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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면 다 되더라” 브로커 공화국[서초동에선 무슨일이??]

김영종 |2006.07.22 21:55
조회 59 |추천 0

양대 산맥처럼 치솟은 법원 청사와 검찰청 사 사이로 펼쳐진 서울 서초동 빌딩숲. 높고 낮은 빌딩에 변호사 사무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사람들은 이 곳을 ‘서초동 법조타운’이라고 부른다.

법조타운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 있다. 화려 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오피스 빌딩 지하마다 자리잡은 1970년대 풍 다방. 안으로 들어서면 칸막이로 나누어진 좌석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직업을 짐작하기 어려운 차림새, 탁자 위에 놓인 서류봉투, 낮은 목소리, 주위를 둘러보며 재빨리 뭔가를 주고받는 행동. 법조 브로커와 사건 의뢰인들의 밀담 현장이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들만 모여 있다는 법조타운 지하의 음습한 풍경은 ‘로비 공화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어두운 단면이다.

◆변하지 않는 서초동 = “구속시켜버리겠다고 하고서 돈을 받고, 구속시킨 후 무마해주겠다고 하고서 돈을 받고, 구속시켜주겠 다며 돈을 받고, 구속을 풀어준다며 돈을 받았다.” 1970, 1980 년대 법조계를 주름잡았다는 한 퇴역 브로커의 고백이다.

“변호사 인맥을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수사검사나 재판하는 판사와 친한 변호사에게 접근해 의뢰인의 사건을 수임하게 해주고, 요구대로 되면 30%를 나눠받았다.”

이같이 말한 전직 브로커는 “요즘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고 했다.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구속된 후 ‘전국구 브로커’란 별명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윤상림 게이트. “내가 아는 판·검사들은 돈과 술에 맛들어 있었다”는 말로 전국민을 우울하게 만든 김홍수 게이트. 사법시험 1000명 시대니 법률시장 개방이니 하는 변화의 물결에도 서초동의 시계는 멎어 있다.

윤상림씨는 정·관계는 물론 군·경찰·법조계 고위 인사 1000여명과 친분을 과시하며 정부청사와 검찰청사를 제집 드나들 듯했 다. 김홍수씨는 차관급인 현직 고법 부장판사 등 10여명의 판· 검사와 경찰 고위간부를 검찰의 칼 끝에 올려놓았다.

검찰 관계자는 “김홍수씨가 청탁한 사건의 90%가 청탁한 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말로 평범한 소시민들을 충격 속에 빠뜨렸다.

◆시대는 변해도 브로커는 영원하다 = 미군정 브로커, 군 브로커, 정치깡패, 무기 브로커, 경매 브로커, 재개발 브로커, 정치 브로커, 법조 브로커. 브로커의 활동 영역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다만 시대와 정권의 특성에 따라 무게중심이 달라질 뿐이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브로커 이름 석자 뒤에 ‘게이트’가 따 라붙으면서 제대로 된 브로커가 등장한 것은 김대중 정부때부터 ”라고 분석했다. 정현준·진승현·최규선·이용호 등 이른바 4 대 게이트가 터져나온 것이 이 때였다. 정권의 갑작스러운 교체 로 인해 집권세력과 연결루트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권력층과 가깝다고 주장하는 브로커들이 판을 치면서 여러 무리 의 브로커들이 활동무대를 넓혔다. 이전까지만 해도 집권세력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던 만큼, 브로커라기보다 권력 주변의 기 생세력이라고 할 만했으나, 김대중 정부시절 이후에는 브로커가 그야말로 새로운 창구역할을 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도 암암리에 브로커들의 활동은 계속됐고, 최근 터져나온 윤상림·김재록·김홍수게이트 등은 이 사회 에 깊게 뿌리박힌 브로커 문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왜 ‘브로커’인가 = 전문가들은 브로커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도·압축 성장으로 인해 원칙과 절차보다는 꼼수나 혈연·지연·학연 등 인맥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정보와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곳일수록 브로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된다. 법조계가 대표적이다.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사람들이나 소송을 진행중인 사람들은 검찰 조사실 안에서, 법원 판사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정보가 차단되니 불안해지고

, 목마른 사람이 우물찾듯 브로커를 찾게 된다”고 말했다.

한성대 이성우 교수는 “광고와 정보가 제한된 법률 시장이나 의료 시장에 유난히 브로커가 많다. 과도한 규제로 정보 접근이 왜곡돼 브로커들이 자라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분명히 투명해진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도 여전히 브로커가 활개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권력이 분산되면서 권력층이 불투명해져 나타나는 반작용”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권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스가 분명하면 권력 주변에 하이에나처럼 모이는 사람들이 있 을지언정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활개칠 수는 없다. 막연한 불특정 다수가 사회 권력층을 형성하게 되면 목표가 사라지고 오히려 브로커가 더욱 힘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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