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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 현각스님대담

최진영 |2006.07.26 11:25
조회 93 |추천 0

 

파리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왼쪽) 자택에서 이루어진 현각 스님과 베르베르의 대담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선문답이 오갔다. -파리=박제균특파원

 

“물질세계의 미래는 어둡다. 어둠을 밝힐 영성(靈性)이 필요하다. 어쩌면 미래에 물질과 영성이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을 벌일지 모른다. 당신은 미래를 어떻게 보나.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베르나르 베르베르)

 

“시작을 모르는데 끝(미래)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당신과 내가 얘기하는 지금이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며, 바로 지금이 희망이다.”(현각 스님)

22일 오후 프랑스 파리 15구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42) 자택 거실. 한국 선(禪)불교 포교차 프랑스를 방문한 현각 스님(40)이 베르베르와 만났다.

 

한국에도 많은 독자가 있는 베르베르는 정신세계와 동양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의 대표작 ‘개미’를 상징하는 커다란 조형물 아래서 이루어진 대담에서는 정신세계의 ‘고수’들답게 선문답이 오갔다.

▽베르베르=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관용을 담고 있다. 세계를 한 가지 방법으로 보지 않고,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보는 것이 관용 아닌가. 아인슈타인 자신도 ‘종교는 영(靈)과 물질의 세계를 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불교가 그런 종교라고 생각하지만, 불교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현각=당신과 내가 이렇게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베르베르=그런 방법으로 중국으로부터 박해받는 티베트인들을 구할 수 있나?

▽현각=티베트인들이 자신들을 박해하는 사람에 대한 미움에 집착하지 않고 그들에게 동정(同情·Compassion)을 느낀다면 어떨까?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동정이야말로 육신의 박해를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다.

▽베르베르=나는 조화(Harmony)를 중시한다. 인류 역사는 수백만년에 지나지 않지만 1억년 전에 지구에 나타난 개미는 우리에게 조화를 가르쳐 준다. 붉은개미를 관찰하면 일을 능률적으로 하는 그룹과 비능률적으로 하는 그룹, 아예 놀고먹는 그룹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조화롭게 산다. 인간은 개미 같은 지구상의 다른 ‘이웃’(생명체)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현각=당신은 컴퓨터로 사유하는 스님이다.

베르베르는 미국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하버드대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미국인 엘리트가 기독교를 떠나 한국 불교에 귀의한 배경을 궁금해 했다. 현각 스님은 “나는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비행기에 앉아 있는 것처럼 나는 움직이지 않는데 (사실은) 움직이고 있다”고 답했다. 19일부터 프랑스 대학생 대상 강연과 TV 출연 등을 해 온 현각 스님은 26일 영국으로 건너가 포교할 예정이다.

▽베르베르=두려워하는 게 뭔가?

▽현각=미국 공화당이다(웃음). 두려움은 습관이다. 두려움이 마음을 지나가게 하면 남는 것(두려움)이 없다. 누군가 달라이 라마에게 물었다. ‘티베트를 걱정하느냐’고.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티베트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 걱정에 빠지지는 않는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베르베르-현각스님 파리대담

 

‘벽안의 구도자’ 현각(40) 스님과 소설 ‘개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왼쪽·43)가 만났다. 선수끼리는 서로를 금방 알아본다는 말이 꼭 맞았다.22일 저녁 프랑스 파리의 테아트르가 31번지에 있는 베르베르의 아파트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약 2시간여 동안 인생과 종교,그리고 과학과 물질문명에 대해 격의없이,그러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며 어느새 ‘도반’이 됐다.




|파리 함혜리특파원|

베르베르는 “평소 느끼고는 있었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현재’의 개념과 그 중요성을 스님이 일깨워 주었다.”고 말했고 현각 스님은 그에게 “당신도 아마 전생에 승려였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영어·프랑스어 통역이 자리를 함께 했지만 보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이들은 줄곧 영어로 대화했다.

이들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베르베르의 아파트를 나와 근처의 한국식당으로 걸어 가는 동안에는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식당에 마주 앉아서는 음식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로 화제가 옮겨지기도 했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파리의 서쪽 하늘에 붉게 물들었던 노을은 점차 어둠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뉴스 들을 때면 최후의 순간 맞는 느낌

베르베르

현실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하지만 매일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걱정스럽기만 합니다.마치 인류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양심이 없는 과학은 이렇듯 인류에게 위험을 가져오고 있습니다.물질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새로운 영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스님’(베르베르는 ‘스님’이라는 발음을 한국어로 하려고 노력했다.)께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각

나는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희망은 없다.”는 것입니다.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모든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코로 냄새를 맡고 있는 지금에서 출발합니다.현재에 충실하면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는 것입니다.미래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베르베르

내 작업은 주로 미래에 대해 얘기합니다.글을 쓰기 위해 뇌를 움직이는 동안은 지금 이 순간이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의식도,양심도 없는 물질문명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시작과 끝은 같은 것… ‘현재’에 충실해야

현각

예수님께 누군가 물었지요.“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예수님께서는 “그럼 당신은 시작은 어땠는지 이해하고 있나요?”라고 되물으셨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시작과 끝은 같은 것입니다.과거,현재,미래는 결국 ‘현재’라는 시간의 다른 모습입니다.따라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르베르

현재는 그럼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현각

(대답 대신 손바닥으로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베르베르

알기 쉽게 설명을 해 주세요.

