씨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잠깐이라도 로우를 만나고 싶어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우리, 잘 안될거야."
퍼뜩 정신을 차라니, 나는 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는 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가 좋았어. 당신 결국은 나를 싫어하게 될거야. 내게는 이미 제동장치가 없으니깐."
니이무라씨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내게도 제동장치는 없어."
니이무라 씨는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 내 잔에 맥주를 따라 주었다.
"그런 게 아니고"
나는 아마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혼란스러워 평정을 잃고 그리고 겁에 질려 있었다.
"당신이 유부남인 게 제동장치였다는 뜻이 아니야."
나는 로우와의 관계를 대충 얘기했다.
"5년이나 사귀었어. 다음주에도 만나기로 했고. 당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런 다음 더 이상은 안만날 테지만, 하지만, 아까 로우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니이무라 씨의 굳은 표정은 채 1분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물론,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니이무라 씨는 놀라고, 상처를 받았다.
"어쩔 수 없지"
무언가를 결정적으로 잃은 것은 그 순간이었다. 니이무라 씨가 허탈한 듯 미소짓고는, 어쩔 수 없지, 라고 말한 순간.
"우리 정말 오랫동안 불안정한 상태에서 만났으니깐, 미치루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슬펐다. 로우 얘기는 하지 말걸,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니이무라 씨는 내가 좋아하는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용서받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하는데?"
그래서 물었다.
"우리 정말 징그럽도록 서로를 사랑하잖아?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사랑하고, 막을 수 없어서 이렇게 된거잖아?"
나는 울고 있었지만, 니이무라 씨는 여전히 허탈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리 와 봐"
니이무라 씨는 나를 껴안아 무릎에 앉혔다.
"우린 정말 징그럽도록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 눈에 보이는게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하지만 당신에게 로우란 존재가 있어. 내게도 그런 여자가 있었던 것처럼, 물론 아내 말고. 괜찮으니깐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니이무라씨의 팔을 뿌리치고,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내 말고?"
얼빠진 목소리였다.
"아내 말고"
니이무라 씨는 고개를 움츠리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거짓말이지?"
"거짓말 아냐. 하지만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서는, 당신 아닌 여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어. 그리고 물론 당신에게 제일 먼저 알렸고. 다른 여자에게는 아직 알리지도 않았어"
말이 안나왔다. 제일 먼저 당신에게 알렸다고? 나는, 잘못들은 것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미치루?"
뭔가가 크게 잘못돼 있따. 하지만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니이무라 씨는 이혼이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내게 제일 먼저 알려주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둘이서 이혼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따.
"이제 다 끝났어."
진지한 표정으로 니이무라 씨가 말했다.
"앞으로는 내내 같이 있을 거니까."
그래도 그 말에 나는 행복했다. 내 뜻과는 달리.
"너무하다."
나는 말했다. 니이무라 씨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뿌리째 뒤집히고 말았따.
우리는 정말이지 오래오래 기다렸다. 허구를 믿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오래오래 기다렸다. 나는 니이무라 씨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내게는 니이무라 씨가 전부라고, 니이무라 씨는 그렇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무섭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 자신을 또 달마상 같다고 생각했다. 두눈은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 선반위에 있으니깐. 그런 생각을 하자 우스웠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따. 어차피, 우리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눈을 뜨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곁에 있는 니이무라 씨가 이제 홀몸이라고 생각하자 또 기뻤지만, 동시에 나는 모든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들이.
아침을 먹고 택시를 불러 근처에 있는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 까페에서 점심을 먹고, 또 택시를 타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어제 건넜던 다리에서, 축축하게 젖은 자전거 가게가 보였다. 더이상은 꿈 같지 않았따. 슬픔만이 남았다.
그 후에는 어제와 같았다. 대욕탕에 갔고, 저녁을 먹고, 섹스를 했다. 어제보다 말은 적게, 하지만 어제보다 더 격렬하게,니이무라 씨는 적포도주의 마개를 따고, 나는 어렸을 적 무서웠했던 것을 얘기했다.
비는 그치지 않고, 포도주에서는 곰팡내 맛이 났다.
니이마루씨는 천수관음이 되었고, 나는 온몸을 뒤로 젖혔다.
니이무라 씨를 좋아한다고,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따.
지금 다른 일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잠든 니이무라 씨의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또 운다. 곁에 있는 니이무라 씨는 이미 내가 아는 니이무라 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두번다시 그를 만날수 없으리라.
칠칠치 못한 여자, 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우하하로구나, 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알몸으로 잠든 니이무라 씨의 손을 잡고 입맞춤한다. 그리고 누운채 살며시 손가락을 마주 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