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그 당시 공연은... 한국 최초로 히데상 공식 공연이었죠. 그리고.. 히데상은.. 사실.. 일본 밖에서는 콘서트다운 콘서트를 한번도 못해보고 돌아가셨습니다... 사고사 당하실 시점이, 그때 막 세계무대 진출을 준비 할 시점이었으니까요. 그 점이 늘 유가족과 지인들에겐 한이었구요. 비록 돌아가신 뒤이긴 하지만... 첫째로... 한국 최초이기도 하고, 둘째로... 세계로 뻗어나갈 히데상을 홍보하는 "국제적 프로젝트"의 첫 무대가 바로 이번 ETP페스티벌이었습니다. 여러 뜻에서 "최초"라는 의미가 무지무지하게 큰 무대였죠. 적어도 히데 패밀리들과 히데상 가족 분들께는... 그래서.. 공연장에.. 동생분도 오시고.. 연로하신 부모님들도 이 먼 한국땅 까지 힘들게 오셔서.. 히데상의 공연을... 히데상의 무대를... 드디어 외국에서도 펼쳐지게 된 그 무대를.. 상당히 감격스럽게 지켜 보셨습니다. 역시 같은 "최초"라는 뜻에서... 일본 히데 뮤지엄(히데 박물관)에 걸려있는 히데상의 진품 유품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 가지고 들어오셨구요. 그래서 그날 히데상 부스에 전시되었던 유품들은... 100% 히데상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이었답니다. 히데상 기타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히데 패밀리의 기타 리스트 분 아시죠? 그분께.. 히데상 부모님들께서... 이번 공연만은.. 잠시 자신의 기타 말고.. 히데상의 기타를 대신 들고 쳐달라고... 비록 히데상의 몸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기타만이라도 이번 "국제적" 프로젝트의 시작을 무대위에서 함께하게 하면.. 히데상의 영혼도 함께 하는 거라고... 그리고 분명 히데상도 기뻐할거라고... 그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기타는 그 기타리스트 분의 손에서 공연 때 실제로 연주되었구요. 나중에... 히데상 부모님들께선... 첫째로.. 영상 콘서트나마, 첫 해외 콘서트가 잘 이루어 진 것에 대하여.. 주최자인 태지씨에게 고맙고... 둘째로 자신들의 "자식놈의 평생 소원인 해외진출"을 이루는 첫 시작을.... "영상만 하는 공연이 무슨 공연이냐, 차라리 다른 밴드를 불러라." 고 하는 여론들을 맞으면서.. 그래도 꾿꾿하게 잘 이루어 준... 서태지씨에게.. 히데상 부모님께서... "어차피 박물관에 걸려 있는 것 보다... 누군가의 손에서 연주되어지는 게 낫다.." 면서... 첫째로.. 한국도 아니고.. 외국의 죽은 가수를 이렇게 불러 준.. 이번 공연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일본의 천재음악가인 히데상의 못다한 꿈을.. 한국의 천재음악가인 태지씨가 이어받아 꼭 이루어 주길 바란다면서.. 운동회에 비유 하자면.. 바톤 터치의 의미로 그 기타를 넘겨 주셨습니다. 서태지씨도 그 기타를 넘겨 받고... 약간의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같은 천재 음악가로서.. 히데상을 애도하고.. 또 이렇게 큰 결정을 내리신 히데상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섰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밴드 기타리스트 생활 했었고. 통역 업무 보면서 전시되어 있는 그 기타와 가까이 할 기회도 많았기에..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기타는 히데 상이 아끼시던. 하트 시그니춰가 확실합니다. 공장에서 똑같이 만든 모조품은 생산하긴 하는데요. 모조품의 경우엔.. 대부분의 부속품이 한가지 회사의 것입니다. 하지만 히데상의 유품 기타는. 각 부속품이.. 전부 다 다른 회사의 것입니다. 기타 부속품을 이것저것 가져다 놓고... 다 분해해서 이리저리 조립해 보고... 자신의 음악에 제일 잘 맞는 조합을 찾아서 조립을 하신 겁니다. 한마디로 공장에서 나올 수 없는.. 세계에서 하나 뿐인 자신만의 기타인 거죠. 행사기간 및.. 히데상 가족분들께서 기타를 넘겨줄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근처에서 봤는데요. 따로 조합해서 조립한 기타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요코스카 히데 박물관에는.. 공장에서 생산된 모조품이 걸려 있습니다.