현각

(다시 탁자를 손으로 탁 친 뒤)과거,현재,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르베르

그렇다면 수백년 전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현재의 우리가 바라보며 감명을 받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현각

좋은 지적이에요.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현재를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바로 그것입니다.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면서 완벽하게 ‘현재’에 충실했기 때문에 우리가 감명을 받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스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제 조금 알 듯합니다.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할 때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고 글 속에 빠져 듭니다.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지요.명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현각

그게 바로 명상입니다.당신은 컴퓨터로 일하는 승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는 그냥 보통 승려이고요.

베르베르

스님은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각

신부이거나,승려이거나 그런 영적인 일을 했을 것입니다.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요.나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였고 지금은 머리깎고 승려가 됐지만 내 자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르베르

가톨릭 신자였던 당신이 불교를 접하고,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 한국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현각

어려움도 물론 있었지요.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나의 스승이신 숭산 스님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그런 질문을 누구도 하지 않았거든요.결국 그 ‘엄청난’ 질문은 나를 한국으로 이끌었고 내 종교생활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베르베르

바보 같은 질문을 한가지 하고 싶습니다.불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이 아닌지요?

현각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이렇게 있습니다.불교에서는 세상에 있되 집착을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 나가는 것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베르베르

무저항과 비폭력,명상으로 어떻게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을지요.

현각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 이것이 바로 평화입니다.창 밖의 새 소리를 듣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베르베르

티베트의 많은 승려들은 중국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결국 종교가 그들을 죽인 셈인데….

현각

그들은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이 생에서 몸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질(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참 나(眞我)’에 있는 것입니다.

●관조하는 자세가 바로 불교

베르베르

스님께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현각

순간적으로 위험이 닥쳤을 때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신적인 두려움은 없습니다.어떠한 두려움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어 있거든요.아무것도 없어요.멀리서 보면 구름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그냥 물방울인 것과 같습니다.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달라이 라마도 두려움이나 욕망을 느낀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인식하지 않을 뿐이지요.

베르베르

감정을 다스리시나요?

현각

아니요.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얘기합니다.고통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나도 명상을 처음 할 때 가부좌를 하느라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그런데 그 고통도 ‘아프다.’는 사고(思考)에 의해 생긴 것이거든요.(펜을 집어들면서)이 펜을 이렇게 보면 길게 보이지만 돌려서 보면 둥근 점이잖아요.마찬가지입니다.다르게 보면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그러나 고통은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Pain is not pain,but pain is pain).관조하는 자세,이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lotus@seoul.co.kr

■현각이 유럽으로 간 까닭은…

현각(玄覺) 스님은 한국관광공사 파리지사 초청으로 한국 불교를 알리기 위해 프랑스를 방문 중이다.

지난 19일 프랑스의 명문 상경계 그랑제콜인 에섹(ESSEC·고등경영대학원)에서 ‘선(禪)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데 이어 21일에는 프랑스 공영방송인 2TV에서 ‘부처의 음성’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2TV측은 ‘한국 선 불교의 전통’과 ‘현각 스님의 인생 행로’를 주제로 15분짜리 방송프로그램 2회 분량을 제작해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로 프랑스 전역에 방영할 예정이다.

현각 스님은 베르베르와의 만남을 끝으로 프랑스 일정을 마치고 30일까지 영국에 머물면서 공영방송 BBC에 출연하고 옥스퍼드대학 등에서 강연한다.

현각 스님은 1964년 미국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하버드대학원 재학 중인 1990년 5월 숭산(崇山) 대선사의 설법에 크게 감명받고 2년 뒤 출가,선 불교의 전통이 가장 잘 이어지고 있는 한국으로 건너왔다.그는 현재 화계사의 국제선원 원장을 맡아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 베르베르,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961년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태어났다.

7살에 첫 소설 ‘벼룩의 모험’을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한 그는 만화와 시나리오,소설과 과학에 탐닉하면서 고교시절인 1978년에는 고등학생을 위한 만화신문 ‘유포리(Euphorie)’를 창간하기도 했다.

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국립언론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그는 83년부터 90년까지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과학담당 기자로도 활동했다.

12살 때부터 개미의 생태를 관찰했다는 그는 200여차례의 개작을 거친 끝에 1991년 소설 ‘개미’를 발표,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과학적 근거와 관찰을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경이롭고 환상적인 필치로 펼쳐나가는 그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개미’ 외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1993년),‘타나토노트’(1994년),‘여행의 책’(1997년),‘천사들의 제국’(2000년),‘뇌’(2001년),‘나무’(2002년) 등을 발표했으며 올 가을 ‘신들의 왕국’ 탈고를 앞두고 있다.

