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사회] 회사원 성모(25·여)씨는 지난 주말 남자친구와 극장에 갔다가 난처한 경험을 했다. 영화가 끝나자 한꺼번에 화장실로 모여든 여성 관객이 화장실 밖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늘 같은 식이다. 남자친구는 극장에 갈 때마다 여자 화장실 앞에서 ‘장시간’ 기다려야 한다.
영국 공중화장실 이용 실태 조사위원회는 지난달 화장실 이용에서 여성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의 평균 화장실 이용시간은 35초인데 비해 여성은 90초다. 사용시간이 세배나 긴데도 건물마다 여자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에 비해 변기 수가 적고 비좁다는 것이다.
◇해묵은 문제, 법도 해결 못해
여자화장실 증축 문제는 해묵은 사안이다. 몇 해 전부터 여성부와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국회에 계류 중이던 관련 법안이 올 4월28일에 개정돼 시행령까지 만들어졌다. 10월29일 법이 발효되면 여성용 변기 수를 남성용의 1.5배로 갖춰야만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1000명 이상 수용하는 문화공간이나 집회장소, 고속국도 휴게소 등이 해당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이 법이 시행돼도 기존 건물의 여자화장실이 증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새 법이 적용되는 건물 범위에 기존 공공장소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자부 지역균형개발팀 관계자는 “법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강제적으로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어떻게든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시민단체와 함께 평가 작업을 벌여 ‘화장실 인증제’ 와 상벌제 등을 통해 건물 환경과 이미지를 향상시키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기존 건물이 예산과 공간확보 문제를 이유로 현 상황을 유지할 게 뻔해 새 법안이 여성의 현실적 불편을 대폭 해소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식개혁, 자발적 참여에 기대
화장실문화 시민연대 표혜령 대표는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1.5배 수치를 맞추기 위해 여자 변기를 늘리기보다는 오히려 멀쩡한 남자 변기를 뜯어내는 웃지 못할 사례가 있다는 얘기마저 공공연히 나돈다” 고 전했다. 이는 현실에서 여자화장실이 남자화장실보다 더 많아야 한다는 논리가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표 대표는 2002년 월드컵 때를 회상하며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화장실 실태 점검에 나섰던 시민단체 조사에 따르면 상암경기장, 인천 문학경기장, 광주경기장에 응원나온 축구팬의 남녀 성비는 7:3 이나 6:4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때 경기장마다 남자화장실이 만원을 이뤄 여자화장실까지 점령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표 대표는 “이런 해프닝 덕에 화장실 부족이 주는 일상의 불편함을 많은 남자들이 공감했다”면서 “남자보다 여자를 더 위하자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없애는 게 목적인 만큼 자발적인 확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자화장실 차별 논쟁이 불거진 뒤 예술의 전당이 지난해 리모델링을 통해 26칸이던 화장실을 66칸으로 늘린 것 외에는 기존 건물의 여자화장실 확충 사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대학 관계자들도 “90년대 후반부터 여대생 수가 남학생 수를 압도하면서 화장실 부족 문제를 절감했지만 예산과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는 상당히 호전됐지만 일상의 차별을 완전히 극복하는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구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