 

 

 

난 솔직희 저들의 대화를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현각 스님의 말들 속의 깊은 뜻이 모두 와닿지도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불교라는 종교에 매력을 느낀다.

어렸을 때부터 접해왔던 친근감이 있어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 현각 스님이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에

처음 약간의 거부감이 일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교회에 대한 약간의 (솔직히 많은)거부감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전 믿음이라는 신앙이라는 것을 갖기위해

교회를 가기 시작하면서 명백해졌다.

나는 왜 불교라는 종교에 매력을 느끼는가.

사실 난 지금 그다지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반사회생활(?)과 같은 것을 하면서

종교라는 것은 사람들과 매우 밀접해 있으며

나와 가까운 이들이 어떠한 종교를 갖고 있는지

자신들과 믿는 종교와 같은 것을 믿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으며

무교인 자들에겐 자신의 종교를

적극추천하는 등의 선교활동을 많이 보아왔다.

 

사실 난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이다.

물론 때론 엄청난 감상주의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난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물론 현실적이라는 것과는 동떨어지나

현세라는 것에 중점을 둔다.

(나는 이 현실이라는 의미에 집착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카톨릭이나 천주교와 같은 종교는

내세에 관심을 둔다.

그들은 흔히들 '하느님을 믿어야 천당을 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내세보다 현세를 중시한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자라왔고

내 이성과 직관이 그쪽이 옳다고 가르친다

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이 순간들이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 순간들을 지닌 나에게 내세라는 것은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의미있는 것이 되어버릴것이다.

순간들이 모여 미래가 분명히 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서 현각스님을 만났다.

그와 교감했다고 생각한다.

『만행』이라는 책이다.

발간 된지는 꽤 됐지만, 책 표지에 있는 그분의 표정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얼마 전 '법적인 사고'에 이끌려 전성철님의 책을 읽었다면

이번엔 '종교적인 사고'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직 책을 다 읽진 못했다. 만행은 총 2권이다.

현각스님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셨고

다분히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자라오셨다.

이 표현이 적합한지는 알 수는 없지만.

사실 나에게 '종교적인 사고'는 '법적인 사고'보다 더 멀다고 할 수

 있다. 집안에서 종교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나 또한 신앙 믿음에 대한 것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것들이 전부 무엇일까?

아직 난 모르겠다.

사실 그에 대한 필요성도 모르겠고 존재의 이유도 명백히 알 수는

없다. 단지 막연하게 나약한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약하기 때문에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기 때문에

종교를 찾는 것이고 신을 찾는 것이라고.

 

 

이렇게 글을 쓸수록 사실 점점 생각이 복잡해진다.

내 머리속의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지만

결국 복잡하게 뒤엉켜 버리고 만다.

 

현각 스님이 그렇게 의문을 품고 품었듯이

난 정말 그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얻어냈다.

이 세상은 정말 의문점 투성이이다.

특히 종교에 다가갈수록 신에 다가갈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현각 스님이 숭산 스님을 만나 깊은 감명을 받고 출가한 것과 같이

나에게도 그러한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분을 만나고 싶다.

진리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진리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

하느님이라는 존재도 결국 내 자신이 만들었으며

그 소중한 믿음들도 결국은 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며

나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한 것이라고.

진리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리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착이란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어쩌면 불교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내 안에 진리를 찾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참선수행..

숭산스님의 공안인터뷰와 같이 말이다..

이쯤에서 어쩌면

어느 신에 대한 믿음이건 하나와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현각 스님이 많이 언급하신 예수님의 말씀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와 같이 말이다.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에 관심이 생긴다.

얼마 전 친구가 니체에 흠뻑 취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책을 잠시 읽어보았으나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니체는 쇼펜하우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

자였다. 그는 독일의 시인 철학자로서 또다른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인물이다.

 

참.. 학문이란 게 특이하다.

학문이란 것에 점점 가까워질수록(솔직히 굉장히 부끄러운 표현이

다.) 철학에 자꾸 관심이 쏠린다.

어떠한 분야의 저명한 이들이나 천재들 그 외의 내가 접한 흔히 말

하는 '대단한' 사람들의 중심엔 언제나 철학이란 것이 존재한다.

물론 나를 그들에 빗대어 말한 것은 절대 아니다.

자꾸 그들의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같은 책들을 읽다 보니까

철학자들에게도 자연히 관심이 쏠리게 된다.

휴~ 글이 너무 길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내용 중에 한 부분을 옮기면서

글을 마치겠다..

 

예수님은 신이 아니다. 단지 우리 인간들이 그를 신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자신 각자가 갖고 있는 본성, 진리, 지

혜다. 인간들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어, 즉 우리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대상으로 만들어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은 우리의 실수

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지만, 그는 단지 인간이

다. 나와 여러분들처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이것은 철학자 에머슨(미국의 초월주의 철학 운동의 주창자)이 하

버드 신학대학원에 초청돼 축사에서 말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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